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 박민규



● 낭독 : 남 명렬
김 수현
(스마트폰은 ▷ 를 누르세요)


눈물이 나왔는데,
어느정도 그냥 울어버렸다.

야야, 왜 그래?
치수가 면박을 주었지만

그 야야,
왜 그래를 가지고도

세 곡 이상의
발라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야, 못…
그러니까 따를 당하는 거야

이 바보야,
널 처음 봤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아냐?
아, 아니. 말하자면 저건…



무슨 이미테이션이 아닌가,
그런 느낌이었어.

이미테이션?
그러니까 진짜

너는 어딘가 다른 곳에 살고,
눈앞의 이건 짝퉁이다…

뭐 그런 느낌이지.
예를 들어 어쩌다

동전이 여러개 생겨
심심풀이로 뒤집어보다가…

그런 거 있잖아,
믿기지 않을 만큼 오랜

1977 같은 숫자가 찍힌 거…
그런가 하면 정말

눈부신 바로 올해의 연도가
찍힌 것도 있다는 얘기야,



그런데 너는
봐도 아무 느낌이 없는 연도,

말하자면 2003이라든지…
모르겠다,

뭐 그렇다는 얘기야.
아무튼 내 얘기는 앞으로는

좀 존재감있게
살라는 얘기다, 알겠냐?



예, 아, 으응.
예는 뭐고 응은 또 뭐냐,

그건 그렇고…
어쨌거나 못!

그리고 치수는
새 담배를 꺼내물었다.

순간 달의
뒷면이라 여겨도 좋을 만큼

주위가 고요해졌다.



그동안 미안했다.

알파벳의
가장 긴 단어가 무엇이었더라?

나는 생각했다.

기네스북에도
오른 단어가 있는데,

또 산소통을 지지 않고
에베레스트에 오른

최초의 인물이
누구였더라,

게다가 인류가 도달한
심해의 최저 수심은

과연 몇미터인가,



라이트 형제는
몇번의 실패 끝에

시험비행에 성공했으며,
가장 지름이 긴

꽃의 이름은 무엇인가,

역사상 열대우림지역의
최대 강수량은 얼마였으며,

사하라는 과연 언제 어느 때
바다의 밑바닥이었나,

를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과는 아무 상관 없이

나는 펑펑 눈물을 쏟았다.



고마워.

그래서
이상하게 고맙다는 말이 나왔다.

알파벳의 가장 긴 단어보다도
복잡한 구조의 <고마워>였다.



● 출처 :『핑퐁』, 창비 2006

● 작가 : 박민규

1968년 울산에서 태어나 2003년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소설『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카스테라』『핑퐁』등이 있으며,
한겨레문학상, 신동엽창작상 등을 수상함.

● 낭독 : 남명렬
배우. 연극 <에쿠우스> <바다와 양산> <이디푸스와의 여행>,
TV <스포트라이트> 등에 출연.

김수현
배우. 연극 <더블린 캐롤> <쿠크박사의 정원>,
영화 <원스어폰어타임> 등에 출연.



저는
가톨릭 세례를 받은 사람이에요.

성 프란체스코와
성녀 글라라의 이야기를 읽다가

감동해서
혼자서 성당을 찾아갔어요.

스무 살 무렵의 일이에요.

처음 고백성사를
할 무렵의 일이었는데,

고해소에 들어가 신부님에게
“지난주에 저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신부님은
깜짝 놀란 목소리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하고 제게 되물었어요.
저도 그게 궁금했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살다보면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도

찾아 오더라구요.

고해소를 나와서
신부님이 시키는 대로

몇 가지 기도를 하고
성당으로 가는 길을

걸어 내려 왔어요.



그 즈음에는
이미 후회하고 있었죠.

스스로 나약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나약함도 힘이 된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됐어요.

성녀 글라라는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어요.

이미 쓰러진 사람은
누가 또 쓰러뜨리리오?

그러고 보니
제가 성당을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도
그런 글들 때문이었군요.

문학집배원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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