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속리산 법주사) –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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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속리산 법주사) – 유네스코 세계유산

앵봉(鶯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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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일주문(法住寺 一柱門)
속리산 법주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일주문을 만나게 된다.

불법(佛法)을 향한 일심귀의(一心歸依)를 뜻하는 이곳 일주문은

승(僧)과 속(俗)이 하나 됨을 의미한다.
법주사 일주문 정면에는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이라고 적힌 현판이 있다.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를 통틀어 으뜸 사찰이라는 뜻이다.

뒤쪽 현판에는 속리산대법주사(俗離山大法住寺)라고 쓰였다.

 

 

보은 속리산 사실기비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7호

보은 속리산 사실기비(報恩 俗離山 事實記碑)는 조선 현종 7년(1666)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동춘당(同春當) 송준길(宋浚吉)이 쓴 것이다.

비문에는 속리산이 명산이라는 것과 세조가 이곳에 행차한 사실 등 속리산의 내력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수정봉(水晶峰) 위에 있는 거북바위의 내력이 쓰여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나라 태종이 세수를 하려는데 세숫물에 큰 거북 그림자가 비쳤다고 한다.

이를 이상히 여긴 태종이 유명한 도사를 불러 물으니 대답하기를,

동국(東國, 한국) 명산에 큰 거북의 형상이 당나라를 향하고 있어

많은 당나라 재물을 동국으로 들어가게 하고 있으니 거북 모형의 물형을 없애라 하였다.

이에 사람을 보내 속리산 수정봉에 있는 돌거북의 목을 자르고,

돌거북의 등 위에 10층 석탑을 쌓아 거북의 정기를 눌렀다고 한다.

 

 

 

보은 법주사 벽암대사비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

보은 법주사 벽암대사비(報恩 法住寺 碧岩大師碑)는 법주사를 크게 중창(重創)한

조선시대 중기의 고승인 벽암대사(1575~1660년)의 행적을 기록한 것으로

현종 5년(1664) 5월에 세워진 것이다.

비문은 정두경이 지었고, 글씨는 선조의 손자인 낭선군이 썼다.

커다란 암반 위에 홈을 파서 세웠으며 규모는 높이 213㎝, 폭 110㎝, 두께 35㎝이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선종(禪宗)의 승려이며 승병장(僧兵將)인 벽암대사는

임진왜란 때에 해전에 참여하였다.

인조 2년(1624)에는 남한산성을 쌓을 때 8도도총섭에 임명되어

승군을 이끌고 3년 만에 성을 완성하였다.

이후 인조 14년(1636)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전국 사찰에 격문을 보내

승군 3천 명을 모은 후 항마군(降魔軍)이라 이름 짓고 남한산성으로 향하였으나,

도중에 전쟁이 끝나 항마군을 해산하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법주사 금강문(法住寺 金剛門)

법주사로 들어오는 둘째 관문인 금강문에는

금강역사(나라연금강, 밀적금강)혹은 인왕역사,

이왕역사라 불리는 호법신장과 사자를 타고 앉은 문수보살상과

코끼리를 타고 앉은 보현보살상이 안치되어 있다.

 

 

법주사 금동미륵대불(法住寺 金銅彌勒大佛)

금동미륵대불은 용화정토에 이르러 깨달음의 법을 설하시는

미래의 미륵부처님의 현존을 의미한다.

화강석으로 만든 높이 약 8 m에 이르는 기단 위에 높이 약 25 m의 거대한 청동대불은

국내에서 최대의 규모이며, 소요된 청동은 약 160톤에 이른다.

조성 당시 불신을 13등분하고 다시 각 등분한 것을 4조각으로 나누어

총 52조각을 용접으로 이어 붙여 올라가는 어려운 공법으로 조성된 미륵불이다.

