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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인 산천단 곰솔을 찾아서(19.5.28)

작성일 작성자 산사랑

제주공항에서 대전에서 온 서선생과 만나 이번 여행의 완전체를 이룬 후 늦은 점심 식사를 하고 산천단 곰솔을 보기 위하여 이동을 하였다. 아라민박 김사장님께서 우리나라 소나무 중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는 충북 보은의 정이품소나무와 지금 우리가 찾아가는 제주 산천단 곰솔 두 곳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확인을 해 보니 30여종 이상으로 의외로 많은 소나무들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천연기념물 160호로 지정된 산천단 곰솔..

 

【천연기념물 소나무들】

1. 서울 재동 백송(천연기념물 제8호) : 수령 약 600년, 높이15m 둘레2m로 헌법재판소내 소재

2. 조계사 백송(천연기념물 제9호) : 수령 ? 높이10m 둘레1.6m, 중국에서 들여 온 것으로 추정

3. 보은군 정이품송(천연기념물 103호) : 수령 약 600년, 높이14.5m 둘레5m

4. 합천군 구룡송(천연기념물 289호) : 수령 약 500년 높이18m 둘레6m, 특징은 하늘로 승천하는 용의 형상

5. 거창군 당송(천연기념물제410호) : 수령 약 600년 높이18m 둘레4m, 특징은 큰일이 날 때 울부짖는다고 함

6. 남원군 지리산 천년송(천연기념물 424호) : 수령 약 500년 높이20m 둘레4m, 특징은 인근 할아버지 나무와 함께 부부 소나무로 유명

7, 예천군 석송령(천연기념물 294호) : 수령 약 600년 높이10m 둘레1.9m, 특징은 자기이름으로 토지보유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세금 납부하는 소나무


 

산천단 곰솔은 8기가 있습니다..


각설하고 제주 산천단 곰솔은 당초 9기였으나 1기가 소실되어 현재 8기만 남아 있으며 수령은 약 600년 정도 된다고 한다. 아라민박 김사장의 말에 의하면 한라산 산신제를 산천단에서 거행할 수 있도록 당시 임금인 성종에게 고하고 이전을 허락 받은 제주 목사 이약동은 육당 최남선선생이 청백리중의 청백리로 꼽은 분이라고 한다.


곰솔의 둘레가 성인 세사람이 팔을 벌려야 겨우 손을 잡을 수 있을 정도네요..



【산천단 곰솔】

곰솔은 높게 자라는 소나무과의 상록침엽교목으로 흔히 해송, 검솔 또는 나무껍질이 검은빛을 띤다 하여 흑송이라고도 부른다. 바닷가를 따라 자라기 때문에 해송(海松)으로도 부르며, 또 줄기 껍질의 색이 소나무보다 검다고 해서 흑송(黑松)이라고도 한다. 바닷바람과 염분에 강하여 바닷가의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防風林)이나 방조림(防潮林)으로 많이 심는다.


한국에서는 소나무와 함께 쌍유관속아속에 포함되는데 서쪽으로 경기도, 동쪽으로 강원도 명주군까지 바닷가를 따라 분포하고 있으며, 주 분포지역은 남부지방과 제주도의 해발 700m이하이다. 내한성이 약하기 때문에 중부 내륙지방이나 깊은 산속에서는 자라지 못한다. 수피는 흑갈색이고 가지 끝에 형성되는 겨울눈의 색깔이 희어서 붉게 보이는 소나무와 쉽게 구별이 된다. 잎은 짙은 녹색을 띠는데 약간 비틀리고 끝이 뾰족하며 길이 9∼14㎝이고 2개씩 잎집에 모여 난다.


