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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숲> 토토로가 사는 숲으로, 영화 ‘이웃집 토토로’

작성일 작성자 대한민국 산림청




글. 정수진(칼럼니스트) 사진. <이웃집 토토로> 스틸컷(네이버 영화)


 

 산타와 요정을 믿던 어린아이는 사라졌다. 하지만 어른에게도 숲은 여전히 일상의 놀라움을 선사하는 공간이다. 만물이 생장하는 이 봄, 토토로가 살던 숲으로 향하자. 


그 나이대만 가질 수 있는 특별함이 있다. 네 살에는 네 살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 열한 살에는 열한 살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 있다는 말이다. 이건 나이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무엇이라도 들이받고 싶은 사춘기의 그 들끓는 심정과 이십 대 초반의 팽창하는 감정은 비슷한 듯 다르다. 서른 살의 감정과 마흔 살의 감정, 오십 살의 감정이 다른 것처럼.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만든 <이웃집 토토로>도 유년기에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에 주목한 영화다. 일본의 어느 시골 마을로 이사 온 열한 살 ‘사츠키’와 네 살 ‘메이’ 자매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 때의 마법 같은 순간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1988년에 개봉한 <이웃집 토토로>는 2018년을 사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장면 장면이 놀라운 영화다. 1950년대 초, 도쿄에서 떨어진 농촌 마을로 사츠키와 메이, 그리고 아빠가 이사를 온다. 자매가 이사 온 집은 엄청난 크기의 녹나무와 울창한 숲이 집 옆에 있는, 이웃집 소년 ‘칸타’가 “너네 집은 도깨비집이래”하며 놀릴 정도로 낡은 집이다. 자매가 세게 밀면 낡아빠진 기둥이 곧 쓰러질 것 같이 낡은 집이지만 자매는 그것마저 즐겁다. 놀랍지 않은가? 요즘 아이들이라면 “이렇게 낡은 집에서 어떻게 살아! 장난감은? 게임기는? 컴퓨터는”라고 할 텐데. 그리고 이 순진무구한 자매 앞에서 오래된 집은 오래된 집만의 매력을 보인다. 문을 열어젖히자 뭔가 까맣고 동그란 존재가 우수수 틈으로 흩어지는 게 사츠키와 메이의 눈에 포착된 것. “집에 뭔가 있어요!” 사츠키와 메이의 말에 이웃집 할머니는 말해준다. “마쿠로 쿠로스케(검댕이 도깨비)일 거야. 아무도 없는 낡은 집을 먼지투성이로 만들지. 할머니도 어릴 때 봤단다.” 옛날부터 도깨비집에 살아보고 싶었다는 아빠 역시 마쿠로 쿠로스케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마쿠로 쿠로스케는 시작이었다. 언니 사츠키는 학교에 가고 아빠는 작업실에서 일에 매진해 있을 때, 집 근처를 둘러보던 어린 메이 앞에 작은 너구리 (혹은 너구리와 토끼의 중간) 형태의 존재가 눈에 띈다. 이 조그마한 존재를 쫓아가던 메이는 숲 안쪽으로 들어가다 녹나무 구멍 안으로 굴러 떨어진다. 그곳에서 만난 존재가 거대한 ‘토토로’다. 정확히는 토토로의 배 위로 떨어진 메이가 그 존재가 잠꼬대처럼 하는 소리를 듣고 토토로라고 이름 붙인 것인데, 아마 전래동화책에 나오는 도깨비 같은 존재인 모양이다. 하지만 나중에 메이가 아빠와 언니에게 토토로를 봤다며, 그 장소를 찾으려 하지만 찾을 수 없다. 언니 사츠키는 토토로를 봤다는 메이의 말을 믿지 않고 웃어넘긴다. 그런데 이때, 아빠의 반응이 놀랍다. “메이가 숲의 주인(요정)을 만났구나. 옛날에는 나무와 사람이 친구였지. 운이 좋았던 거야. 늘 보이는 건 아니란다.” 어린아이들은 곧잘 엉뚱한 소리를 하곤 한다. 꿈과 현실을 구분 못하기도 한다. 그럴 때 어른의 반응은 제각각 다른데, 각박한 어른들은 “꿈을 꿨나 보구나”라며 그건 현실이 아니라고 명확히 구분하곤 한다. 사츠키와 메이의 아빠는 달랐다. 숲의 주인을 만나 운이 좋았다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그리고 사츠키도 드디어 토토로를 만나게 된다. 어느 비 오는 밤, 숲 속 버스정류장에서 잠든 메이와 함께 우산을 들고 아빠를 기다리던 사츠키 옆에 토토로가 조용히 나타난 것. 멍한 표정으로 버스를 기다리는 양 비를 맞고 서 있는 토토로에게 사츠키가 아빠의 우산을 빌려주자 답례로 도토리 씨앗이 든 주머니를 건네더니 포효와 함께 날아다니는 ‘고양이버스’를 불러 사라진다. 여기서 중요한 건 토토로가 얼마나 매력 터지는 존재인가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도깨비쯤 되는 토토로는 말을 하지는 않지만 가끔씩 엄청난 하품과 함께 포효하며 어디든 데려다 줄 수 있는 고양이버스를 부르는 능력이 있다. 거대한 풍선처럼 팽이를 타고 날아다니는 것은 물론 한가로운 밤이면 녹나무 위에 앉아 작은 토토로들과 함께 오카리나를 불곤 한다. 무엇보다 딱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의 귀여움이 어마무시하다. 어린애 둘 정도는 가뿐하게 배에 매달고 날아다닐 만큼 커다랗고 엄청난 입으로 포효하지만 무섭지 않은 것이, 곰처럼 둥그런 털복숭이 모습으로 항상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 가끔씩 짓는 웃음이 일품이다. 게다가 토토로와 고양이버스는 어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오직 자매의 눈에만 보인다는 것. 