불기 2534년(1990년) 4월 11일, 6년간의 발원으로 조성공사 후

점안의식 과정에서 세 차례에 걸쳐 하늘이 환하게 열리며 오색 서광이 하늘을 수 놓고,

흰 광선이 미륵불로부터 치솟았다고 이 자리에 참석했던 불제자들은 전하고 있다.

금동미륵대불 기단부 안에는 미륵보살께서 머물고 계신

도솔천의 모습을 형상화시킨 용화전(龍華殿)이 있으며,

용화전 벽면에는 13개의 미륵십선도가 부조되어 있다.

그후 이 미륵대불에 대한 개금불사가 불기 2546년(2002년) 6월에 회향되었다.

 

 

 

법주사 사천왕문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6호

이 건물은 절을 지키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모시고 있는 문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집이다.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처음 세웠으며, 혜공왕 12년(776)에 중창하고,

조선 인조 2년(1624)과 고종 34년(1897), 1972년에 각각 중수하였다.

이 때에 사천왕상도 다시 고쳤다.

사천왕상은 사방을 지켜주며 국가를 수호하는 네신이다.

수미산 사천왕천(四天王天)에 머무는데

동방의 지국천왕(持國天王), 남방의 증장천왕(增長天王),

서방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북방의 다문천왕(多聞天王)을 말한다.

위로는 제석천(帝釋天)을 섬기고 아래로는 팔부중(八部衆)을 지배하면서

불법(佛法)을 믿고자 하는 중생을 수호한다고 한다.

 

 

 

보은 법주사 팔상전(報恩 法住寺 捌相殿) - 국보 제55호

보은 법주사 팔상전은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捌相圖)를 모시고 있는 5층 목조탑이다. ​

법주사를 처음 만들 때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사라진 것을

선조 38년(1605)부터 인조 4년(1620)에 걸쳐 벽암대사가 주관하여 다시 세웠다.

팔상전은 두 단의 석조 기단 위에 세워져 있고 기단 네 면의 중앙에는 돌계단이 있다.

이 기단과 계단은 통일신라 때의 것이다.

각 층의 밑면은 정사각형이며, 1층과 2층은 5칸, 3층과 4층은 3칸, 5층은 2칸으로

위로 올라갈수록 너비가 줄어들어 안정감을 준다.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는 공포는 1층부터 4층까지는 주심포식이고, 5층은 다포식이다.

지붕은 꼭대기를 중심으로 4개의 지붕면이 뻗어 있는 사모지붕이며,

지붕 위 꼭대기 부분은 조선시대의 것으로 지금까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팔상전 내부 한가운데에는 5층 전체를 통과하는 기둥이 있다.

이 기둥의 4면에는 팔상도가 2폭씩 있고, 그 앞에는 열반상과 삼존불상이 있다.

법주사 팔상전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목조탑으로 건축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 된다.

 

 

 

 

법주사 범종각(法住寺 梵鍾閣)

법주사 팔상전 동쪽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976년 종무소를 허물고 그 자리에 새로 지는 건물이다.

범종각에는 또한 불음(佛音)을 전하는 범종(梵鐘),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板) 등 사물(四物)이 함께 설치되는 경우도 있다.

법고(法鼓)는 '법을 전하는 북'이다. 불법을 널리 전하여 중생의 마음을 울려

해탈을 이루게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으며, 온갖 걸어다니는 축생(畜生)을 제도한다고 한다.

목어(木魚)는 나무로 긴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배 부분을 파내고

그 안쪽의 양벽을 두드려서 소리를 내게 한 것이다.

물고기는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으므로 수행자로 하여금

자지 않고 도를 닦으라는 뜻으로 목어를 만들었다고 하며,

지금은 목어의 소리로 물 속에 사는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운판(雲板)은 청동이나 철로써 만든 구름무늬 모양의 넓은 판으로서

공중을 날아 다니는 중생을 제도하고 허공을 헤매며 떠도는 영혼을 천도(薦度)한다.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 - 국보 제5호

신라 석등 중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로 조성연대는 성덕왕 19년(720)으로 추정되고 있다.

