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여행) 수많은 돌탑의 행렬, 이곳은 `꿈이 이루어지는 길`~~양양 오봉산 관음성지 낙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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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여행) 수많은 돌탑의 행렬, 이곳은 `꿈이 이루어지는 길`~~양양 오봉산 관음성지 낙산사

화려한봄날의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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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도길 기자]

▲ 해수관음상 멀리 해수관음상이 보인다.
ⓒ 정도길
사람은 남에게 드러내 보이기 위해 겉모습에 치중하고, 나아가 목숨까지 거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그런 겉모습이야말로 그 사람의 진실된 모든 것을 담았을까. 결코, 아니다. 뼈아픈 과거는 누구에게나 있는 법. 다만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아픔을 간직하며 살고 있다. 사물과 자연도 마찬가지. 뼈아픈 고통을 이겨내며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난 곳으로 찾아 가는 길.

10년 전, 낙산사는 대형 산불로 당우 대부분이 소실되는 큰 피해를 겪었다. 금수강산 자연은 전쟁의 상흔보다 더 큰 폐허를 남겼고, 천년고찰은 그 터마져 흔적을 지웠다. 불자는 물론이요, 전 국민의 신음소리는 천상에 달했다. 그렇다고 아픔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수는 없었다. 국민들의 관심과 불사로 흔적 없이 사라졌던 그 터에 새 생명의 씨를 뿌렸다. 보라! 지금의 낙산사를. 아픔은 치유된다는 진리를, 우리는 낙산사 복원을 통해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아픔의 고통 속에 살고 있다. 그 뼈아픔을 드러내어 이웃과 사회가 관심과 사랑으로 같이 한다면, 새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지 않을까. 낙산사 입구에 하늘 높이 솟구쳐 선 큰 소나무. 그 밑동에는, 화염에 새까맣게 탄 뼈아픈 상흔이 아직도 남아 있다.

▲ 응향각 낙산사 응향각 문으로 본 칠층석탑과 원통보전. 사천왕문에서부터 전각이 일직선으로 배치돼 있다.
ⓒ 정도길
"이 자리 위의 꼭대기에 대나무가 쌍으로 돋아날 것이니, 그곳에 불전을 짓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우리나라 불교사상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고승을 꼽으라면 원효와 의상이라는 데는 크게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법하다. 신라 문무왕 원년(661년), 두 스님은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다. 한 스님은 잠을 자다 갈증을 풀기 위해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을 마시고는, 화엄의 핵심이라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상 모든 일은 마음먹기 달렸다"는 사상이다.

산불로 폐허가 된 땅,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

이에 반해 정통 유학코스를 마치고 귀국한 의상은 관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소문을 듣고 낙산의 관음굴로 찾아간다. 천룡팔부 시종이 굴 속으로 인도하고 7일 만에 진용(眞容)을 뵈고 굴에서 나오니, 계시한 대로 땅에서 대나무가 솟아나 금당을 짓고는 소상을 봉안한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낙산사의 창건설화이다. 이와 함께 관세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하기 위해 간절한 발원으로, 홍련암에서 쓴 261자로 된 '백화도량발원문'은 의상의 화엄사상과 정토신앙의 진수를 보여주는 명문으로 꼽힌다.

