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의 진실

조선의 압록강 하류넓이 50km, 북한의 압록강 고작 700m

작성일 작성자 anian
조선의 압록강 하류넓이 50km, 북한의 압록강 고작 700m
요동이남의 바다인 압록강 하류는 천하의 어장으로 물고기가 많은 지역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홍익/역사/통일=플러스코리아타임즈-김종문] 1700년 이전에 제작됐다는 영문고지도들의 대부분에 MONGAL(몽골, 蒙古)은 Bering Strait(베링해협)서쪽 북해(北海)인근에 있었다.

蒙古(몽골)의 남동쪽 수천리에 있었던 좌우천리의 거대한 백두산(白頭山)은 Alaska(알래스카)의 Mt McKinley(맥킨리산, 6168m)이다. 鴨綠江(압록강)은 역사상天下 三大江(천하 삼대강)으로 불렸다. 백두산(白頭山)서쪽에서 발원한 오리목색의 압록강은 서쪽으로 천여리를 거치며 여러 강들을 흡수하여 거대한 강으로 변하였다.

참조기사: '몽골', 17세기까지 1만리 떨어진 북해 근처에 있었다
참조기사: 현 백두산은 조선의 백두산과 달라, '몽골의 동남쪽에 있었다'
참조기사: 천하 3대강 '압록강'은 북한의 압록강이 아니다 

의주서쪽 압록강의 너비는 20여리

鴨綠江(압록강)은 의주서쪽에 이르러서는 압록강(5리), 소서강(1리), 중강(4리)으로 나뉘어졌으며 사이에는 여러 섬들이 있었다. 의주서쪽의 섬들을 포함한 압록강의 총 너비는 20여 리였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별집 제18권 변어전고 중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갑술년 7년(1574) 에 중국에서 보(堡)를 장전자(長甸子)에 설치하니, 의주와 20여 리 떨어진 곳이므로, 저쪽에 사는 백성의 집이 장차 압록강까지 맞닿게 되었다.”

보(堡)란 강가에 만드는 제방을 말하므로 의주와 장전자와의 거리 20여 리는 의주서쪽 압록강의 너비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압록강은 너무나 거대해서 강폭이 일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지점 어느 계절이냐에 따라 강폭이 크게 달라졌다. 현재 남북의 한반도의 의주서쪽 압록강의 너비는 160m이다. 강의 너비 자체가 전혀 다르기에 조작된 현재의 지리로는 역사기록들을 바르게 해석 할수 없는 것이다.

압록강 하류의 너비는 50km였다.

의주이남의 압록강을 바다라 한 것은 바다처럼 거대하다는 의미로 판단된다. 압록강은 동국조선COREA와 대조선의 中朝(중조, 중국 조정)인 明(명)이 관리하던 요동과의 경계선으로 압록강 하류의 너비는 10레구아(50km)정도였다고 한다.
 
16세기말 배달겨레에게는 잊을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던 임진왜란(1592~98)이 있었다.

그들은 대조선COREA에서 예수교를 전파하기 위한 "성전(聖戰)"을 벌인 십자군이었다. 왜군들은 무고한 조선인들을 죽이고 코 베고 귀 베었으며 예수교왜군들도 다름없었다.

▲ A: 스페인 예수회 신부 Gregorio de Cespedes(그레고리오 데 세스빼데스, 1538-1608), B: Hasekura Tsunenaga(하세쿠라 쓰네나가, 1571 - 1622) . 역사기록들에 일본(日本)은 단일 국가가 아니며 그 안에 여러 나라들이 있었다고 하였다. 임진왜란은 대조선COREA의 동해 바다인 대서양에서 생활하던 해양세력들이었던 동이(東夷)들이 결집하여 백만대군으로 대조선COREA를 침공하였던 세계대전이었다. 대조선시기의 동이(東夷)는 민족이 아니라 대조선의 동해바다의 해양세력들을 이르던 말이었다. 당시 왜군의 선봉 부대는 예수교인들로 이루어졌다. 예수교왜군들은 대조선COREA에 예수교를 전파하기 위한 성전을 벌였으며 조선인들을 죽이면 코를 베고 귀를 베어서 실적으로 보고 하였다. 세스뻬데스는 예수교종군신부였으며 하세쿠라는 임란 이후 교화황(교황)을 알현하였던 예수교사무라이로 백인이었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임진왜란 시기 카톨릭왜군과 함께 COREA에 들어왔던 스페인 예수회 그레고리오 데 세스빼데스(Gregorio de Cespedes, 1538-1608) 신부가 남긴 기록들 중에는 아래와 같은 기록이 들어 있다. (박철, 세스빼데스- 한국방문 최초 서구인(서강대출판부), 226p)


"강 하류의 길이가 10레구아나 되는 수량이 풍부한 강을 중심으로 꼬라이와 중국이 나뉘어 있으며, 전하는 바에 의하면, 꼬라이에는 지나가기 어려운 거대한 사막이 있다."


