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문경 희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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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은 여행지

[스크랩] 문경 희양산

화려한봄날의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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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용. 백수임에도 마음 편히 노는 신분인 '휴학생' 낑깡입니다ㅋ

이제 곧 있으면 이 땡보 놀이도 끝나겠다(ㅠㅠ), 요즘 어지러운 마음 정리도 할 겸 문경에 다녀왔어요.

보고 듣고 느끼고 온 것이 너무 좋아서 나누어보고자 사진이랑 글 올려요. ^^

 

 

 

 

 

 

 

 

 

오전 11시쯤 가은 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터미널이라지만 서울에서 오가는 버스는 고작 하루 한 대예요. 정류장이라는 편이 더 잘 어울리는 곳 같아요. 버스에서 내리니 비가 쏟아지고 있더군요. 오는 내내 쳐자서 비가 오는 줄도 몰랐어요. 사실 그렇게 일찍 일어난 게 오랜만이었거든요. 하마터면 이상한 곳에 내릴 뻔도 했어요. 졸다가 옆사람 내리길래 헐레벌떡 짐 챙겨서 같이 내리려고 했는데 기사님이 여기 가은 아니라고 말해주셔서 알았어요. 버스 안 사람들 시선을 한껏 받으며 자리로 돌아갔죠. '저 여자 뭐야' 하는 눈초리였는데 거기서 눈치 없이 멋쩍게 웃어버렸어요. 뭐, 제가 언제 그렇게 주목 받겠나요ㅋㅋ

 

비가 참 이쁘다. 서울비 하고는 또 다르구나.. 멍하니 장대비만 쳐다보고 있는데, 서울로 돌아갈 채비를 하던 기사 아저씨가 다가오시더니 피로회복제 한병이랑 약을 건네시는 거예요. 저보고 먹으라면서요. 어디 안가고 우둑커니 서 있으니 궁금하셨나봐요. 어디 가려고 여 까지 왔냐고 물으시더군요. 비 내리는 게 신기하냐면서ㅋㅋㅋ

 

"학생 아침은 먹고 왔어? 안 먹었으면 여 안에서 쫄면 사줄까?"

 

에? 납..치? 자..작업? @_@ 모르는 사람이 사주는 건 넙죽 받아 먹지 말라는 어머니 말씀을 되새기며, 아침 먹었어요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말했죠. 그러니 활짝 웃으시면서 잘 다녀오라 하고는 다시 버스에 오르시더군요. 낯선 사람의 호의가 아직은 낯선 걸 보니 저도 도시 사람 관계에 물들었나봐요.

 

그런데, 이거 너무 고마워서 차마 못 먹겠더라고요. 고이 챙겨두려고 무슨 약인지 보았죠. 아니 근데 이게 왠걸, 다른 약도 아니고 간장약인 거예요. 보통 숙취 해소용으로 먹는... -_-;;

 

...아저씨 눈엔 제가 그렇게 보였나봅니다... 하..... 

 

 

 

 

 

 

 

 

 

 

 

 

 

산을 올라 일주일간 머무를 곳에 도착했어요. 처음 며칠은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신발 더럽히는 진흙땅도 마음에 안 들었고, 파리가 날아다니는 푸세식 화장실도 마음에 안들었어요. 편히 씻을 수 없는 세면장 하나 없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핸드폰도 안 통하고, 시계도 없어 불편하기 그지 없었어요. 잘 닦인 도로와 정수된 물, 따뜻한 방과 깨끗한 화장실이 자꾸만 떠올랐어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제가 자연을 알아차릴 리 없었죠. 

 

그렇게 불평 불만을 하며 며칠을 지냈어요. 그런데 신기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들이 마음에 들기 시작하는 거예요. 잘 닦인 도로보다 푹신한 흙이, 발에 채이는 돌이, 다리를 스치는 풀이, 길 옆에 아기자기하게 난 예쁜 꽃잎이 더 좋아졌어요. 정수된 물보다 시원한 물소리를 내는 계곡 물이 더 좋았고요, 따뜻한 방보다 새소리가 들리고 산이 보이는 마루가 더 좋았어요. 파리가 날아다니고 밑에가 훤히 뚫려있어도, 내가 싸는 똥 마저 어딘가에 보탬이 되게 해주는 푸세식 화장실이 더 좋아졌어요.

