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쓰기
정 진 규




낭송: 도종환


한 밤에
홀로 연필을 깎으면

향그런 영혼의 냄새가
방 안 가득 넘치더라고

말씀하셨다는 그 분처럼
이제 나도 연필로만

시를 쓰고자 합니다



한번 쓰고 나면
그뿐 지워버릴 수 없는

나의 생애
그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연필로 쓰기
지워버릴 수 있는 나의 생애

다시
고쳐 쓸 수 있는 나의 생애

용서받고자 하는 자의
서러운 예비

그렇게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는 언제나
온전치 못한 반편 

반편도 거두어 주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연필로 쓰기
잘못 간 서로의 길은

서로가 지워드릴 수 있기를
나는 바랍니다

떳떳했던 나의 길
진실의 길



그 것마저
누가 지워버린다 해도

나는
섭섭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나는 남기고자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감추고자 하는 자의
비겁함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오직 향그런
영혼의 냄새로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 정진규 시집『연필로 쓰기』,
영언문화사



잘못 쓴 글씨를 지우듯
우리의 생애도 지우고

고쳐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잘못 간 길을
서로 지워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
떳떳했던 길마저 지워진대도

섭섭해 하지 말고,
그 것도 얼마든지

지워질 수 있는 것이라 여기며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허물 많은 삶에 대한
용서와 사랑,

향그런 영혼의 냄새는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문학집배원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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