토토로의 존재도 특별하지만 시골마을에서 자매의 삶은 평화롭고도 즐겁다. 자매의 엄마는 병으로 병원에서 요양 중인데, 퇴원할 엄마를 위해 공기 좋은 시골로 이사 온 만큼 자매가 사는 마을은 정겹고 아름답다. 이웃집 할머니 밭에서 딴 옥수수와 토마토, 오이, 가지 등의 농작물은 찬물에 쓱 담갔다 베어 먹으면 꿀맛이 따로 없고, 아빠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엄마의 병문안을 갈 때면 이웃사람들이 따스하게 인사를 건네는 곳이다. 무엇보다 울창한 숲과 자매의 눈에 가끔 보이는 토토로가 지키는 마을 아닌가. 





별달리 하는 게 없이 귀엽기만 한 줄 알았던 토토로지만 영화 후반에 큰 역할을 한다. 주말에 집으로 외출 나오기로 한 엄마가 감기로 못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에 실망한 메이가 엄마를 찾으러 나서며 실종된 것. 이웃마을까지 발이 까지도록 메이를 찾아나서는 사츠키는 물론 온 마을사람들이 메이를 찾지만 어디에서도 메이는 발견되지 않는다. 심지어 마을 저수지에 어린아이의 신발이 발견되며 ‘혹시’ 하는 불안감마저 생긴다. 이때 사츠키가 도움을 요청하는 존재가 토토로다. “제발 도와주세요. 메이를 찾아주세요.” 숲의 주인, 숲의 요정답게 고양이버스를 불러 단숨에 메이를 찾은 건 물론이다. 


생각해보면 숲 자체가 토토로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다. 언뜻 특별히 무엇을 주는 것 같지는 않아도, 가까이 하면 무척 편안하다. 맑은 공기를 선사하고, 자주 숲을 찾는 사람에겐 사색과 명상과 상상의 시간을 부려준다. 항상 같은 모습인 것 같지만 사시사철 시시때때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며 놀라움을 주기도 하고, 꽃과 열매도 준다. 그러고 보면 도시를 사는 사람에게 숲이란 이름만 들어본, 그러나 가까이 보이진 않는 토토로 같다. 


사실 <이웃집 토토로>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미야자키 하야오가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강하게 담긴 작품은 아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평소 작품을 통해 환경 보존과 평화주의 등의 메시지를 담아내곤 했는데, <이웃집 토토로>는 그에 비하면 소품(小品)에 가깝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미야자키 하야오란 거장이 만든 소품이 얼마나 위안을 주는지 깊이 깨닫게 된다. 비록 더 이상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다 해도, 그래서 토토로 같은 숲의 요정은 믿지 않는다 해도 이런 봄이면 숲으로 향해보자. 오카리나 부는 토토로는 아니더라도 당신이 만날 수 있는 놀라움이 숲에 있을 것임을 장담한다. 



※ 본 콘텐츠는 산림청 격월간지 '매거진 숲'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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