COREA(동국조선, 東國朝鮮)과 MING(명, 明)의 경계인 강은 요동과 평안도의 사이를 흐르던 압록강이었다. 천하 3대강인 압록강은 하류가 10레구아(약 50km)나 되는 거대한 강이었던 것이다. 
 
COREA에는 지나가기 어려운 사막이 있었다. 요동은 대대로 COREA의 영토였으며 요동인들도 원래는 COREA인들이었다. 역사기록상에 요동지역은 사막이었으며 고지도상에도 북미 북부는 사막들이 많이 있었다. 현재도 북미 알래스카서부와 캐나다 북서부에는 사막들이 곳곳에 있다.


참조기사: '3만리 한반도는 미대륙, 북쪽은 사막이다' 지금 한반도는?
 
현 동북아세아(東亞細亞)에 하류의 너비가 10레구아(50km)인 강은 없다. 강의 폭이 50km라면 강보다는 바다로 불렸을 것이다. 여러 역사기록들에 압록강은 의주동남쪽부터 바다라 하였으니 실은 바다처럼 넓어진 압록강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 A: 1534 Orontius  Fineus, B: 1716 Johann Baptist Homann, C: 16세기 지도를 현재의 지형에 그린지도  1700년 이전의 영문고지도들의 대부분에 MONGAL(몽골, 蒙古)은 Bering Strait(베링해협)서쪽 북해(北海)인근에 있었다.. 白頭山(백두산)은 蒙古(몽골)의 동남쪽 수천리 거리에 좌우 천리의 거대한 산인 알래스카의 Mt McKinley(맥킨리산, 6168m)이다. 鴨綠江(압록강)은 맥킨리산 서쪽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천여리를 흘러 의주를 휘돌아 바다처럼 넓어졌다. 바다라 불린 압록강의 하류는 서쪽으로 수천리를 흘러 태평양으로 들어갔다. 압록강 하류의 너비는 10레구아(50km)에 달하였다고 한다.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압록강의 하류는 바다로 불렸다

요동반도의 크기는 수천리였으며 그 안에 요동과 평안도의 사이를 흐르던 압록강은 수천리의 길이였다. 압록강의 하류는 너무나 거대하여 바다로 불리웠다.
 
참조기사: [고지도]몽골과 미대륙 사이에 '요동반도'가 있었다

성호사설(星湖僿說) 제21권 경사문(經史門) 중 다음과 같은 기록이 들어 있다.

"지금 이 문예의 말로 상고하면 고구려가 비록 요수의 동서를 모두 차지했다 하더라도 그 지방이 수천 리에 불과했고 만약 또 요수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해도 천여 리 지방에 지나지 않았다."

요수의 동서는 요동반도를 말하며 3분의 1이 1천여 리라면 전체의 크기는 4천리 가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안을 흐르던 요수들이 모여 형성된 압록강 또한 수천리를 흘렀을 것은 당연하다.

동문선(東文選) 속동문선 제21권 녹(錄) 중 다음과 같은 기록이 들어있다

"더더구나, 우리 나라를 중국에서 비록 해외(海外)라고 하지만, 서북은 뭍으로 요동(遼東)을 연(連)하고, 그사이에 다만 압록강 하나가 가로막혔을 뿐이며, 압록강이 결코 바다가 아닌데 우리 나라를 지적하여 해중이라 하는 것은 대단히 틀린 말이다."

COREA의 평안도와 MING의 요동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땅들이 연(連)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압록강은 의주이남을 지나면서 더욱 거대해져 바다라 불리었다. 압록강이 바다가 아닌데 바다라 불리는 것은 틀린말이며 동국(東國)은 해중(海中)이 아니라는 말을 동문선의 저자는 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기록상에 의주를 지나면 바다라 하였으나, 현재의 압록강은 의주서쪽이 160m정도이고 바다와 만나는 단동지역의 강의 너비도 700m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압록강의 하류는 물고기가 많이 잡혀서 천하의 어장으로 불렸다고 한다.

▲ A: Bristol Bay(브리스틀만)의 Sockeye Salmon(홍연어), B: 브리스틀만과 베링해에 많이 서식하는  Belugas whale(흰 돌고래)  압록강 하류인 브리스틀만은 물고기가 많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물속에 홍연어들을 보면 압록강이 천하의 어장이라 불렸던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압록강 하류는 너비가 수십km달하였으며 수심이 깊지 않고 먹이가 풍부하여 천하의 어장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도 브리스틀만과 베링해 지역에는 여러 종류의 고래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상어들도 서식하고 있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압록강은 천하의 어장이었다.

조선왕조실록 정조 10년(1786) 3월 6일 1번째기사 중 다음과 같은 기록이 들어 있다.

