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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대한민국 2인자 정치사] ③ 제5공화국 장세동

작성일 작성자 새벽이슬

[기획연재-대한민국 2인자 정치사] ③ 제5공화국 장세동
"어찌 어른을 배신하겠는가" 전두환의 영원한 '충복' 장세동
 
문흥수 기자

 

▲ 전두환 전 대통령     © 브레이크뉴스

 
브레이크뉴스 문흥수 기자=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세를 누리던 정권 2인자. 역대 대통령들은 조직이나 관료보단 친인척이나 자신의 복심 2인자를 통해 막후정치 영향력을 행사했다. 한국 정치사에선 보통 2인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베여 있는데, 이는 마치 자신이 절대 권력을 가진 듯 욕망을 앞세우면서 호가호위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권불십년. 절대권력 2인자의 자리 역시 영원할 순 없다. 1인자가 권좌에서 내려오며 갖은 수난을 겪었듯, 2인자 역시 자연스레 비슷한 수순을 밟았다. <브레이크뉴스>에서는 8회에 걸쳐 대통령의 수족을 자처하며 막후 권력을 누렸던 역대 정권 2인자의 삶의 명암을 조명해 본다.

 
전두환의 남자, 장세동

제5공화국 7년간의 철권통치를 휘두른 전두환 전 대통령의 2인자는 단연 장세동(77)이다.

장세동 하면 빼놓을수 없는 일화가 바로 전 전 대통령과의 첫 만남이다.

장세동은 전라도 출신의 육사16기로, 이 두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육사 졸업 후 한참이 지난 1966년이다.

당시 베트남전에 참전한 장세동 대위는 작전 수행 중 베트콩의 기습에 관통상을 입었다.

 쓰러진 장세동에게 위생병들이 이내 달려와 응급치료를 하려 하자, 장세동은 권총을 빼들고선 “부하들부터 먼저 치료하고 나는 제일 마지막에 봐달라”고 명령했다.

장세동은 이 전투에서 다행히 목숨은 건져 군병원으로 후송됐으며 이 때 문병온 사람이 바로 전두환 당시 중령이다.

월남전 당시 전두환은 주월한국군 사령부에서 육사 출신들이 너무 몸을 사린다는 첩보를 확인차 베트남에 방문했다, 장 대위의 활약상을 전해 듣곤 곧장 그를 찾아갔다.

당시 전 중령은 일면식도 없던 장세동을 만나 “너야 말로 참군인이다”라며 마음깊히 그를 격려하고 돌아갔다. 장세동은 이 때 “아 저 분에게 평생 충성을 바쳐야 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이후 장세동은 파월 백마부대 일원으로, 공수특전단장과 대대장으로, 대통령 경호실 상관과 부하관계로 7년8개월을 전두환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장세동은 청와대 경호실장과 안기부장으로 재직할 시절에는 대통령 경호가 단순히 신변을 보호하는 통상적 업무를 넘어 대통령의 심기까지 편안케 해야 한다는 이른바 ‘심기경호’를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대통령의 마음이 편안해야 국정도 잘 되니 심기까지도 경호해야 한다’는 뜻으로, 그가 만들어낸 신조어다.

실제로 장세동은 전 전 대통령이 산책하다 돌부리에라도 걸리면 심기가 불편해질 수 있다며
도로 평탄화 작업을 지시하고, 그것도 성에 안차 산책로에 쌓인 새똥까지 녹여 낼 수 있는 약품을 개발하라는 지시도 했다.

또 전 전 대통령이 찾으면 늘 5분 이내로 출두할 수 있게 항상 대기했으며 호출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머리 손질을 하고, 주군이 쓰는 것과 똑같은 향수를 뿌리고, 윗옷 양 호주머니에는 지도와 메모용 수첩을 반드시 지참해서 갔다고 한다. 깔끔하고 단정한 외모로 주군의 심기를 편안케 하며 수행 중 대통령이 무엇인가를 물을 때 즉시 대답하기 위해서 였다. 이 모든게 '대통령의 심기'를 고려한 행동이었다.

그는 전 전 대통령 퇴임 이후에는 5공 비리 때문에 총 4번의 옥살이를 했는데, “내가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는 한이 있어도 각하가 구속되는 것은 막겠다” 등의 명언을 남기며 전 전 대통령을 끝까지 보호했다.

장세동이 청문회에서 한 “사나이는 자신을 알아봐 준 사람을 위해 죽는다”, “용팔이 사건에는 나 이상의 배후가 없다” 라는 발언에서 언제나 전 전 대통령을 향한 깊은 충성심이 잘 배어난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후에는 곧장 전 전 대통령을 찾아가 “신고합니다! 각하, 휴가 잘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한 일화도 유명하다.

 
장세동은 자신을 알아봐 준 주군을 위해 목숨을 걸었고, 주군이 대통령이 된 후에도, 퇴임한 후에도 주군을 위해서라면 언제나 자신을 버렸다.

평소에도 '어른'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 가겠다고 말했던 그는 지금도 언제나 주변
인사들에게 말한다고 한다. “내가 어찌 어른을 배신할 수 있겠는가”. 그는 지금도 전 전 대통령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함께 한다.

▲ 전두환-노태우     ©브레이크뉴스


‘5공 로드맵’ 짠 허화평

장세동이 전두환의 영원한 충복이라면 허화평(77)은 전씨를 대통령으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허화평은 육군사관학교(17기)를 졸업하고 63년 육군 중위시절 전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나게 된다. 이후 전두환과 연을 이어오다 12.12사태에 가담, 5·17 비상계엄에도 참여했다.

 이후 전 전 대통령의 집권과 함께 대통령 비서실 보좌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해 5공화국의 전체적인 ‘로드맵’을 짰다. 삼국지에 비유하면 ‘5공의 제갈량’쯤 되는 것이고, 영화로 치면 제5공화국이란 영화를 총괄 기획한 감독쯤 되는 셈이다.

 ‘제5공화국’ 초기 허화평은 자타공인 권력의 2인자였다. 당시 장군들은 자연스럽게 허화평에게 아부하거나 굽신거렸고, 장관들까지도 그에게 가 보고할 정도로 권력 실세였다.

하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기 보단, 차기 대권을 잡기 위한 의욕이 보다 강했던 듯 싶다. 자신의 제시한 목표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권력 남용보단 원칙을 중시했다.

5공이 출범하면서 두발자유화나 통금시간해제, 과외금지와 같은 조치를 취한 것도 전부 그의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정의사회 구현’의 일환이었다.

 특히 ‘장영자 사건(이철희·장영자 부부 어음사기 사건)’ 때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인 이순자 여사의 삼촌 이규광씨를 구속시킨 것을 보면, 사회정의 구현에 맞게 처리하겠다는 원칙적 가치를 우선시 한 인물로 평가된다.

 허화평은 당시 전 전 대통령에게 국정에서 친족을 배제하라고 건의할 정도로 원칙을 중요시 하게 생각했지만 결국 전 전 대통령의 눈밖에 나게 청와대를 나오게 된다.

 kissbrea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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