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과 보이는 것


Music : 길 / 최희준(경음악)


23세에 혼자 되신 어머니의
유복녀로 태어 난 딸이 있었다.

어머니의 희생적인 수고로

유학도 하고,
나중에는

저명한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고등학교 이 후
교회를 떠났 던 딸은

어머니의 권유로
절에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잠시 경내를 둘러 보는데,
실망이 컸다.



보살들이 모여서
다른 절의 스님 험담을 하고,

신도 회장이 다가 와서는
처음 본 자신에게

아들 대학 입학을 청탁하고,
회의실에서는 다투는 소리가

문 밖으로 새어 나왔다.



너무 화가 난 딸은

어머니의 손을 끌고
집으로 가자고 재촉했다.

그 때
조용하기만 하던 어머니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평생 절에 다니면서
부처님만 봤는데,

너는 딱 하루 절에 와서는
참 많이도 봤구나."

이 말에
딸 교수는 무너졌다.

생각없이 절에 다닌다고
생각했던 어머니가 아니었다.



어머니의 보는 수준과
자기의 보는 수준은

하늘과 땅보다 큰 것이었다.

누구든

자기의 수준 만큼만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보며 삽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내 눈에 보인다고 하는 것은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먼 것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가까이 있는 것이
보입니다.



자꾸 거짓이 보인다면

내가 거짓에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꾸 교만이 보인다면

내가 교만에
가까이 있다는 것 입니다.

사기꾼의 눈에는

사기꾼이
가장 잘 보이는 것 입니다.



섬기는 사람 옆으로
가 보십시오.

섬김만 보입니다.

기도의 사람 옆으로
가 보십시오.

기도의 능력을
보게 될 것 입니다.

인격의 변화는
믿음의 발걸음에 있습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

"불보살"을
볼 줄 아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자비"는

녹아서 작아지는
비누와 같습니다



비누는 사용 할 때 마다
자기 살이 녹아서 작아지며

드디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 때 마다
상대의 더러움을 없애 줍니다.

만일
녹지 않는 비누가 있다면

쓸모없는 물건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자기 희생을 통해
사회에 공헌 할 줄 아는 사람은

좋은 비누 같지만

어떻게 해서든
자기 것을 아끼려는 사람은

물에 녹지 않는
비누와 같습니다



이는 미국의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가 한 말입니다.

사람의 삶 중에

희생하는 삶 만큼
숭고한 삶은 없습니다.

희생을 바탕으로
성립되는 인간 관계는

어느 것이나
아름답습니다.



사랑이 그렇고,
우정이 그렇고,

동료애가 그렇고,
전우애가 그렇습니다.

비누 처럼 나를 희생해
상대를 돋보이게 하는 삶!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삶입니다.



그러나 지금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상대를 위해 할 수 있답니다

. 만약

이런 마음이 없다면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그리하기에

행복한 삶에 대해
유대인의 전승은 말 합니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든지
어떤 경우에 처해도

배우는 자세를
갖는 사람 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 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 이 모습 이대로를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행복은
감사와 정비례 합니다

헬라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기를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

라고 했듯이

감사한 만큼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빌헤름 웰러"는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들 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행복은 소유에
정 비례하지 않습니다.



감사가 없는 마음은
지옥과 같고

감사가 없는 삶은
메마른 광야와 같은 것입니다.


- 좋은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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