 

핸드폰이 없어 지금 내가 있는 곳,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 '지금' 놓인 것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핸드폰 있었으면 손에 쥐고 놓을 생각을 안했을텐데 말이에요. 시계가 없어 불편한 건 솔직히 꽤 오래 갔어요. 일어날 때 밥 먹을 때 산책할 때 잠을 잘 때 지금 몇 시지 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잔머리를 굴려봤죠. 해를 등지고 서서 그림자로 재보기도 하고, 산 너머 해가 어디쯤 떳나 보면서 '밥 먹을 때 구나' 알기도 했어요. 그러는 와중에 저도 모르게 오가면서 한번 더 해를 보고, 산을 보고, 달을 보게 되더군요. 해가 뜨고 지고, 다시 해가 뜨고 지고, 그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산의 모습, 풀의 색깔이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제서야 '진짜' 해가 보이고, 달이 보이고, 별이 보이더라구요. 같은 해고, 달이고, 별이었을텐데 왜 더 예뻐보였을까요. 아, 시계가 없어 좋은 점이 하나 더 있었어요. 아예 시간을 모르니까, '지금 몇시니까 이거 해야해.' '몇시까지 몇시간 남았으니까 빨리 저거 해야지.' '아직 몇시밖에 안됬는데 그동안 뭘한담?' 하는 생각이 안 드는 거예요.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니까 항상 조급하고 불안하던 마음이 사라지더라구요.

 

저, 이러다 귀농하는 건지 몰라요. 말려주겠지 싶어 애인에게 이 소리를 했더니, 애인은 원래 그 생각하고 있었다며 한술 더 뜨네요. 망했어요..

 

 

 

 

 

 

 

저는 천주교 신자예요. 매주는 아니어도 주말엔 성당에 가고, 어려울 땐 하느님을 찾아요. 종교에 관계 없이, 여기 머무는 동안 들었던 스님 말씀이 좋았던 이유는 그거예요. 그렇게 고집하던 나를 내려놓을 수 있었던 거요. 

 

사람들이 뭐가 어땠냐고, 어떻게 달라진 것 같냐고 물어와요.

 

솔직히, 다녀오기 전이랑 다녀오고 난 후랑 세상은 변한 게 하나도 없어요. 여전히 나를 괴롭게 하던 고민들은 그대로 있고, 힘들게 하던 조건들도 그대로 있고, 너 죽네 나 죽네 싸우던 사람들도 그대로 있어요. 더 나아진 것도 더 나빠진 것도 하나도 없어요. 며칠 비웠다고 뭐가 어떻게 변하겠어요. 그런데 내 '마음'이 변했어요. 내가 변하니까 세상이 변하더군요. 마음껏 잘 쓰고 싶은 삶이 제대로 잘 쓰이고픈 삶이 되었네요.

 

그런데 쓰다보니 무슨 다른 세상 사람 마냥 써버린 것 같아요. 아마 절 아시는 분들은 그러실 거예요. 니가 얼마나 착했다고ㅋㅋㅋ 특히 보바.. 니가 얼마나 답장 잘했다고ㅋㅋㅋㅋ 특히 차이모.. 니가 얼마나 시간 잘지켰다고ㅋㅋㅋㅋ 네.. 맞아요.. 운전학원 안에서만 차를 몰 땐 잘 몰던 사람도 도로에 나오면 사고가 날 수 있듯, 사실 저도 이 마음 그대로 살아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모든 건 마음에 달렸다는 걸 알아차렸다는 것 만으로도 일보 전진한 것 같아 뿌듯하네요.

 

참. 산에 없는 것 중에 딱 하나, 여전히 아쉬운 것이 있어요.

 

 

....술.!!!!

아.. 시원한 맥주 생각이 어찌나 나던지 =_= ..... 전 그냥 술 있는 여기서 살아갈래요...ㅋㅋㅋ

 

 

 

 

 

 

 

 

 

 

 

출처 : Lady Soul
글쓴이 : 낑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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