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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기록한 사람> 푸르른 희망이여, 꽃 같은 평화여 오라 - 신장식 화백

작성일 작성자 대한민국 산림청





 금강산, 그 푸르고 강건한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아온 이가 있다. 지난 1992년부터 지금까지 금강산을 그리며 관련 개인전도 20여 차례 연 신장식 화백이다. 그의 금강산 작품은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장에 걸리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우리의 마음에도 잊혔던 명산, 금강산을 되돌려주었다.



 그의 붓 끝에서 새롭게 되살아난 금강산


중국의 문학가 루쉰은 말했다. ‘희망이라는 것은 원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에 놓인 길과도 같아서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고. 지난 4월 27일, 전 세계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희망을 보았다. 참 오랜 시간 닿을 듯 닿지 않았던 길이 다시 이어지는 첫 걸음을 목격했다. 그 날,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은 그림 한 점이 있었다. 국민대 미술학부 교수이기도 한 신장식 화백의 <상팔담에서 본 금강산>이다. 그가 지난 2001년 개인전을 통해 발표한 <상팔담에서 본 금강산>은 그 후 17년간 창고 먼지 속에 묻혀 있다가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상팔담에서 본 금강산>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 들어가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약 7m 가까이 되는 대작이라 로비에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2층 회담장에 걸린 걸 알고 깜짝 놀랐죠. 더구나 이 그림 앞에서 남북 정상이 악수를 하는 모습을 보니 참 뿌듯했습니다. 그림이 담고 있는 희망과 평화의 기운이 두 분에게 잘 전달되어, 우리에게도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신장식, <상팔담에서 본 금강산> 2001, 캔버스에 한지 아크릴릭, 681*181cm



<상팔담에서 본 금강산>은 캔버스 위에 제작한 닥종이를 바르고 그 위에 아크릴로 금강산을 그린 작품이다. 신장식 화백은 ‘수묵화의 선(線)과 민화의 색(色), 전체적으로는 현대 풍경화의 감각을 융합해 한 번 본 사람이라면 잊지 못할 절경, 상팔담을 그렸다’고 말한다.


“상팔담에 올라가면 금강산의 모든 주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그 전체 봉우리를 천화대, ‘하늘에 핀 꽃’이라고 해요. 그 꽃과 같은 아름다움과 하늘로 치솟는 기상이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희망적 정서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특히나 10~20대에게 금강산은 전설처럼 느껴지는 산이다. 발길이 멈춘 지 오래니 옛 자료들만으로는 마음이 가닿지 않은 게 솔직한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2018년 신장식 화백의 붓 끝에서 금강산은 새로이 되살아났다.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을 현대미술로 해석하는 작가가 되고파


그렇다면 신장식 화백이 금강산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 시작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개폐회식제작단 미술총괄보로 일하면서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세계인에게 우리의 멋을 알려주고픈 마음이었지요. 그때부터 우리 민족에 숨어있는 조형적인 언어와 내용을 현대미술을 통해 보여주는 게 저의 길이란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아리랑’이란 주제를 정하고 청사초롱과 경복궁, 연꽃 등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경복궁을 그리고 있는데 북한산과 북악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제 산을 그리고 싶다’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엔 설악산이나 북한산을 고민했어요. 그러다 문득, 휴전선 넘어 금강산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고 하잖아요. 휴전선이란 아리랑 고개를 넘어서 금강산에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1992년 신장식 화백은 금강산에 대한 자료를 모아 연구를 시작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온갖 조선시대 그림부터 일본 사진가가 찍은 금강산 사진, 일제강점기 때의 관광사진첩까지 찾아 다녔고, 결국 1993년 표갤러리에서 금강산 전을 크게 열었다.


“가보지도 못하는 금강산을 왜 그렸냐고 묻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금강산은 아무도 안 그리는 산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금강산은 우리 미학이 세워진 회화사의 성소입니다. 고려시대 노영의 불화 <지장보살도>와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김홍도의 화첩, 김규진의 <금강산만물초승경도> 등에서 알 수 있듯 한국 회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였고요. 그러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소 1,000마리와 함께 방북한 이후 문호가 개방되면서 1998년 금강산 관광이 시작됐습니다. 그때 방북 첫 번째 배를 타고 금강산에 갔어요. 그로부터 10년간, 금강산을 10여 번 방문해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스케치를 했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신장식 화백은 1998년 11월 19일, 금강산을 처음 봤을 때의 벅차오르는 설렘을 기억한다. 그간 여러 자료를 통해서만 보던 금강산의 모습이 두 눈 가득 담긴 순간, 신장식 화백은 ‘우리 산이구나!’란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고 한다. 세계 곳곳에 이름난 산이 무수히 많지만 그 웅장한 아름다움에 감탄할지언정, ‘우리 산’이란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금강산은 보자마자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지난 2월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금강산: 한국 미술 속의 기행과 향수’전에 작품을 출품했어요. 화가로서 우리의 정서와 아름다움을 현대미술로 표현해 널리 알리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인 만큼 정말 감격스러웠습니다. 만약 제가 다시 금강산에 가게 된다면 금강산에서 비박하면서 안개에 둘러싸인 모습을 그리고 싶어요. 또 머지않아 누구나 자유롭게 금강산에 가서 그 웅혼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신장식, <금강산 옥류동의 빛> 2018, 캔버스에 한지 아크릴릭, 130X50cm



신장식 화백의 모습 뒤로, <금강산 옥류동의 빛>이 보인다. 그가 2018년에 그린 작품이다. 잠시 그림을 보고 있으니, 푸르른 희망의 빛이 화폭 밖으로 번져가는 느낌이다. 아리랑 고개를 넘듯, 녹슨 철책을 지나 얼어붙은 마음을 물들이는 빛. 신장식 화백의 바람처럼 앞으로 우리에게 꽃과 같은 평화가 함께하길, 인터뷰를 마치며 가만히 두 손을 모아본다.





신장식 화백

서울대와 동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으며 1987년부터 1988년까지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개폐회식 제작단 미술총괄보 일을 하면서 세계에 우리 문화를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올림픽 이후 전통의 맥을 찾는 작업으로 ‘아리랑’이라는 테마를 추구했으며 우리 민족 정서에 근거한 그의 작업은 1993년부터 ‘금강산’이라는 테마로 옮아간다. 그는 분단 이후 우리 미술사에서 아무도 그리지 않던 금강산 그림을 시도했다.






※ 본 콘텐츠는 산림청 격월간지 '매거진 숲'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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