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의 진실

[스크랩] 黃河의 靑海는 蒲昌海 인근, 현재는 數千里수천리 떨어져 있어

작성일 작성자 anian
黃河의 靑海는 蒲昌海 인근, 현재는 數千里수천리 떨어져 있어
청해는 거대한 鹽湖로 서역과 중하의 경계선 역할, 靑海鎭(청해진) 설치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홍익/통일/역사=플러스코리아타임즈 김종문] 歷史(역사)상에 Huang He(황하, 黃河)는 天下 最大江(천하 최대강)이었다. 黃河(황하)는 回部(회부)인 西域(서역) Mt Kunlun(곤륜산, 崑崙山 7167m) 서쪽에서 발원하여 무려 3만 4천 3백리를 흘러 中夏(중하)에 닿았다. 그러나 현재의 황하는 발원처가 다르며 1만리 정도의 작은 강으로 원래 黃河(황하)의 支流(지류)였음이 밝혀졌다. 즉, 지금의 황하는 과거 황하의 한 지류에 불과하다. 

 

黃河(황하)의 상류는 回部(회부)인 新疆(신강)의 Eastern Turkestan(동 투르키스탄)인 Tarim Basin(타림분지)의 모든 강들이 모인 蒲昌海(포창해)였다. 蒲昌海(포창해)는 Salt lake(염호, 鹽湖)로 中夏(중하)의 西海(서해)였으며 너비가 3백여 리에 달하였다. 포창해는 현재의 Lop Nur(로프노르)인 羅布泊(라포박)지역에 위치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은 1950년대 이후 Tarim River(타림강)에 관개시설과 貯水池(저수지)를 건설하여 하류로 내려가던 물길을 막았다. 이후 타림강은 서쪽에 Takla Makan Desert(타커라마간사막, 塔克拉玛干沙漠)으로 흐르고 있다. Lop Nur(로프노르, 羅布泊)는 중화인민공화국의 핵 실험장으로 1964년 10월 16일 최초의 핵실험 이후 1996 년까지만 45회의 핵실험이 있었다. 현재 핵실험장이 위치한 黃河(황하)의 上流(상류) 蒲昌海(포창해)는 물길이 끊기어 黃砂(황사)의 진원지인 沙漠(사막)이 되었고 下流(하류)의 黃河(황하)는 심각하게 사막화되어 현재의 Gobi Desert(고비사막)이 되었다. 

 

참조기사: 황하는 3만4천여리 천하 최대의 강, 현 황하는 1만여리

참조기사:천하 최대강 황하의 상류는 '포창해', 타림분지 모든 강 모여

참조기사:'황하' 핵실험장 때문에 물길이 막혀 사막화 되었다  

 

▲ A: 2000 Klett Perthes에 그린 黃河(황하) 역사 기록상에 黃河(황하)는 回部(회부)인 西域(서역) Mt Kunlun(곤륜산, 崑崙山 7167m) 서쪽에서 발원하였다. 황하는 星宿海(성수해)에서 明清(명청)의 수도권인 中夏(중하)까지의 거리는 무려 3만 4천 3백리에 달하였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지도설명: 현재의 黃河(황하)는 발원처가 다르며 크기 또한 만리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기록 상에 黃河(황하)의 地名(지명)들은 현재의 黃河(황하)에 位置(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積石(적석)과 靑海(청해)등의 중요 지명들은 역사기록들과 불일치한다. 옛 黃河(황하)는 동쪽으로 바다로 이르는 여러 길이 있었으며 현재의 Gobi Desert(고비사막)을 동북으로 횡단하여 Lake Baikal(바이칼호수)와 Amur River(아무르강)으로 흐르는 길들이 있었다. 옛 黃河(황하)의 지역은 현재 Tarim River(타림강, 塔里木河)의 물길이 斷切(단절)되어  Gobi Desert(고비사막)이 되었다.]

 

蒲昌海(포창해) 동쪽에는 거대한 산맥이 물길을 막았었다.

 

역사기록상 황하의 상류인 蒲昌海(포창해)인 鹽澤(염택)의 물들은 동쪽으로 흘러갔다. 그런데 蒲昌海(포창해)동쪽을 보면 높고 가파른 돌산들이 4~9km의 너비로 140km정도의 산맥을 이루고 있다. 포창해에서 흘러온 물들은 거대한 산맥을 넘어가지 못하고 산맥의 서쪽에 모였을 것.

    

▲ A: 靑海(청해)지역, B: 靑海(청해) 동쪽의 산맥 역사상 黃河(황하)의 上流(상류)인 蒲昌海(포창해)는 동쪽으로 靑海(청해)로 흘러갔다. 靑海(청해)가 위치했을 지역에는 현재도 거대한 호수의 흔적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사진설명: 敦煌(돈황)에서 동북쪽으로 140km정도에 걸쳐있는 돌산들은 거대한 제방의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끊겨 있는 Tarim River(타림강)이 연결되어 蒲昌海(포창해)의 물이 동쪽으로 흐르게 되면 산맥들로 인해 거대한 호수가 형성될 것이다.] 

