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을   / 강은교

 

기쁨을 따라갔네
작은 오두막이었네
슬픔과 둘이 살고 있었네


슬픔이 집을 비울 때는

기쁨이 집을 지킨다고 하였네
어느 하루 찬바람 불던 날

살짝 가보았네


작은 마당에는 붉은 감

매달린 나무 한그루 서성서성
뒤에 있는 산, 날개를 펴고 있었네
산이 말했네.
어서 가보게, 그대의 집으로

 


 가 을 / 김광림

 

고쳐 바른 단청빛 하늘이다
경내는 쓰는 대로

보리수 잎사귀 한창이다


잎줄기에서 맺혀 나온

염주알 후두둑 떨어진다
벼랑 위에 나붓이 앉으신

참 당신 보인다

 

 

 가 을 / 김종길

 

먼 산이 한결 가까이 다가선다
사물의 명암과 윤곽이

더욱 또렷해진다


가을이다

아 내삶이 맞는

또 한 번의 가을!

 

허나 더욱 성글어지는

내 머리칼
더욱 엷어지는 내 그림자

 해가 많이 짧아졌다

 


 가 을  / 릴케(1875-1926)

 

나뭇잎이 떨어진다,

하늘나라 먼 정원이 시든 듯
저기 아득한 곳에서 떨어진다


거부하는 몸짓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밤마다 무거운 대지다
모든 별들로부터 고독 속으로 떨어진다

 

 

 가  을 / 윤희상

 

일하는 사무실의 창 밖으로
날마다 모과나무를 본다
날마다 보는 모과나무이지만
날마다 같은 모과나무가 아니다


모과 열매는 관리인이 따다가
주인집으로 가져가고
모과나무 밑으로 낙엽이 진다


나의 눈이
떨어지는 낙엽을 밟고
하늘로 올라간다
낙엽이 계단이다

 

 

 가 을 / 이안

 

병든 나뭇잎 먼저
더 많은 벌레를 먹인 나뭇잎 먼저


아픔이 먼저
아픔에게 문병 간다

 

 


가  을  /  정호승

 

돌아보지 마라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다


돌아보지 마라
지리산 능선들이 손수건을 꺼내 운다


인생의 거지들이 지리산에 기대앉아
잠시 가을이 되고 있을 뿐


돌아보지 마라
아직 지리산이 된 사람은 없다

 


  가  을 / 조병화

 

가을은 하늘에 우물을 판다
파란 물로


그리운 사람의 눈을 적시기 위하여
깊고 깊은 하늘의 우물


그곳에
어린 시절의 고향이 돈다


그립다는 거, 그건 차라리
절실한 생존 같은거


가을은 구름 밭에 파란 우물을 판다
그리운 얼굴을 비치기 위하여

 


 가  을 / 최승자

 

세월만 가라, 가라 그랬죠
그런데 세월이 내게로 왔습니다


내 문간에 낙엽 한 잎 떨어뜨립디다
가을입디다

 

그리고 일진광풍처럼 몰아칩디다
오래 사모했던


그대 이름
오늘 내 문간에 기어이 휘몰아칩디다

 

 

단풍 마중 / 박태강

 

검붉고 노하얀 행렬이
단풍 마중 위하여
계곡 건너 능선을 흐르고
 
바위 끝마다 오색물결
단풍과 한몸 되어
넘실넘실 춤 춘다
 
놀란 다람쥐
색갈이 놓아준 먹이 쫓으며
이리저리 뛰고
 
싸늘한 한기 몸으로 스며
저들도 단풍 되어
흐느적 흐느적 산넘어 간다
 
학창시절 책갈피에
넣어둔 단풍이 살아
하느작 하느작  산넘어 간다.

 

 

가을   / 조철형 

걸어오는 소리
해마다 다르다


가슴마다
아름다운 빛깔들
곱게 새겨 놓으려
그대 오는가

먼 길 떠날 임
한낮  햇살이 힘든 사람들


그대 따뜻한 가슴으로

그려놓을 수채화
으스러지게 한번 품어보면
한동안 덜 외롭고 힘들까 

깊고 고운 그대 사랑을
오롯이 안고서
희망을 노래할 수 있게
그대, 고이 머물러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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