정읍 두암교회

 

 

전북 정읍시 소성면 애당리에 두암 성결교회가 있다. 두암교회는 선교사의 지원을 받아 아들 김은용의 전도로 예수를 믿게 된 윤임례 집사가 중심이 되어 일제시대에 시작된 교회이다. 당시에는 교회에 가기 위해서 시오리를 걸어야 했으나, 해방이 되면서 성도들은 두암 마을에 교회를 세웠다. 교회가 창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평양 출신 임동선 전도사를 초청해 부흥집회도 가졌다. 평양에서 공산주의를 접했던 임 전도사는 공산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며, 이 집회에서도 공산주의에 대하여 신앙적인 면에서 비판적인 강연을 한 바 있다. 1950년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정읍에도 공산군이 들어왔고, 두암교회 주변은 공산군과 반공세력 간의 총격전이 수시로 벌어졌다. 두암 마을 성도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또 순순히 그들의 뜻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독교인들을 반동으로 몰아 날마다 가택수색을 하며 협박을 일삼고, 특히 공산주의자들은 임동선 전도사를 초청해 부흥집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부흥집회를 연 김용은 전도사를 잡기 위해 가족과 성도들을 위협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예배 중지령까지 내렸다. 하지만 성도들은 탄압에도 굴하지 않았으며 끌려가 고문을 당하면서도 교회를 지켰다. 1950년 9월 하순부터 공산주의자들의 탄압은 더욱 거세졌다. 탄압 과정에서 김용은 전도사의 동생 김용채 집사는 총에 맞아 고부라는 마을로 옮겨 치료하던 중 우익인사들과 함께 희생당했다. 10월19일 공산세력은 윤임례 집사와 그 가족 등 두암 교회 성도를 몰살시킬 계획으로 몰려왔다. 몽둥이와 식칼을 든 이들은 성도들과 아이들을 개 패듯 했고, 아이들의 울부짖는 소리는 마을 밖까지 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윤집사와 아이들은 모두 순교했고, 공산 세력들은 방안에 짚을 집어넣고 교회와 성도들의 집 4채에 모두 불을 질렀다. 불태운 재 때문에 며칠 동안 우물물을 먹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날 학살로 윤임례 집사와 둘째 아들 김용채 집사, 며느리 조선환 집사 등 일가족이 학살되었으며, 정읍농업고등학교 학생회장이던 김용술 씨와 그의 가족, 김용은 전도사의 친구 박호준 등 23명이 학살로 순교를 당했다. 서명선 목사와 김용례 사모는 공산군이 철수한 후 두암 마을을 방문해 시신을 수습하고 23명의 순교자를 매장했다고 한다. 시신의 수습과정에서 윤임례 집사는 무릎을 굽힌 채 머리 뒤쪽에 칼자국이 있었다고 한다. 순교의 피는 두암교회의 귀한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윤임례 집사의 아들인 김용은 목사와 고 김용칠 목사 형제는 본 교단 총회장을 역임하는 등 교단 발전에 헌신하였으며, 서명선 목사를 비롯해 20여명이 넘는 목회자가 배출된 것이다. 하지만 두암 교회는 쉽게 복구되지 못했다. 전쟁으로 교회가 불타고 성도들이 대부분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64년 두암 마을 출신인 김태곤 전도사가 고향집에서 주일학교를 열면서 두암 교회는 재건됐다. 66년에는 교회를 새로 건축했을 뿐만 아니라 가매장했던 순교자들의 무덤을 교회 동산으로 이장하고 ‘순교자 묘’로 합장했다. 또한 순교를 전후로 매년 10월 중순 순교자 합동 추모예배를 드리고 있다. 1977년 교단 지방회에서는 순교정신을 기리기 위해 순교기념탑을 세웠으며, 김용은 목사를 비롯해 지방회 소속 교회의 협조로 순교기념 교회당과 교단 차원의 순교기념탑도 1994년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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