 

巨大(거대)한 湖水(호수)와 山脈(산맥)은 天險(천험)의 長成(장성)이 되어 군사적으로 매우 유용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靑海(청해)는 白龍堆(백룡퇴)와 가까이 위치 

 

黃河(황하)의 上流(상류)인 靑海(청해)는 거대한 鹽湖(염호)로 西域(서역)과 中夏(중하)의 경계선 역할을 하였으며 靑海鎭(청해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靑海(청해)는 蒲昌海(포창해)의 남쪽 沙漠(사막)인 白龍堆(백룡퇴)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였다.

 

계곡선생집 제31권 칠언 율시 2백 33수 讀大宛傳書事 四首 중 다음의 기록이 들어 있다.

사막 지대 서쪽 너머 백룡퇴(白龍堆)와 가까운 곳 / 黃沙西望近龍堆

찬 서리 청해진(靑海鎭)에 구슬픈 고각 소리 / 靑海霜飛鼓角哀

성곽에 호마 왔다는 말 듣지를 못했는데 / 城郭不聞胡馬到 

한 나라 궁궐 벌써부터 포도 재배하는구나 / 蒲萄已入漢宮栽 

 

白龍堆(백룡퇴)는 新疆省(신강성)의 天山南路(천산남로)에 있는 沙漠(사막)으로 Tunhuang(둔황, 敦煌)에서 서쪽으로 流沙(유사)가 끝나는 곳에 위치하였다. 靑海(청해)는 서쪽에 蒲昌海(포창해)가 있었으며 白龍堆(백룡퇴)와 가까이 있었다. 

 

蒲昌海(포창해)는 동쪽으로 伏流(복류)하여 靑海(청해)로 흘러

 

回部(회부)의 모든 강들이 모여서 형성된 거대호수였던 蒲昌海(포창해)는 동쪽으로 靑海(청해)로 흘러갔다. 그런데 강물이 땅속으로 보이지 않게 흘렀다고 한다.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제58권 앙엽기 5권 황하(黃河)의 진원(眞源)중 다음의 기록이 들어 있다.

“곤륜이 회부(回部) 안에 있고, 회부 여러 물이 모두 동쪽으로 포창해(蒲昌海)에 흘러드는데 이것이 염택(鹽澤)이다. 염택 물이 모두 땅에 들어가 복류(伏流)로 되었다가 청해(靑海)에 이르러서 비로소 땅위에 나오는 것이니, 성수해 여러 물이 모두 이 물이다. ” 

“昆侖在回部中。回部諸水。皆東注蒲昌海。卽塩澤也。塩澤之水。皆入地伏流。至靑海始出。則星宿海諸水。” 

 

성호사설 제3권 천지문(天地門) 하원북류(河源北流)중 다음의 기록이 들어 있다.

“그 형세는 3면(面)이 둥근 구슬처럼 산이 둘러 있고 중간의 두 언덕은 지극히 좁아 여우도 뛰어넘을 듯하니, 생각건대, 이는 복류(伏流)로서 물이 땅속으로 흐르고 겉에 나타나는 것은 이 같은 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 처음에는 물이 맑았다가 점점 흐린 것은 땅속에 흙과 급한 물결이 혼동하여 솟아오르는 때문이었다.“ 

 

역사기록들에 黃河(황하)의 上流(상류)인 蒲昌海(포창해)는 地下(지하)로 伏流(복류)하기도 하면서 靑海(청해)로 흘러갔다. 

 

水經注(수경주) 2권에는 다음의 기록이 들어 있다. 

“석씨서역기(釋氏西域記)에 이르기를 : 뇌란해(牢蘭海)에서 동쪽으로 복류(伏流)하여 용사퇴(龍沙堆)까지 흐르니, 그 곳은 둔황(屯皇)의 동남쪽 400리에 위치하며, 아보간(阿步幹)의 선비산(鮮卑山)이 있다.” 

“釋氏西域記曰 : 牢蘭海東伏流龍沙堆, 在屯皇東南四百裏阿步幹鮮卑山.”

 

牢蘭(뇌란)은 蒲昌海(포창해)에 위치했던 고대국가인 Loulan(누란, 樓蘭)의 다른 이름이다. 牢蘭海(뇌란해)가 동쪽으로 복류하여 형성된 靑海(청해)는 屯皇(둔황)의 동남쪽 400리(약 177km)까지도 물길이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현재의 靑海(청해)인 Qinghai Lake(청해호, 青海湖)는 屯皇(둔황)과 직선거리로만 530km이상 떨어져 역사기록과 완전히 불일치한다.