높이가 3.3 m로 널따란 8각의 바닥돌 위에 사자 조각이 올려져 있다.

사자 두 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뒷발로 아랫돌을 디디고 서서

앞발과 주둥이로는 윗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석등의 구조는 8각의 지대석에서 하대 연화석과 쌍사자,

연화상대석을 따로 조각하여 쌓아 올리지 않고 하나의 돌에 조각하였으며,

다른 석등들에 비해 화사석과 옥개석이 큰 것이 특징이다.

 

 

 

보은 법주사 원통보전(報恩 法住寺 圓通寶殿) - 보물 제916호

보은 법주사 원통보전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법당이다.

관세음보살을 모셨기 때문에 관음전이라고도 하며

중생의 고뇌를 씻어주는 권능이 모든 곳에 두루 통한다고 하여 원통전이라고도 한다.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없어진 것을 인조 25년에 새로 지었으며,

그 후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원통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된 목조 기와집으로 측면보다 정면이 약간 크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주심포식으로 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다포계와 익공계 수법이 혼용되어 있다.

지붕은 꼭대기를 중심으로 4개의 지붕면이 뻗어있는 사모 지붕이며,

지붕마루에 가운데에 세워진 항아리 모양의 장식은 마치 석탑이나 석등의 꼭대기 부분처럼 보인다.

보은 법주사 원통보전은 여러 차례 고쳐지어졌으나

고대 불전의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어 건축사적으로 중요한 건물로 평가된다.

 

 

 

보은 법주사 석조희견보살입상(報恩 法住寺 石造喜見菩薩立像) - 보물 제1417호

보살상은 전체 높이 213cm 규모로 크게 신체, 공양물, 대좌의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연 암반으로 이루어진 지대석 위에 가로 네모반듯한 모양의 받침돌을

그 위로 중심부에 해당하는 몸통을 세워 고정시켰다.

얼굴 부분은 마멸이 심하여 자세히 볼 수 없지만,

잘록하고 유연한 허리와 대조적으로 그릇받침을 받쳐든 양팔은

힘겨운 듯한 모습을 꽤 사실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옷은 속옷 위에 가사를 걸쳤고, 띠 매듭과 옷자락이 무릎 위에서 투박하게 처리되었다.

향로를 받쳐 든 두 팔의 모습이나 가슴부위의 사실적 표현과 함께

배면 옷의 표현 기법은 절묘하여 같은 경내의 쌍사자석등을 제작한 동일한 시기인

720년 전후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탑 등의 부재(部材)

 

 

법주사 진영각(法住寺 眞影閣)

진영각은 고승(高僧)의 영정(影幀)을 모시는 곳으로 조사각(祖師閣)이라고도 한다.

진영각 안에는 법주사를 창건한 의신(義信)조사와

전법초조 태고선사를 중심으로 모두 30인의 영정(影幀)이 모셔져 있다.

지금의 진영각은 1991년에 새로 지었으며정면 7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명부전(冥府殿), 삼성각(三聖閣)과 나란히 있다.

 

 

기와불사

절과 관련된 어떤 일을 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통칭하여 '불사(佛事)'라고 한다.

대웅전을 새로 짓는 일은 '대웅전불사'라고 하고 폐허가 된 사찰을 다시 세우는 일은 '중창불사',

지붕에 기와(개와)를 입히는 것은 '기와불사(개와불사)', 범종을 새로 주조하는 일은 '범종불사',

불상에 금색을 다시 입히는 일은 '개금불사',

법복인 가사를 새로 만들어 스님들께 드리는 일은 '가사불사'라고 하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교육의 장을 마련한다(교육불사)든지,

경전을 간행하여 무료로 배포하는 일(예컨대 <법화경>을 간행할 경우 '법화경불사'라고 함)도

모두 '불사'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불교에서는 그 어떠한 일이든 개인적인 것이 아닌

공적으로 불교를 위하여 인력과 재정이 들어가는 일은 모두 '불사'라고 한다.

