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의 진실

15.3.29 영문고지도, 1780년경까지 '베링해'를 육지로 그렸다. 15.3.29

작성일 작성자 anian

 

영문고지도, 1780년경까지 '베링해'를 육지로 그렸다
베링해협을 통해 아메리카로 간 인디언들의 풍습, 풍속은.. 한계레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 윷놀이는 베링해협을 건너간 아메리카 인디언(원주민)들의 풍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사진출처= http://m.blog.daum.net/sh5306kr/13632088#     © 편집부

[홍익/통일/역사=플러스코리아타임즈-김종문] 현재 전세계에 유통되고 있는 영문고지도들은 동일제작자의 지도들조차 일관성이 없으며 백수십년의 세월동안 다른나라 다른사람들이 동일한 지도에 장식을 화려하게 하여 고지도들을 제작했다고 하는 것을 확인 하였습니다. 그러한 지도들은 전부 진실된 고지도들을 숨기고 만들어진 조작지도들일 것입니다. 

전 세계에 유통되고 있는 17,18세기 영문세계지도들의 대다수는 조작으로 보입니다. 이를 알 수 있는 근거들은 너무나 많으며 그 중 확실한 근거는 Bering Sea(베링해)지역을 상세히 그린 다수의 영문고지도들에 베링해가 1780년경까지도 육지였다는 것입니다.

16세기 영문세계지도들에 미대륙은 아시아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한 면만 대륙으로 길게 연결되어 있으며 현재의 Bering Strait(베링해협)과 Bering Sea(베링해)는 존재치도 않았습니다.

▲ 1536 Orontius Finaeus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수많은 17,18세기 영문세계지도들은 대륙이 분리되고 중간에 베링해협과 베링해가 있었던 것으로 그려져 있으며, 현재의 베링해협과 베링해를 보면 그러한 고지도들이 진실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 (좌)1752 Berlin/ Leonard Von Euler  (우)1766 Paris/ Louis Brion de la Tour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17, 18세기 영문세계지도들은 고 지도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화려하고 선명하며 베링해지역을 보면 부정확하고 일관성이 없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Bering Strait(베링해협)은 깊이 30~50m 너비85km이고 Bering Sea(베링해)의 북쪽지역도 깊이가  비슷하다.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베링해협과 베링해북부는 현재도 수심이 30~50m로 너무나 얕으며 거리도 82km(공식적으로는 85km)정도로 매우 가까운 거리이며 현재 베링해협을 통해 북극해가 강력하게 내려오는 것을 감안하면 16세기 고지도들처럼 북해가 내려오지 못했을 때에는 베링해협과 베링해는 육지였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어떤 이유로 현재처럼 된 것인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수많은 18세기 영문 고지도들에 베링해는 육지였습니다.
  
▲ 1756 Buache Philippe 18세기중반 베링해는 육지였으며 베링해협은 매우 좁았다.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18세기 베링해를 육지로 그린 지도들은 영문고지도들 중에 북태평양지역을 그린 지도들에 많으며 세계사에서 육지인 베링해를 배를 타고 탐사했다는 베링탐사 이후에도 베링해를 일관성 있게 육지로 그렸습니다. 베링해를 육지로 그린 지도들 자체가 현재의 세계사가 거짓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 Bering Sea(베링해)를 육지로 그린 18세기 영문고지도들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수많은 영문고지도들이 1780년경까지도 베링해를 일관되게 육지로 그렸습니다. 
 
▲ 1780 Paris/ J.A. Dezauch  Bering Sea(베링해)는 1780년에도 육지였다.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1780년 이전 육지였던 베링해를 바다로 그린 고지도들을 조작으로 보는 것은 당연하며 그러한 기준을 세우고 고지도들을 보면 현재 유통되고 있는 17,18세기 고지도들의 대다수가 조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감추기 위한 조작들도 많이 보입니다.