    

▲ A: 蒲昌海(포창해)와 靑海(청해)가 있었던 지역, 1: 40°19'14.46"N 93°19'50.67"E, 2: 40°25'28.51"N 93°54'10.81"E, 3: 40°19'3.50"N 95°27'47.88"E , 4: 40°24'27.17"N 97°31'6.68"E 靑海(청해)가 있었을 지역을 보면 메마른 거대한 호수들과 수많은 강줄기들을 확인할 수 있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사진설명: 현재 Lop Nur(로프노르, 羅布泊)에서 동쪽으로 200km정도 떨어진 1번지역의 강줄기는 140m정도의 너비이나 땅이 30m정도로 깊게 파여 있다. 강줄기는 동쪽으로 이어지며 점점 가늘어 진다. 그러다 2번지역쯤에 이르면 13m정도의 작은 강줄기로 변한다. 곳곳에 수많은 강줄기들과 커다란 호수들의 흔적이 보인다. 과거 Lop Nur(로프노르, 羅布泊)에 핵실험장이 없었던 시기 타림강이 흘러 내려왔을 때에는 수많은 강들과 호수들이 있었을 것이다. 3번 지역은 거대한 돌산들이 수km의 너비로 140km나 산맥을 이루고 있으며 산맥의  중간에는 물길이 나있다. 카다란 돌산들을 100m정도의 너비로 4km가까이 쪼개어  물길을 낸 것이다. 과거 東方(동방)의 역사기록들에 산을 쪼개 黃河(황하)의 물길을 냈다는 말들은 이러한 수로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4번 지역은 30m정도의 좁은 수로가 1km정도 있으며 주위에 비슷한 수로들이 여러 곳이 있다. 蒲昌海(포창해)의 수량이 풍부하였을 때에는 거대한 호수들과 수많은 강줄기들이 발달하였을 것이다.]

 

靑海(청해)는 蒲昌海(포창해)에서 伏流(복류)하여 흐를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으며 Tunhuang(둔황, 敦煌)의 동남쪽 400리 까지도 연결되었었다.  그럼 현재의 靑海(청해)는 어떠한지 살펴보자

 

현재의 青海(청해)는 羅布泊(라포박)와 840km 정도 떨어져

 

현재의 Qinghai Lake(청해호, 青海湖)는 China(중화인민공화국, 中華人民共和國)의 青海省(청해성) 동부에 위치해 있는 중국 최대의 鹽湖(염호)이다. 현재의 靑海(청해)는 해발 3,205m의 高原(고원)에 위치하였다. 

    

▲ A: 1931 Wuchang ya xin di xue she, B: 蒲昌海(포창해)지역 확대, C: 현 靑海(청해)와 積石(적석)지역확대 역사상 황하의 상류인 포창해는 동쪽으로 복류하여 청해로 흘렀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지도설명: 현재의 청해는 蒲昌海(포창해)지역에 Lop Nur(라포박, 羅布泊)이 해발 780m인데 비해서 해발 3205m에 위치하였으며 거리 또한 840km이상 떨어져 있다. 현재의 靑海(청해)는 蒲昌海(포창해)에서 伏流(복류)하여 흐를 수 없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B지도에 白龍堆(백룡퇴)는 포창해의 남쪽 사막이었다. 역사상 積石山(적석산)은 서쪽에서 흘러오던 황하가 북쪽으로 흐르는 시작점이며 이후 황하는 3천여 리를 북쪽으로 흘렀다. 그러나 C지도에 현재의 積石山(적석산)을 지난 황하는 북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치우쳐 북으로 흘러간다.] 

   

靑海(청해)를 지난 黃河(황하)는 동쪽으로 金城河(금성하)와 合流(합류)

 

水經注(수경주) 2권에는 다음의 기록이 들어 있다. 

“황수(湟水)는 계속 동쪽으로 흘러 금성하(金城河)로 들어가며, 즉 적석(積石)의 황하(黃河)이다.”

“함인(闞駰)이 이르기를 황하는 금성현(金城縣)에 이르는데, 금성하(金城河)라고 불렸다, 수나라의 지명이다.” 

“湟水又東流, 注於金城河, 即積石之黃河也.” 

“闞駰曰 : 河至金城縣, 謂之金城河, 隨地為名也.” 

 

靑海(청해)를 지난 黃河(황하)는 동쪽으로 흘러 積石(적석)에서 북쪽으로 흘러가는 金城河(금성하)와 합류하였다. 

