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의 진실

[고지도]몽골을 이동시킴에 따라 북경과 통주도 이동시켰다 15.4.22

작성일 작성자 anian
[고지도]몽골을 이동시킴에 따라 북경과 통주도 이동시켰다
북경-통주, 대조선 역사 조작하기 위하여 몽골과 함께 이동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홍익/통일/역사=플러스코리아타임즈-김종문] 1570년 이전에 제작된 영문고지도들은 미국대륙(아메리카)을 ASIA의 韓半島(한반도)로 그렸고, 1700년 이전에 제작됐다는 영문고지도들의 대부분은 MONGAL(몽골, 蒙古)을 현재의 유라시아 중앙이 아닌 북동으로 만리너머 북해근처에 표시했다.
 
그러나 1700년 이후에 제작됐다는 고지도들의 대부분은 MONGAL을 현재의 유라시아 중앙으로 표시 했으며 Bering Strait(베링해협)은 MONGAL(몽골, 蒙古)과 遼東(요동)의 접경지역으로 北京(북경)의 동쪽 通州(통주)에 해당하는 지역이었으나, 몽골이 유라시아 중앙으로 이동되면서 北京(북경)과 通州(통주)도 함께 이동되게 됩니다.

▲ 1534 Orontius Finaeus  1: MONGAL(몽골, 蒙古), 2: TOLOMA(모든 길이 통하는 로마), 3: Chairan(해란), 4: TANGUT(서하, 西夏), 5: PIGMEI(고구려 평양, 平壤), 6: CATAY(북중국 거란, 契丹), 7: MANJI(남중국 만자, 蠻子), 8: 大遼水(대요수) 1700년 이전에 제작됐다는 영문고지도들의 대부분은 몽골을 북해인근 현대의 Sakha Republic(사하공화국)지역에 표시했으며 16세기 영문고지도들은 몽골의 남쪽에서 태평양으로 흐르는 大遼水(대요수)를 경계로 현 아시아와 韓半島(한반도)인 미대륙을 분리하였다.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10세기 중엽 MONGAL(몽골, 蒙古)의 동쪽 滿洲(만주)에서 남하한 거란족들의 遼(요나라)(947~1125)는 요동반도 북쪽에 수도인 南京(남경)을 건설하였고, 12세기 중엽에 이르러 黑龍江(흑룡강)유역에서부터 남하한 女眞族(여진족)이 遼(요나라)를 멸하고 金(금나라)(1115–1234)를 세우며 요의 南京(남경)은 중도(中都)라는 이름의 새로운 금의 수도로 재건됩니다. 이시기 금나라는 北海(북해)의 흙을 파서 北京(북경)의 景山(경산)을 만들었다고 하며 북해 근처 MONGAL(몽골, 蒙古)동부 흑룡강유역에 본거지가 있었던 금나라가 흑룡강지역으로 대륙의 부와 식량들을 옮겨가기 위해서는 北海(북해)와 연결된 강과 大遼水(대요수) 사이에 수로를 연결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MONGAL(몽골, 蒙古)의 동남쪽 遼東(요동)의 북쪽에 있었던 金(금나라)의 중도(中都)는 후에 淸國(청나라)의 北京(북경)이 되나 현재는 MONGAL(몽골, 蒙古)을 북해근처에서 유라시아 중앙으로 이동시키면서 함께 지명이동 되었고 그래서 현재의 북경과 통주는 사서들의 기록들과 불일치 하고 있습니다.
 
▲ 1: MONGAL(몽골, 蒙古), 2: Great Wall(만리장성, 萬里長城), 3: TOLOMA(모든 길이 통하는 로마, 羅馬), 4: Chairan(해란, 海蘭), 5: 大遼水(대요수),  6: 遼東(요동), 7: 遼西(요서), 8: 滿洲(만주), 9: VALASCO호수(흑룡강, 黑龍江), 10: 北京(북경) 16세기 영문고지도들의 지형은 현재 수심이 낮은 지역을 육지로 그렸을 때와 비슷하며 16세기, 18세기 영문고지도들을 참고하여 지형과 지명들을 복원해 보면 매우 넓은 지역이 육지에서 바다가 된 것을 알 수 있으며 Bering Strait(베링해협)의 위치는 MONGAL(몽골, 蒙古)의 동남쪽 遼東(요동)과의 접경지역인 원안의 통주(通州)지역이다.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淸國(청나라)의 北京(북경)은 모래사막에 있었다.

北京(북경)은 MONGAL(몽골, 蒙古)의 동남쪽 에 있었으며 대조선COREA의 鴨綠江(압록강)을 건너 遼東(요동)부터 사막으로 북경근처는 사막의 정도가 심했다고 합니다.