불교에서 하는 일은 모두가 불사 아닌 것이 없다고 보면 된다.

모든 것이 불사라고 하는 개념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다름 아닌 불교(절)의 모든 재산과

기물들은 어떤 것을 막론하고 모두 공유물로서 절대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는 개념 때문이다.

실제 불교에서는 개인의 소유물로 인정되고 있는 것은

한 벌의 가사와 발우, 옷 등 몇 가지 생활도구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사찰의 소유, 즉 공유물이다.

따라서 불사란 바로 '공적인 일'이라고 보면 가장 이해하기 쉽다.

원래 불사란 '부처님 덕을 널리 펴는 것',

또는 불사를 통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지만

후대에 와서는 이처럼 법당을 새로 짓는다든가,

탑을 세운다든가, 범종을 새로 조성하는 등의 일을 '불사'라고 하게 되었다.

 

 

 

보은 법주사 대웅보전(報恩 法住寺 大雄寶殿) - 보물 제915호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의신조사가 처음 건립하여 혜공왕 12년(776) 진표율사가 고쳐지었으나

임진왜란 시 불타 버린후 인조 2년(1624)에 벽암대사가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면적이 402.80㎡, 높이가 약 19m에 이르는 대규모 건물로서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불전의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이 건물과 같은 수법의 건물로 금산사 미륵전이 있다.

내부에는 높이 5.5m, 허리둘레 3.9m에 이르는 국내 소조불 좌상으로 가장 크다고 알려진

보물 1360호 보은 법주사 소로비로자나삼불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명부전(冥府殿)

명부는 사람이 죽어서 간다는 저승의 세계이다.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해서 시왕을 모시기 때문에

지장전(地藏殿) ·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한다.

이 보살은 삭발하고 이마에 띠를 두른 형상을 하고 있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불이 입멸하고 미륵보살이 성불할 때까지,

즉 부처가 없는 시대에 중생을 제도한다는 보살이다.

그는 모든 중생이 구원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보살이기 때문에 ‘대원본존지장보살(大願本尊地藏菩薩)’이라 하고,

특히 가장 고통이 심한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는 데 중점을 둔다고 한다.

시왕은 저승에서 죽은 사람이 생전에 저지른 죄를 심판한다는 열명의 왕이다.

사람이 죽어서 명복을 빌기 위해 지내는 재는,

죽은 날로부터 7일마다 7회에 걸쳐 지내는 49재,

또 죽은 지 100일에 지내는 백재(百齋)와 1주년과 2주년에 지내는

소상(小祥)과 대상(大祥)까지 모두 열번이다.

이 열 번의 근거는 사람이 죽으면 저승의 시왕 각각에게 심판을 받게 되는데,

심판을 받을 때마다 재를 올린다는 명부시왕신앙에 의한 것이다.

명부전은 지장신앙과 명부시왕신앙이 결합되어 생긴 건물이다.

 

 

삼성각(三聖閣)

독성각·산신각·칠성각이 있으며, 대개 삼성각에 삼신을 같이 모신다.

독성각은 불교에서 말하는 독각을 모신 곳이다.

독각은 석가모니처럼 스승 없이 홀로 깨우친 자를 말한다.

산신각은 단군이 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하는 산신을 모신 곳이다.

칠성각은 북두칠성에 축원하는 도교의 신앙을 받아들여

북두칠성을 불교의 여래로 조화하여 모신 곳이다.

따라서 삼성각은 불교가 수용되는 과정에서 토착신앙이나

민간신앙과 융합하여 빚어진 변용이다.

이러한 변용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흔히 목격되는데,

이질적인 신앙을 불교로 포용하여 보다 높은 차원으로 유도한다는 데에 의의가 있으나,

자칫 기복 위주의 주술적 신앙으로 불교의 본질을 왜곡시킬 우려와 폐단도 있다.

