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의 진실

[스크랩] `북극해는 원래 호수였다`, 18C 바다로 변한건 왜일까?

작성일 작성자 anian
'북극해는 원래 호수였다', 18C 바다로 변한건 왜일까?
발해로 흐르던 통주강이 18C 급격히 넓어지면서 대서양이 북해로 역류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홍익/통일/역사=플러스코리아타임즈-김종문] 1700년 이전에 제작됐다는 영문고지도들의 대부분에 MONGAL(몽골 蒙古)은 Bering Strait(베링해협)서쪽 北海(북해)인근에 있었다. 美大陸(미대륙)은 ASIA(아세아, 亞細亞)와 하나로 연결된 韓半島(한반도)였으며 중간은 蒙古沙漠(몽골사막)과 거대한 遼東半島(요동반도)가 있었다. 

 

1644년 大朝鮮(대조선)의 中朝(중조)인 明(명)이 멸망하자 淸國(청국)은 대조선의 西方(서방)을 차지하였다. 당시 淸國皇帝(청국황제)는 蒙古(몽골)의 皇帝(황제)이기도 하였다. 淸國(청국)은 北海(북해)에서 蒙古沙漠(몽골사막)을 통해 渤海(발해)로 내려오던 通州江(통주강)의 얕은 여울 50여 곳을 파내어 天下(천하)의 航路(항로)로 만들었다. 通州江(통주강, 현 베링해협)의 강한 물살은 蒙古沙漠(몽골사막)과 遼東半島(요동반도)를 급격히 浸蝕(침식)시켰고 거대한 요동반도는 Bering Sea(베링해)가 되었다. 그로 인해 18세기 가공할 해수면상승이 일어났으며 지구 곳곳의 지형은 급변하여 현재의 모습이 된 것이다. 

 

 참조기사: '몽골', 17세기까지 1만리 떨어진 북해 근처에 있었다

참고기사: 18세기 베링해협이 넓어지던 시기, 황해도 주민 수백명 익사

참고기사: 18C 베링해협이 넓어지던 시기, 북유럽은 바다에 잠겨

 

▲ A: 1531 Orontius Fineus, B:1716 Johann Baptist Homann, C: 1757 Buache Philippe, D: 현재의 베링해 1: Florida(플로리다), 2: Pucatans(유카탄), 3: Hudson Bay(허드슨만), 4: Gronelant(그론란드), 5: Pilapia(필라피아), 6: Canal et Detroit du Nord(북해로 통하는 운하와 해협) 16세기 영문고지도들은 MONGAL(몽골 蒙古)을 Bering Strait(베링해협)서쪽 北海(북해)인근에 표기하였다. 蒙古(몽골)의 동쪽 수만리 크기의 韓半島(한반도)는 美大陸(미대륙)이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지도설명: 세계사에서 식민지정책을 시작하기도 전인 16세기초 영문고지도들에는 이미 북극권과 미대륙에 현재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지명들이 표기되어 있었다. 16세기 북극해의 지형은 현재와 전혀 다르다. 특히 5번 Pilapia(필라피아)지역은 대부분 바다에 잠겨 Barents Sea(바렌츠 해)가 되었다. 원래 Canal(운하)였던 베링해협은 18세기 침식되어 급격히 넓어졌다. 18세기 요동반도는 침식되어 베링해와 북태평양 북부의 바다가 되었다. 거대한 육지가 바다에 잠기어 전 지구적인 해수면 상승이 있었으며 18세기 영문고지도들에는 그러한 지형의 변화가 명기되어 있다.]

 

북극해는 원래의 북해,  수심은 대부분 수십m 

 

원래의 北海(북해)는 현재의 北極海(북극해)이다. 현재의 북해는 원래의 북해인 북극해가 대서양으로 흐르던 중간의 해협들이었다. Arctic Ocean(북극해, 北極海)는 깊이 125m미만의 大陸棚(대륙붕)과 깊이 3,000~3,700m에 이르는 大洋底(대양저)로 나뉜다. 