1720년(숙종 46) 동지사 겸 정조성절진하(冬至使兼正朝聖節進賀)의 정사로 부사 이교악(李喬岳), 서장관 조영세(趙榮世)와 함께 청나라에 다녀와서 기록한 庚子燕行雜識(경자연행잡지)를 보면, 

중략... 압록강을 건너서 북경에 이르기까지는 땅이 모두 모래이고, 요동 들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왕래하는 거마가 더욱 많고 모래는 더욱 미세해서 바람만 불면 휘날려서 마치 연기나 안개가 낀 것과 같다. 관내(關內)로 들어가면서 더욱 심해서 비록 바람이 없는 날이라도 수레바퀴, 말발굽이 지나간 뒤에 일어나는 것이 마치 횟가루가 날듯 해서 사람의 옷과 모자에 붙는다. 교자(轎子) 안에서는 사(紗)를 내려서 막지만 워낙 미세하기 때문에 새어 들어오기가 더욱 쉬워서 잠깐 사이에도 언덕처럼 쌓인다...

...自渡江至北京。地皆沙。自入遼野。往來車馬益多。沙益細。乍風輒揚。狀若煙霧。關內尤甚。雖無風之日。輪蹄間觸起者如灰揚。着人衣帽。在轎內。垂紗以遮。而由其細故。透入尤易。頃刻之間。堆積如丘。(경자연행잡지(庚子燕行雜識) 하)
 
▲   1531 Orontius Finaeus 1: MONGAL(몽골, 蒙古), 2: BALOR DRSERT(베얼사막,孛兒沙漠), 3: 鴨綠江(압록강), 4: 北京(북경)  16세기 영문고지도들은 蒙古(몽골)을 Bering Strait(베링해협)서쪽 북해인근에 표시했고 남쪽으로 거대한 孛兒沙漠(베얼사막)을 표시했으며 北京(북경)은 蒙古(몽골)의 동남쪽 요수의 서쪽에 있었기에 COREA의 鴨綠江(압록강)과 北京(북경) 사이에는 거대한 沙漠(사막)이 있었다.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청나라에 다녀온 대조선COREA의 사신들의 여러 연행록들에 ‘鴨綠江(압록강)에서 淸國(청나라)의 北京(북경)에 이르기까지는 땅이 모두 모래’였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국역승정원일기 > 인조 22년 갑신(1644, 순치1) > 9월 20일(을사). 빈객 김광욱(金光煜)과 한흥일(韓興一)이 아뢰기를,

“신들이 가까운 시일 내에 서로 잇따라 하직 인사를 해야 하는데, 지금의 형세는 심양으로 갈 때와 다릅니다. 의주에서 북경까지 3000여 리의 노정을 두세 명의 노복만을 데리고 가서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주(伊州)와 심양(瀋陽) 사이의 거리 역시 10여 일이 걸리는 노정으로 인적마저 끊긴 황량한 사막이니, 비록 여름철이라도 땔감용 초목을 구하기가 어려운 형편인데 하물며 엄동설한에는 오죽하겠습니까...

賓客金光煜·韓興一啓曰, 臣等近將相繼辭朝, 而目今形勢, 與赴瀋之時有異, 自義州, 至北京三千餘里, 只率二三奴僕而行, 非但得達爲難。伊瀋之間, 亦是十餘日程, 無人烟荒磧之地, 雖在夏節, 柴草猶難, 況當寒冱之時乎?...

▲ 현대의 韓半島(한반도)인 朝鮮半島 (조선반도)와 北京(북경) 사이는 사막이 아닌 녹지들이며 사신들이 왕래했다는 義州(의주)와 北京(북경)의 길은 약 910km로 2000리 정도에 불과하다.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 MONGAL(몽골, 蒙古), 1: 淸國(청나라)의 北京(북경), 2: COREA 義州(의주)   1700년 이전에 제작됐다는 영문고지도들의 대부분은 몽골을 북해인근 베링해협 서쪽에 표시했으며,  몽골의 동남쪽에 있었던 북경은 베링해협서쪽인근에 있었으며 한반도인 미대륙의 의주지역과의 거리는 삼천리(1410km) 이상이 나오며 중간은 16세기 영문고지도들에 사막으로 표시되던 지역이다.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대조선COREA의 義州(의주)에서 淸國(청나라)의 北京(북경)을 가는 길은 3000여 리(약1410km)의 먼 길이나 현재의 의주와 북경의 거리는 길게 잡아도 2000리로 크게 못 미치며 중간은 사막들로 되어 있어 불을 피울 풀도 없었다고 했으나 현재의 의주와 북경은 사이가 사막이 아닌 녹지들로 되어 있으며 당연히 사막이 아닌 녹지에 있는 현재의 북경은 조건이 맞지 않습니다.

17세기 초 通州江(통주강)은 얕은 여울이었다.

丙子胡亂(병자호란) 후에 後金(후금)에 볼모로 잡혀 갔던 소현세자(昭顯世子)가 이자성(李自成)의 반란(反亂)시기 인조대왕께 드린 편지를 보면 山海關(산해관)에서 北京(북경)으로 가는 길에 通州江(통주강)은 얕아서 배 없이 건널 수 있었습니다.