 

 

 

보은 법주사 사천왕 석등(報恩 法住寺 四天王 石燈) - 보물 제15호

보은 법주사 사천왕 석등은 사천왕이 조각되어 있는 석등으로 팔상전 서쪽에 있다.

석등은 높이가 3.9m이며, 받침돌과 불을 밝히는 화사석, 지붕돌로 구성되어 있다.

받침돌은 밑받침돌과 위 받침돌이 대칭을 이루도록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화서석은 8면으로 되어 있는데, 한쪽 4면에는 창을 내고 다른 쪽 4면에는 사천왕상을 두었다.

지붕돌은 8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라간 형태이며, 꼭대기에는 보주를 두던 받침이 남아있다.

신라의 전형적인 팔각 석등 양식으로 조각된 것으로 보아 혜공왕(765~780) 대에

진표율사가 법주사를 다시 고쳐 지을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천왕이란 불교에서 수미산을 중심으로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동쪽의 지국천왕,

서쪽의 광목천왕, 남쪽의 증장천왕, 북쪽의 다문천왕을 뜻한다.

 

 

약사전(藥師殿)

약사전은 중생을 병고에서 구제하시는'약사여래불'을 모신 전각이다.

약사여래의 이름을 외우고 가호(加護)를 빌면 모든 재액이 소멸되고

질병이 낫게 된다는 약사신앙은 우리나라에서 뺄 수 없는 중요한 신앙이 되어

대부분의 사찰에 약사전이 건립되었다.

 

 

 

감로천(甘露泉)

 

 

법주사 템플스테이

 

 

매표소 및 속리산 검표소

 

 

결초보은(結草報恩) - 보은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서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山寺, 韓國의 山地 僧院)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법주사

법주사(사적 제503호)는 2018년 6월 30일 우리나라에서는 13번째로,

충북에서는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는 90여 개가 넘는 말사를 거느린

미륵신앙의 요람이자 호서제일의 가람이다.

신라 진흥왕(553년)에 의신조사가 삼국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처음 건립하였고,

‘불법이 머무는 곳’이라는 법주사의 이름처럼 오랜 시간동안 이곳에 머물러 있는 법주사에는

국내 유일의 5층목탑인 팔상전(국보 제55호)과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석연지(국보 제64호),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의 국보 3점을 비롯하여 보물 13점을 품고 있다.

 

 

속리산 법주사 일원 – 명승 제61호

 

법주사를 중심으로 속리산의 천왕봉과 관음봉을 연결하는

일대 18,590,000㎡(5,623,475평)를 말한다.

속리산은 해발 1,057m의 천왕봉을 비롯해 9개의 봉우리가 있어

원래는 구봉산이라 불렀으나, 신라 때부터 속리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속리산 일원은 대한8경 중의 하나로 제2금강 또는 소금강으로 불리는데

4계절의 변화에 따른 경치와 기암, 기석은 절경을 이루고 있고,

대소 사찰이 곳곳에 있어 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속리산의 대표사찰인 법주사는 553년 의신조사가 서역에서 불경을 가져와

산세의 험준함을 보고 이곳에 세운 절이라고 전한다.

혜공왕 12년(776)에 진표율사가 대규모로 중창하였으며,

고려시대를 거치며 현재의 규모를 갖추었으나 정유재란으로 전소되었다.

조선 인조 2년(1624)에 사명대사 및 벽암대사가 중건하고 증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문화유산으로는 국내 유일의 목탑인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55호)을 비롯하여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 석련지(국보 제46호), 사천왕석등(보물 제15호),

대웅보전(보물 제915호) 등 국보 3점, 보물 13점, 천연기념물 1점, 도지정문화재 24점이 있다.

속리산 법주사 일원은 1966년 사적 및 명승 제4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 명승으로 변경 지정되었다.

또한 법주사는 2018년 7월 3일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공주 마곡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속리산에는 법주사를 포함하여 복천암, 탈골암 등 10개의 전통사찰이 있다.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405 (사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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