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천천히 걷기

어린 왕, 단종의 슬픔이 어린 곳 영월 청령포

작성일 작성자 judy

 

 

 

 

 

 

영월 청령포에 다녀왔습니다.

이른 시간 행여 방문객이 없어 배가 뜨지 못하는게 아닐까 싶었지만

우리처럼 부지런한(?) 사람들이 있어

무리없이 청령포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국가지정 명승 50호로 지정된 청령포의 모습.

 

 

 

 

 

 

강가의 자갈밭을 지나 왼쪽 솔밭을 걷다보면

처음으로 볼 수 있는 단종어가입니다.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따라 재현한 모습이라고 합니다.

 

 

 

 

 

 

 

 

 

 

 

 

 

 

 

 

어린 나이에 왕이 된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이곳 청령포로 유배를 와 이곳에서 지낸 시간은 약 두달이라고 합니다.

머무는 동안 청령포가 있는 서강이 여름에 큰 홍수로 범람하여

영월의 관풍헌이라는 객사로 거처를 옮겨 지내다가

얼마 후 그곳에서 최후를 맞게 됩니다.

 

 

 

 

 

 

단종은 아버지인 문종이 승하하고 조선 제6대 왕에 오르지만

즉위할 때 조부모와 부모, 모두 없는 처지에 12살에 홀로 임금이 되어

집권한지 1년 뒤 숙부인 수양대군의 반란으로 실권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 후 상왕으로 수양대군의 동생인 금성대군의 집에서 연금상태로 있던 중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이 일으킨 복위 운동이 알려지게 되자 노산군으로 강봉,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떠나게됩니다.

그러나 다시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계획이 사전에 발각됨에 따라 

결국 영월 관헌객사인 관풍헌에서 17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단종의 죽음에 이르는 일은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있는데

단종이 사약을 마시지않아 누군가 목을 졸랐다는 설과

단종 스스로 활줄을 목에 감고 문 밖에서 하인에게 줄을 당기게 하여

목이 졸려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여러 이야기들이 전해집니다만

어찌되었던 18세의 어린 왕은 서럽고 또 아쉽게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청령포를 들러보기 전 영월 시내에서 다시 찾은 관풍헌은

전각 공사중이었고 예전 단종이 올라 자규사 및 자규시를 읊은것이

계기가 되어 자규루로 불리게 된 누각도 보이지만

관풍헌을 담기엔 주변에 높다란 숙박시설의 붉은 불빛이 보이는 등

그 주변이 아쉽기만 했습니다.

 

 

 

 

 

 

 

 

 

 

 

단종 어소 앞의 작은 비각은 단종이 머무르던 옛 집터를 기념하기 위해

영조39년인 1763년에 세워진 비석으로

영조가 직접 글을 썼다는 비가 세워져있습니다.

"단묘재본부시유지" - 단종이 여기 계실때의 옛터 라는 뜻이라 하네요.

 

 

 

 

 

 

 

 

 

 

 

관음송(觀音松)

천연기념물 제349호, 수령은 약 600년으로 추정되며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이 유배되었던 이곳에서

둘로 갈라진 나무의 줄기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데,

관음송(觀音松)이라는 이름은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해서 ‘볼 관(觀)’자를,

단종의 슬픈 말소리를 들었다하여 ‘소리 음(音)’자를 따서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관음송에서 보이는 단종어가.

 

 

 

 

 

 

 

 

 

 

 

 

 

 

 

 

청령포 육육봉과 노산대 사이 절벽 위 망향탑.

단종이 한양에 두고 온 왕비를 그리워하며 돌을 쌓았다고 전해집니다.

청령포에서 단종이 남긴 유일한 흔적이기도 합니다.

 

 

 

 

 

 

 

 

 

 

 

지난 6월에 다녀온 남양주시에 위치한 단종

정순왕후 송씨의 능인 사릉(思陵)입니다.

특별할 것도 없이 다녀온 곳이라 포스팅은 하지않았지만 사진자료로 남겨놓아야겠네요.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면서 부인으로 강봉되어

평생을 평범한 서민으로 지내며 사망한 후 단종의 누이 경혜공주의 집안묘역에 묻혔다가

숙종24년 단종의 복위와 함께 정순왕후로 추상되고 묘를 높여 사릉이라 하였는데,

억울하게 살해된 남편을 사모한다는 뜻에서 지은것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영월 장릉 옆 작은 공원에는 단종의 시신을 거둬 장사를 지냈다고 전해지는

충의공 엄흥도의 정유각이 있고

단종과 엄흥도의 모습을 만든 동상이 있습니다.

 

 

 

 

 

 

 

 

 

 

 

 

 

 

 

 

 

 

 

망향탑 뒤로는 깍이지른 절벽이 있어

배를 통해서만 육지로 나갈 수 있는 육지속의 섬 같은 곳으로

이곳에서 머무는 두달동안 어린 단종이 느꼈을 처연함이 저절로 느껴집니다.

 

 

 

 

 

 

 

 

 

 

 

망향탑에서 다시 노산대를 찾아갑니다.

노산대는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유배생활을 할때

해질무렵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던 곳이라합니다.

 

 

 

 

 

 

 

 

 

 

 

 

 

 

 

 

 

 

 

 

 

망향탑과 노산대를 보고 내려와 만나게 되는 금표비입니다.

금표비는 임금이 머물렀던 곳이니 일반백성의 출입을 금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동서 사백척, 남북 사백구십척으로 출입을 금한다는 것으로

영월부사 윤양래가 영조의 윤허를 받아 세웠다고 하는데,

실제 단종에게도 이러한 제약이 있었을 것이라 전해지기도 한다합니다.

 

 

 

 

 

 

 

 

 

 

 

 

 

 

 

 

 

 

 

 

 

 

 

 

 

 

 

 

 

 

 

 

 

 

 

 

단종어소 담장에서 보이는 어린 단종

 

 

 

 

 

 

 

 

 

 

 

 

 

 

 

 

 

 

 

 

 

 

 

 

 

 

 

 

 

 

 

 

 

 

 

 

 

 

 

 

단종 어소를 향해 기울어진 소나무.

단종을 알현하는듯한 모습이 다시 보아도 신기하기만 합니다.

 

 

 

 

 

 

 

 

 

 

 

 

 

 

 

 

 

 

 

 

 

 

 

 

 

 

천천히 둘러봐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청령포입니다.

두번째 방문했지만 올때마다 하늘이 흐린날이어서

더욱 더 숙연한 느낌이 드는 곳이기도 합니다.

 

 

 

 

 

 

2012년 영월 청령포 방문기 클릭

2012년 영월 장릉과 관풍헌 방문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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