처음에 평안도 관찰사 정일상(鄭一祥)이 아뢰기를,
“용천부(龍川府)의 미곶진(彌串鎭) 신도(薪島)는 육지와의 거리가 60리(里)입니다. 저쪽 사람들이 늘 와서 물고기를 잡아가기 때문에 본부에서 관례대로 장교(將校)를 보내어 수색해서 토벌하게 하였는데,"

"저쪽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곳의 어장(漁場)은 천하에서 가장 좋기 때문에 재물을 털고 힘을 들여 이렇게 무릅쓰고 왔으니, 가을까지 시한을 봐주었으면 한다.’고 하였으나,"


압록강 하류의 섬인 신도 주위는 어장이 천하에서 가장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멀리에서 물고기를 잡기위해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오는 자들도 많았다. 현재 압록강 하류의 신도가 있었던 지역은 Bristol Bay(브리스틀 만)이다. 브리스틀만은 현재도 질 좋은 물고기들이 많이 잡히는 유명한 어장이다. 
 
바다라 불린 압록강 하류에는 물고기가 많았고 그 물고기를 먹기 위해 모이는 고래와 악어도 많았다고 한다.  
 
▲ A: 동북아세아 발해만, B: 우리 나라 주변 바다의 수심(국립해양조사원 1996)  조천항해록(朝天航海錄)에 사신들은 폭풍을 피해 廣鹿島(광록도) 앞바다에 정박하였다. 광록도 앞바다는 고래와 악어가 우글거렸었다고 한다. 현재의 광록도 인근에 고래와 악어가 우글대는 지역은 보이지 않는다. 역사기록상에 광록도 서쪽인근의 수심은100자(약30m)이상의 줄로도 측량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현재 발해만의 평균수심은 25m이며 광록도 인근의 수심은 20m미만이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광록도 앞바다에는 고래와 악어가 우글거렸다

1616년 만주의 여진은 後金(후금)을 건국하였다. 이후 대조선COREA는 1621(광해 13)년부터 대조선의 中朝(중조, 중국조정)인 明(명)이 있었던 북경으로 해로를 통해 조공사절단을 파견하게 된다. 사절단은 요동과 평안도의 사이를 흐르던 바다라 불리던 압록강의 하류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였다. 요동의 남쪽 바다에는 고래와 상어들이 우글거리는 지역들이 여러곳 있었다고 한다.

조천항해록(朝天航海錄) 제1권 1624(인조 2) 8월 중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 들어있다.

15일
"돛을 내리고 노를 저어 광록도 앞바다에 들어가 정박하였다."

"조금 후에 먹구름이 서쪽으로부터 일어나 하늘이 깜깜하고 소낙비가 삼대같이 쏟아지며 회오리바람이 바다를 휩쓰니, 산더미 같은 물결이 눈처럼 휘날리고 안개같이 용솟음치는데 어룡(魚龍)이 날뛰고 고래, 악어 등이 우글거린다. 여러 선박들이 서로 요동쳐 잠시도 안정되지 않았는데,"

22일
"광록도(廣鹿島)를 지난 후부터는 바다빛이 붉기도 하고 누르기도 하며 검푸르기도 하고 짙푸르기도 하므로 뱃사람을 시켜 100여 자쯤 되는 줄로 시험해 보았으나 끝내 측량할 수 없었다. 섬이 칼처럼 뾰족하기도 하고 쇠기둥처럼 깎아지른 듯하기도 하며 병풍처럼 둘러있기도 하고 문처럼 마주서 있기도 한데 교룡(蛟龍)은 춤을 추고 악어와 고래가 장난질하여 그 괴상한 모습은 참으로 각양각색이었다." 

요동이남의 바다인 압록강의 하류는 천하의 어장으로 물고기가 많은 지역이었다. 그렇기에 물고기를 먹는 고래와 악어가 우글대었던 것이다. 악어는 보통 민물의 악어인 Crocodile를 의미하나 위의 기록들 속에 악어는 상어인 shark를 의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의 요동반도 남쪽 광록도 근처의 바다에 교룡이 춤을 추고 고래와 악어가 우글대는 곳이 있는가? 그러한 곳이 있다면 천하의 명소가 되었을 것이다.
 
▲   A: 1780 J.A. Dezauche, B: 1784년 William Faden, C: 18세기 중반의 베링해 예상지형  1780년경까지도 Bering Sea(베링해)에는 遼東半島(요동반도)가 있었다. 1780년 이후의 지도들에는 요동반도가 사라지고 없다. 1784년 지도에 베링해는 Sea of Kamchatska(캄차카해)로 표기 되었다. 베링해는 1780년경까지도 육지였으나 베링해협에 의해 급격히 침식되어 바다가 되었으며 그 안을 흐르던 압록강 또한 사라져 베링해가 되었던 것이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18세기 후반 遼東半島(요동반도)는 Bering Strait(베링해협)의 강한 물살에 침식되어 Bering Sea(베링해)가 되었다. 
 
요동반도를 흐르던 천하 3대강인 압록강 또한 바다가 되어 사라졌던 것이다. 이제 大朝鮮(대조선)의 역사기록들에 부합하는 압록강은 현재의 지구에서는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고지도들만이 베링해가 육지였으며 그 안에 거대한 압록강이 존재했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글을 보시는 독자제위분들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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