▲ 원통보전 원통보전과 7층석탑(보물 제499호).
ⓒ 정도길
강원도 양양군 오봉산에 있는 낙산사는 사적 제495호로 지정된 '양양 낙산사 일원'에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신흥사의 말사로, 671년(신라 문무왕 11년)에 의상이 창건했다. 문화재로, 보물 제499호(낙산사 칠층석탑), 제1362호(양양 낙산사 건칠관음보살좌상), 제1723호(양양 낙산사 해수관음공중사리탑?비 및 사리장엄구 일괄)가 있으며, 명승 제27호인 '양양 낙산사 의상대와 홍련암'이 있다. 강원도 유형문화재로는 제33호(낙산사 홍예문), 제34호(낙산사원장), 제48호(의상대)가 있으며,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6호(낙산사 홍련암)가 있다. 보물 제479호 낙산사 동종은 화재로 소실되고 복원되었지만, 보물에서 지정 해제돼 지금은 결번으로 남아 있다.
▲ 사천왕문 낙산사 사천왕문은 사천왕이 지킨 탓인지 한국전쟁 때와 2005년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때도 화마를 피했다.
ⓒ 정도길
천상의 네 방위에서 불법을 수호하고 사찰을 지키면서 사부대중을 보호하는 사천왕을 모신 전각인 사천왕문.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의 이 문은 한국전쟁과 2005년 양양 산불의 재난 속에서도 화마를 피해가며 제 임무를 다했다. 그런 연유 때문일까. 고맙고 격려하는 뜻에서, 네 곳 천왕에게 합장 기도를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어려움에 처했어도 용케 잘 버텨냈구나. 장하구나!"

사천왕문을 지나 빈일루, 응향각, 7층 석탑 그리고 원통보전으로 이어지는 일직선으로 앉은 전각은 전형적인 사찰의 가람 배치 양식이다. 응향각 문으로 통해 보는 7층 석탑과 관음보살을 모신 원통보전의 정취가 뛰어나다. 원통보전에서 다시 나와, 낙산사가 관음도량으로 상징되는 해수관음상으로 가는 길로 접어드니, '꿈이 이루어지는 길'이란다.

수많은 여행자는 어떤 꿈을 가지고 이 길을 걸을까. 그 작은 꿈을 담기 위해 작은 돌멩이로 쌓은 작은 돌탑. 모두가 소박한 삶의 작은 모습이다.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 큰 꿈을 가져라 주문하지만, 작은 것에 큰 의미를 둔다면 그 보다 더 큰 행복은 없으리라.

▲ 꿈이 이루어지는 길 원통보전에서 해수관음상으로 가는 숲 길. '꿈이 이루어지는 길'이라고 한다. 작은 돌멩이로 쌓아 올린 작은 돌탑이 있다.
ⓒ 정도길
기도는 믿음과 정성이 가득 담긴 지극정성으로

내리쬐는 땡볕은 몸을 지치게 만들지만, 하늘 높이 장엄하게 선 관음보살을 친견하러 가는 마음만은 힘이 솟아 난다. 낙산사 해수관음상은 불자가 아니더라도, 동해바다에 구경 와서 들렀다가 참배하는 코스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관음상은 1972년 착공되어 1977년 11월 6일 점안했다.
▲ 해수관음상 동해바다를 보고 서 있는 낙산사 해수관음상.
ⓒ 정도길
높이가 16m인 해수관음상은, 왼손으로 감로수병을 받쳐 들고 오른손은 가슴까지 든 수인형태로서, 먼 바다를 보며 중생을 구원하고 있다. 해수관음상 앞 복전함 밑에는 돌로 만든 두꺼비상이 있는데, 이 돌 두꺼비를 만지면 두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 말을 누가 믿겠냐마는, 신심이 있다면 잘 풀리지 않는 어려운 일도 잘 되지 않을까. <화엄경>에 전하는 경구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신심은 도의 근원이고 모든 공덕의 어머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온갖 착한 법을 길이 기르며, 의심을 끊고 애착에서 벗어나 열반의 무상도(無上道)를 드러낸다."

관음전에서 108배를 올렸다. 작은 창을 통해 보는, 온화하게 미소 띤 해수관음상의 얼굴은 또 다른 울림으로 가슴을 친다. 기도는 신심과 정성이 기본이다. 믿음이 없는 기도는 하나마나이며, 정성이 없는 기도는 공염불에 그칠 뿐이다. 공염불이란 무엇인가, 신심 없이 입으로만 외는 헛된 염불이요, 정성이 담기지 않은 기도가 공염불이다.