인조 45권, 22년(1644 갑신 / 명 숭정(崇禎) 17년) 5월 23일(경술) 3번째기사

...27일에는 영평부(永平府) 난하(灤河)의 하류인 난주(灤州)의 남쪽에서 묵었고, 28일에는 개평위(開平衛)의 성 서쪽으로 10리쯤 되는 곳에 도착하였고, 29일에는 옥전현(玉田縣) 앞에 도착하였으며, 30일에는 계주(薊州)의 남쪽으로 20리쯤 되는 지역에 도착하여 묵었습니다. 5월 1일에는 통주강(通州江)의 얕은 여울을 건너 저녁에 통주의 서쪽으로 20리쯤 되는 지역에 이르러 묵었습니다. 하루 평균 행군이 1백 20∼30리 정도가 됩니다.

... 二十七日宿永平府灤河下流灤州之南。 二十八日到開平衛城西十里地, 二十九日到玉田縣前, 三十日到薊州之南二十里地止宿。 五月初一日涉通州江淺灘,, 夕至通州西二十里地止宿, 每日之行, 殆一百二三十里。 

18세기 초 通州江(통주강)은 매우 큰 강이었다.

통주강(通州江)은 원래 깊이가 얕았습니다. 그런데 18세기 청국의 북경을 다녀온 사신들의 기록에 통주강(通州江)은 매우 큰 강이며 유속이 빠른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경자연행잡지(庚子燕行雜識) 상

... 통주강(通州江)은 일명 노하(潞河)라고 하고, 속칭 외하(外河)라고도 한다. 수원(水源)이 멀고 흐름이 빠른데 모래 웅덩이가 많다. 여름이나 가을만 되면 폭우가 내려 터지기가 가장 쉽고 또 조금만 가물어도 얕아져서 배 다니기가 불편하기 때문에 얕은 여울 50여 곳을 파냈다. 이것이 곧 천하의 항로(航路)이다. 통주라는 이름도 이 때문에 생긴 것이라 한다.

...通州江一名潞河。俗又呼爲外河。源遠流駛。率多沙溜。每夏秋暴雨。最易衝決。少遇天旱。舟便淺澁。故設淺五十餘處卽天下通漕之處也。通州之稱。亦以是云。

계산기정(薊山紀程) 제5권

요동의 태자하(太子河), 심양의 혼하(渾河)ㆍ주류하(周流河), 금주의 대릉하(大凌河), 영평부의 청룡하(靑龍河), 풍윤현의 환향하(還鄕河), 계주의 어양하(漁陽河), 삼하현의 호타하(滹沱河), 통주의 백하(白河) 등 13개의 하수에는 모두 배와 다리가 있다. 그런데 백하ㆍ주류하가 가장 커서 우리나라의 임진강(臨津江)만 하고 그 나머지 8개의 하수는 전주(全州)의 저탄(猪灘)만 할 따름이다.

遼東太子河。瀋陽渾河,周流河。錦州大凌河。永平府靑龍河。豐潤縣還鄕河。薊州漁陽河。三河縣滹沱河。通州白河。此十三水。皆有舟橋。白河,周流河最大。如我國臨津。其餘八水。如全州猪灘而已。

通州江(통주강)은 북에서 남으로 흘렀으며 강의 시작이 어디인지도 모르게 멀고 강이 얕아서 인조 22년(1644) 배 없이 건널 수도 있었는데 庚子燕行雜識(경자연행잡지, 1720)의 통주강은 조선에서 대강으로 불리는 臨津江(임진강)처럼 커졌습니다. 이것은 淸國(청나라)에서 통주강의 얕은 여울 50여 곳을 파내면서 北海(북해)를 수원으로 강하게 연결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물이 적어서 걸어서 건널 수 있었던 강이 백년도 안되어 임진강처럼 거대하고 빠르게 흐르는 강이 되었던 것이며 천하의 航路(항로)를 만들었다고 칭송하였던 것입니다.

▲ 18세기의 通州江(통주강)은 COREA의 임진강만큼 컸으나 현재의 통주강은 190m정도의 보통 강으로 현재의 通州江(통주강)은 역사속의 통주강과 조건이 맞지 않으며 원래 淸國(청국)의 北京(북경)과 通州(통주)는 인접해 있었기에 세계사조작으로 만들어진 현재의 통주도 북경과 인접해 있다.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淸國(청나라) 건국초기 北京(북경)은 MONGAL(몽골, 蒙古)동남쪽 사막지대에 있었으며 대조선COREA의 義州(의주)에서 淸國(청나라)의 北京(북경)을 가는 길은 3000여 리(약1410km)의 먼 길이었으나 현재의 의주와 북경의 거리는 길게 잡아도 2000리로 크게 못 미치며 압록강을 건너서 북경에 이르기까지는 땅이 모두 사막들로 되어 있어 불을 피울 풀도 없었다고 했으나 현재의 의주와 북경은 사이가 사막이 아닌 녹지들로 되어있으며 北京(북경)동남쪽 通州(통주)에 通州江(통주강)은 대조선COREA의 대강인 임진강보다 커다란 강이 흘렀으나 현재는 190m정도의 작은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현대의 北京(북경)과 通州(통주)는 수많은 여러 사서들의 기록들과 맞지 않으며, 대조선COREA의 역사를 조작하기 위하여 MONGAL(몽골, 蒙古)과 함께 이동되어 만들어진 지명들인 것입니다.

 

 

 

 http://www.pluskorea.net/sub_read.html?uid=42062





맨위로
통합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