    

▲ A: Arctic Ocean(북극해, 北極海)와 그 주변의 심해측심/표면지도, B: Bering Strait(베링해협)인근의 수심, 1: Beaufort Sea(보퍼트 해), 2: Eurasian Basin(유라시안 분지), 3: Chukchi Sea(축치 해), 4: East Siberian Sea(동시베리아 해), 5: Barents Sea(바렌츠 해)  현재 북극해는 중심의 대양저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125m미만의 大陸棚(대륙붕)이다.  3, 4번지역은 대부분 수심이 50m에도 못 미친다. 5번 Barents Sea(바렌츠 해)는 16세기 지도들에 육지였으며 18세기말에도 NOVAYA ZEMLYA(노바야 젬랴)는 커다란 섬이었으나 지금은 작은 섬이 되었다. 6번지역은 18세기 말에도 육지였으나 침식되어 바다가 되었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北極海(북극해) 대륙붕의 대부분은 수심이 수십m로 매우 낮다. 특히 Chukchi Sea(축치 해)와 East Siberian Sea(동시베리아 해)의 대부분은 50m미만의 수심이다. 大洋底(대양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 수심이 수십m에 불과한 것은 18세기에 해수면 상승으로 바다에 잠긴 육지이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수심이 낮은 지역은 고지도들에 육지로 표기됐던 지역들과 대부분 일치한다.

 

北極海(북극해)는 18세기 이전 湖水(호수)였다. 

   

18세기 이전 北海(북해)는 四面(사면)이 막힌 거대한 湖水(호수)였다. 북해의 물은 원래 Greenland(그린란드)와 북유럽 사이의 해협을 통해 大西洋(대서양)으로 흘러갔다. 그러다 18세기 북해의 지형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고지도상에 육지로 표기되었던 北極海(북극해)의 저지대들은 바다에 잠기고, 호수였던 북극해는 수심이 낮은 대륙붕이 발달한 바다로 변하였다.

 

▲ A: 1598 Girolamo Ruscelli, B: 1660~1690 Benedictus Arias Montanus, C: 1756 Buache Philippe, D: 1898 William Rand, 1: Groenlant(그린란드, Greenland), 2: Islanda (아이슬란드, Iceland), 3: Barents Sea, 4: MONGAL(몽골 蒙古), 5: 遼東半島(요동반도). 6: 北極點(북극점), 7: Bering Strait(베링해협) 북극해는 18세기 이전의 지도들에 사방이 막힌 거대한 담수호였다. 18세기 Bering Strait (베링해협)이 커지면서 遼東半島(요동반도)는 침식되어 Bering Sea(베링해)가 되었다. 그로인한 가공할 해수면상승으로 북해의 지형은 현재처럼 변하였던 것이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北海(북해, 현 북극해)는 원래 수만리 광활한 초원들과 산맥들에서 흘러내린 강들이 모여 이루어진 거대한 湖水(호수)였으며 天海(천해)로 불렸다. 

 

북해는 수많은 배달겨레들이 살아가던 삶의 터전이었으며 大朝鮮(대조선)의 북쪽 바다들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대조선의 여러 역사기록들에 등장하며 COREA인들은 북해를 자국의 영해로 소중히 대하였다. 

 

18세기 이전 고지도상에 北海(북해)는 현재 수심이 낮은 대륙붕들을 육지로 표기했을 때와 더 비슷하다. 北海(북해)의 지형이 현재처럼 변하게 된 것은 北海(북해)에서 渤海(발해)로 내려오던 通州江(통주강)이 18세기 급격히 넓어져 Bering Strait(베링해협)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北極海(북극해)의 물이 베링해협으로 빠져나가면서 北海(북해)는 水位(수위)가 낮아지고 大西洋(대서양)이 북해로 逆流(역류)하여 흐르게 되었던 것이다. 

 

大西洋(대서양)에서 북해를 통해 Bering Strait(베링해협)으로 흘러내리는 강한 물살에 베링해협은 더욱 넓어지고 요동반도는 침식되어 베링해가 되어갔다. 그로인한 가공할 해수면상승으로 지구의 지형은 급변하였던 것이다. 北極海(북극해) 大陸棚(대륙붕)들의 수심이 대부분 수십m로 극히 낮은 것은 18세기에 海水面(해수면)이 上昇(상승)하여 바다가 된 지역이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18세기 이전 사방이 막히고 작았던 北海(북해)는 어째서 곳곳이 트인 커다란 바다가 된 것일까? 지도제작자들이 지도를 잘못 그린 것일까... 판단은 각자의 몫일 것이다.

 

출처: http://www.pluskorea.net/sub_read.html?uid=48807&section=section78&section2=한국통사/정립/유물유적문화재/역사인물

출처 : 고지도와 사서의 진실-세계사는 조작되었다(고지도) | 글쓴이 : 요수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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