제주시의 곰솔은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로 향하는 제1횡단도로를 따라 8㎞ 정도 가면 제주대학 입구 건너편에 산천단(山川壇)이라는 곳에 군락을 이룬다. 대흥사 소유로 수령이 500∼600년으로 추정되는 제주 산천단곰솔은 매우 오래되고 큰 소나무로서 생물학적 가치가 크고, 우리 조상들이 자연물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므로 1964년 1월 31일 천연기념물 제160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원래 이곳에는 곰솔이 9그루 있었는데, 1965년 벼락을 맞아 1그루가 고사하고 현재는 8그루만 남아 있다. 높이는 21∼30m로 4그루가 30m, 3그루가 25m이며 가슴높이 둘레는 3.4∼6m, 수관 너비는 12∼24m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제주도의 수목 중에서는 가장 크며, 생육상태는 대체로 양호한 편이나 몇 그루는 풍해로 가지들이 한쪽으로 치우쳐 생장하고 있다. 이 곰솔의 주위는 초원으로 근래에 심은 곰솔들이 함께 자라고 있으며, 곰솔 틈에서는 예덕나무, 머귀나무, 팽나무, 쥐똥나무, 뽕나무 등이 자란다.


예로부터 제주에서는 한라산 백록담에 올라가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데, 길이 험하고 날씨가 추울 때는 인명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산천단은 성종1년(1470)에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약동이 세운 것으로 부임 3년차에 이약동은 험한 산길을 따라 백록담까지 올라가서 산신제를 지내는 것이 많은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임금에게 고하고 이전의 허락을 얻어 지금의 산천단에다 제단을 옮기고 한라산 산신제를 여기서 올리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하늘에 있는 신이 인간 사회에 내려올 때에는 일단 제관이 마련되어 있는 근처의 큰 나무에 내려온다고 믿었다. 이곳 곰솔들도 산천단 천제와 관련해서 하늘의 신이 내려오는 길 역할이 부여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산천단 곰솔은 억센 바닷바람과 맞서서도 굳건히 살아갈 수 있는 수종으로 산천단에 제단을 옮길 때 주변 조경수로 선택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험난한 자연과 싸우면서 살아가는 제주인의 기상을 나타낼 수 있는 대표적인 나무라고 할 수 있다.  [Daum백과 등을 토대로 재작성]


이 곰솔은 지지대로 받치고 있네요..


곰솔의 높이도 상당합니다..


산천단을 만든 당시의 목사로 청백리에 빛나는 분입니다.. 


이약동이 제주 목사로 부임하여 공물과 세금관련 문서를 검토한 바 곡물이 많이 비어 이속들을 추궁하니 쥐들이 먹었다고 변명을 하자 당시 국가전매품으로 소금도 많이 빈 것을 확인하고 역시 이속들을 추궁할 때 이속들이 다시 쥐 핑계를 대자 이속들에게 소금 한바가지 씩을 먹어 보라고 하고 먹지 못하자 작은 쥐들이 얼마나 많아야 먹을 수 있겠느냐며 이속들의 죄를 추궁하여 벌을 받게 하여 백성들의 세금을 경감시켜 주었다고 한다.


지지대로 받친 모습도 예쁩니다..


또한 이약동은 이임을 할 때 재임 중에 착용했던 의복이나 사용하던 기물들을 모두 관아에 남겨두고 떠났는데, 한참 말을 타고 가다보니 손에 든 말채찍이 관아의 물건으로 채찍을 성루 위에 걸어놓고 서울로 갔다. 후임자들이 치우지 않고 오랫동안 그대로 걸어놓고 모범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약동에 대한 아라민박 김사장님의 얘기를 듣고 이약동 한사람의 선한 행위로 인하여 후대의 많은 사람들이 큰 혜택을 받을 수 있음을 이해하면서 작금의 정치인들도 본을 받았으면 하는 생각을 가져 보았다.


왼쪽의 것보다 오른쪽의 것은 키가 조금 작게 보이네요..



제를 지내던 제단.. 


잘 보전되길 기원해 봅니다..



진짜 멋집니다..




한라산 산신제가 제주도의 축제로 정착되어 간다고 쓰여 있네요..

 

멀티미디어는 표시되지 않습니다.
 

 

 

다음은 함덕해변과 서우봉으로 이동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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