베링해를 바다로 그린 지도들
 
베링해를 육지로 그린 지도들을 제작했던 Jacques Nicolas Bellin의 1748년 1755년 세계지도들은 베링해를 바다로 그렸습니다. 너무나 화려하게 채색을 하였지만 내용이 전혀 다른 지도들을 동일인의 지도로 유통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 Jacques Nicolas Bellin의 지도들은 베링해를 다르게 그린 두 부류가 있다.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위의 우측지도들은 일관성이 없는 지도들로 전혀 다른 지도들에 이름만 달아준 것으로 보입니다. 왜 우측의 지도들을 만들었을지는 왼쪽지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Jacques Nicolas Bellin은 '지도를 엉터리로 그렸고 일관성이 없다. 그래서 믿을 수 없다.'고 하기 위한 것이겠습니다.

그럼 1780년경까지 베링해가 육지였음을 증거하는 여러 영문 고지도들을 근거로 고지도의 조작을 가려보겠습니다. 조작을 가릴 때는 우선은 지형을 보고 지명을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조작들이 있으니 유명제작자들의 지도들 중 한 개만 보겠습니다.

▲ 대조선 숙종 34년(1708) 관상감에서 제작했다는 坤輿萬國全圖(곤여만국전도)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 (좌)숙종34년(1708년)의 坤輿萬國全圖(곤여만국전도)  (우)1757 Paris/ Buache Philippe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숙종34년(1708년)의 坤輿萬國全圖(곤여만국전도)는 마테오리치의 1602년 곤여만국전도와 지도는 동일합니다. 그러니 마테오리치가 만들었다는 곤여만국전도의 지형이라는 것인데 베링해협를 보면 현재도 85km로 매우 가까운 거리인데도 십수배 멀게 그렸으며 1780년대에도 육지였던 베링해를 바다로 그렸습니다.

곤여만국전도는 베링해협의 중앙에 있는 섬을 크게 그렸습니다. 관련학자분들이 이 지도를 정확하다고 말할 때 베링해협의 섬을 말하지만, 1780년 이전에 베링해협지역을 상세히 그린 영문고지도들에 베링해협은 현재보다 매우 좁았으며 중간에 커다란 섬 자체가 없었습니다. 

1602년 마테오리치는 어떻게 있지도 않은 섬을 그렸던 것일까요? 설마 미래를 예견하고 그린 것일까요 곤여만국전도의 해안선은 베링해를 육지로 그린 18세기의 지도들보다는 현대의 지형과 더 비슷합니다.
 
▲ 베링해를 바다로 그린 坤輿萬國全圖(곤여만국전도)는 현대의 지형과 비슷하다.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 1757 Paris/ Buache Philippe  18세기 중반 베링해협은 매우 좁았고 베링해는 육지였다.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육지인 베링해를 바다로 그린 곤여만국전도는 조작지도로 보입니다. 이것은 어떤 전문가만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슴과 말을 구분하는 것은 보통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듯이 수많은 영문고지도들이 1780년 까지도 베링해를 육지로 명확하게 그렸으므로 육지인 베링해를 바다로 그린 곤여만국전도는 조작일 것이며 곤여만국전도와 비슷한 다른 고지도들도 같을 것은 당연합니다. 

이러한 기준은 수많은 고지도들에 통용될 수 있는 기준이 될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 말했는가는 중요치 않습니다. 역사를 알고 싶은 사람은 고지도를 봐야하며 그러한 사람들을 지쳐 포기하게 만들기 위하여 천문학적인 자본이 필요한 무수한 조작들은 만들어 졌을 것이며 그러한 조작들을 가리는 기준을 알면 조작지도들로부터 소중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앞으로 고지도들을 통하여 대조선의 중요지명들이 어디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동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지리인식의 회복은 역사회복의 시작입니다. 부디 참된 고지도들을 통해 지리인식을 회복하시어 민족과 인류의 역사를 바르게 아시길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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