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굴러가유~~

이혜경「늑대가 나타났다」

작성일 작성자 돌 굴러가유~~



이혜경「늑대가 나타났다」









네가 이 먼데까지 웬일이냐.
그 것도 혼자.

눈물이 글썽 맺혔지만,
그가 ‘이 먼데까지’라고 한 것을
놓칠 정도로 설운 것은 아니었다.

‘이 먼데’까지
늑대에게 잡혀가지 않고 와 봤으니,

집으로 돌아가도 될 만한
자격이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마을에 있을 땐
다른 데를 그리워하게 만들던 어스름이 짙어졌다.

마을 밖의 어스름은
매몰차게 떠나온 마을과 집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그는 더 묻지 않고
나를 담쏙 안아올려서

자전거 짐받이에 앉히고
내 가방을 자전거 앞의 손잡이에 걸었다.

아저씨가 집에 데려다 주마.
아저씨 등 꼭 붙들어야 한다.

우물에 빠졌다가
동아줄을 잡은 심정이었지만,

그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

아저씨 못 만났으면
어쩔 뻔했냐.

아이 혼자 돌아다니다간
큰일난다.

그가 고개를
살짝 뒤로 돌리며 말했다.

늑대와 친척인 그가
늑대 이야기를 하는 게 신기했다.

어쩌면,
마을 어른들이

그를
잘못 본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스름녘,
들판을 혼자 걸어가는 아이에게

말을 걸어준 사람은
마을 안에서 늑대 취급을 받던 그 뿐이었다.

먹빛으로 더 짙어진 가로수들이
이제 무섭지 않았다.

나는

슬그머니 그의 허리춤을 잡으며
그의 등에 몸을 기댔다.

그의 몸에선지
아니면 저녁공기에선지,

비 맞은 개에게서 나는
축축한 냄새가 맡아졌다.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그게 늑대냄새인지도 몰랐다.

어느새
나도 어린 늑대가 된 것일까.

그 냄새를 맡자
눈꺼풀이 자꾸만 감겨왔다.

자울자울 졸았다.

걸을 땐
그토록 먼 길이었는데,

자전거로 오니
금세 마을이었다.

마을 어귀에서
어슬렁거리던 동물이

자전거를 보고 컹, 짖었다.

늑대인지 개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

자전거가
공터 어귀로 들어설 때,

우어허엉,
멋쟁이의 울부짖음이

어둑한 허공을 울리며
나를 맞았다.

으허엉,
내 몸에서 알지 못할 소리가

울려나오는 듯했다.

아무래도 어둠이
나를 늑대로 바꿔치기한 것만 같아서,

내가 나 아닌
아기늑대인 것 같아서,

나는 눈을 홉떴다.



● 출전 :
『틈새』, 창비 2006

● 작가 :
이혜경- 1960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1982년『세계의 문학』에 중편소설을 발표하며 등단.

소설『그 집 앞』『꽃그늘 아래』『틈새』『길 위의 집』등이 있음.

● 낭독 :
최정우 – 배우. 연극 <필로우맨> <대대손손>, 영화 <친절한 금자씨> 등에 출연.

박미현 – 배우. 연극 <매혹> <키스>, 영화 <은하해방전선> 등에 출연.



저는 어릴 때,

한 밤중에 늑대가
뒤란 위에 있는 숲에서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기울음 소리처럼
들렸는데

그 울음소리를 듣고
어머니가 아기를 찾으러 가면

기다리고 있던 늑대가
어머니를 잡아먹는다는 이야기를 했지요.

누가
이 엄청난 이야기를 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군요.

어머니가
그런 이야기를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설마 아기들이?

아기들도 어머니가
늑대에 잡아먹히면

살아가기가 어려워지지요.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누나? 형? 고모?

아무도 아닌 것 같은데요.

어머니가
늑대에게 잡아 먹혀서

이익을 볼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이 이야기는
사실처럼 전해져서

한 밤중에
혼자 밖으로 나가는 행동을

원천봉쇄 했습니다.

이 작품 속의 ‘나’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데 성공했군요.

늑대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구원을 받기도 합니다.

‘늑대 같은’ 아저씨에게 말이지요.

그리고
스스로가 아기늑대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네요.

그렇습니다.
늑대들이 어슬렁거리며

활보하는 세상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늑대가 되는 겁니다.

착한 늑대도 있다는데
착한 아이들이

눈 딱 감고
늑대가 된 거겠지요?

문학집배원 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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