지혜로운 눈이 없어 부득이 어리석음으로 가득 차 업을 지었다면, 업을 소멸시킬 때는 공경한 마음이 담긴 정성으로 가득해야 한다. 우리는 이를 '지극정성'이라 부른다. 내가 지은 업은 남이 소멸시켜 주지 않는 법. 그래서 기도는 믿음과 정성이 담긴 지극정성으로 올려야 함은 물론이다.
▲ 보타전 낙산사 보타전에는 7관음상, 32응신, 1500관음상이 봉안돼 있다.
ⓒ 정도길
낙산사에서 제일 큰 전각인, 정면 5칸, 측면 4칸 팔작지붕을 한 보타전. 원통보전, 해수관음상과 더불어 낙산사가 우리나라 대표적 관음성지임을 상징하는 불전이다. 내부에 모셔진 불상이 크기에서부터 수량까지 보통의 규모가 넘는다. 불단에는 천수, 성, 십일면, 여의륜, 마두, 준제, 그리고 불공견색의 7관음이 중앙에 자리해 있다.

양측과 뒷면으로 32응신과 1500관음상을 봉안해 놓았다. 가히, 우리나라 4대관음성지답게 다양한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 4대 관음도량으로는, 낙산사를 비롯하여, 남해 보리암, 여수 향일암, 강화 보문사를 꼽고 있다.

의상의 생애와 화엄사상이 담긴, 의상기념관
▲ 의상대 의상대는 낙산사를 창건할 때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좌선한 것을 기리기 위해 만든 정자다.
ⓒ 정도길
동해의 푸른 바다가 넘실댄다. 천 년을 살았음직한 제멋대로 휘어진 소나무 세 그루, 그 옆에 자리한 의상대는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놓은 듯하다. 의상대는 낙산사를 창건할 때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좌선한 것을 기리기 위해 만든 정자다.

조금 멀리 해안가 암벽에 자리를 턴 홍련암도 보인다. 홍련암은 낙산사 창건의 모태가 된 암자로 관음굴 위에 자리하고 있다. 당시, 의상대사는 파랑새가 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이상히 여겨 7일 밤낮으로 기도한 끝에, 바다 위 붉은 연꽃이 솟아나고 그 위에 관음보살이 나타난 것을 친견했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내부에는 작은 구멍이 있어 살펴보니 아래로 바닷물이 철썩대며 석굴에 들락날락 하고 있다. 그때 그 파랑새는 어디가고, 연꽃을 피운 바닷물만 굴 속을 드나들고 있다.
▲ 홍련암 홍련암은 낙산사 창건의 모태가 된 암자로 관음굴 위에 자리하고 있다.
ⓒ 정도길
중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낙산사를 지은 의상. 이어 미리사, 화엄사, 해인사, 보원사, 갑사, 화산사, 범어사, 옥천사, 국신사 등 화엄십찰을 건립하게 되는데, 이 중에는 이름이 잘 알려진 사찰이 있음은 물론이다. 이밖에도 불영사 등 여러 사찰을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낙산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 탓일까, 의상기념관에서 그의 생애를 엿볼 수 있다. 기념관에는 의상의 진영과 그의 일대기를 그린 여덟 폭의 불화, 화엄의 핵심인 '화엄일승법계도'와 '백화도량발원문'을 담은 10폭 병풍, 서적 그리고 각종 유물이 전시돼 있다.
▲ 108배 양양 낙산사 관음전에서 해수관음상을 향해 108배를 올리고 35번 째 108 염주 알을 꿰었다.
ⓒ 정도길
경내에서 두 시간을 넘게 머물다 돌아 나오는 길. '무료국수공양실'에서 국수 한 그릇으로 허기를 채웠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모든 것에 고마울 따름이다. 세상이 각박하다고 원망하기보다는, 나의 존재가 중요하고 내가 부처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또 하나의 작은 소망이 있다. 다시는 산불 등 자연재해로 금수강산 자연을 파괴하고, 소중한 문화유산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108산사순례> 그 서른다섯 번째 여행은 관음도량 낙산사에서 108배를 올리고 염주 알을 꿰었다.

겨울 바다와 파도카페를 방문한 립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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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겨울 바다와 파도
글쓴이 : 요산 요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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