 

홍재전서(弘齋全書) 제93권 경사강의(經史講義) 30 서경(書經) 우공(禹貢)중 다음의 기록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유독 어디로부터 시작했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주자는 이에 대해 “하수는 적석에서 북쪽으로 행한다.” 하였고, 《정의(正義)》에서는 “하수는 서쪽에서 흘러와 여기에 이르러 북쪽으로 흐른다.”고 하였으니, 이른바 여기라고 한 것은 적석을 말합니다. 황하의 원류는 적석에서 비롯하지는 않았지만 그 물줄기가 구불구불 북쪽으로 흘러가는 것은 적석에서 비롯한 것일 뿐, 황하가 시작된 곳이 아니고 보면 동백산이나 웅이산처럼 어디로부터라는 자(自) 자를 쓸 수 없습니다.”

 

積石(적석)은 黃河(황하)의 시작이 아니며 북쪽으로 흐르기 시작하는 지점이었다, 현재의 황하에도 Qinghai Lake(청해호, 靑海湖) 이전에 積石(적석)은 있으나 현재의 積石(적석)을 지난 黃河(황하)는 동쪽으로 치우쳐 북으로 흐른다. 

    

▲ A: 漢西域諸國圖(한서역제국도, 南宋景定年間 1260-1264年), B: 현 지형에 그린 황하의 상류 강줄기들 Huang He(황하, 黃河)의 上流(상류)인 蒲昌海(포창해)는 복류하여 靑海(청해)로 흘러갔다.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지도설명: 靑海(청해)를 지난 黃河(황하)는 동쪽으로 흘러 積石(적석)에서 북쪽으로 흐르던 金城河(금성하)에 합류한다. 金城河(금성하)는 서쪽에서 흘러오던 黃河(황하)의 支流(지류)로 積石(적석)을 지나면서 휘돌아 북쪽으로 龍門(용문)까지 3천여 리를 흘러갔다. 積石(적석)인근 金城河(금성하)의 동남쪽에는 金城(금성)이 있었으며 金城(금성)은 후대의 蘭州(란주)가 된다. 역사기록들에 金城河(금성하)와 일치하는 강줄기는 현재의 Heihe River(흑하, 黑河)이다.]

 

積石(적석)은 현재의 张掖丹霞(장액단하)지역 

 

고지도상에 積石(적석)이 표기된 지역에는 역사기록들처럼 서쪽에서 온 黃河(황하)의 支流(지류)가 북쪽으로 흐르는 지점이 있다. 해당지역에는 積石(적석)이라는 지명에 걸맞게 돌들이 층층이 쌓여진  张掖丹霞地质公园(장액단하지질공원)이 위치하였다. Heihe River(흑하, 黑河)는 张掖丹霞(장액단하)를 휘돌아 북쪽으로 수 천리를 흘러간다. 

    

▲ Zhangye Danxia National Geological Park(장액단하지질공원, 张掖丹霞地质公园)  積石(적석)은 돌이 쌓여졌다는 의미이다. 역사상 黃河(황하)의 支流(지류)인 金城河(금성하)는 積石(적석)을 지나면서 북쪽으로 삼천여리를 흘렀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사진설명: 蒲昌海(포창해)에서 동쪽으로 흐른 황하는 金城河(금성하)와 합류하여 북쪽으로 흘러갔다. 그러한 積石(적석)의 조건을 충족하는 지역은 Gansu(감숙성, 甘肅省)에 Zhangye Danxia National Geological Park(장액단하지질공원, 张掖丹霞地质公园)에 위치하였다.]

 

천하 최대강이었던 黃河(황하)의 上流(상류) 蒲昌海(포창해)는 동쪽으로 伏流(복류)하여 靑海(청해)로 흘러갔다. 현 세계사의 靑海(청해)인 Qinghai Lake(청해호, 青海湖)는 蒲昌海(포창해)지역인 Lop Nur(로프노르, 羅布泊)가 해발 780m인데 비해서 해발 3205m인 高原(고원)에 위치하였다. 거리 또한 840km이상이나 떨어져 있다. 현재의 青海湖(청해호)는 蒲昌海(포창해)에서 伏流(복류)하여 흐를 수 없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원래의 靑海(청해)는 서역과 中國(중국)의 경계에 위치한 거대  鹽湖(염호)로 新疆省(신강성)의 天山南路(천산남로)에 있는 沙漠(사막)인 白龍堆(백룡퇴)와 가까웠다. 청해가 위치했던 지역은 敦煌(돈황)에서 동북쪽으로 높고 가파른 돌산들이 4~9km의 너비로 140km정도의 산맥을 이루고 있다. 포창해에서 동쪽으로 흘러온 물들은 산맥을 넘어가지 못하고 산맥의 서쪽에 거대한 鹽湖(염호)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역사상 中夏(중하)의 西海(서해)로 불리던 靑海(청해)는  군사기지인 靑海鎭(청해진)이 있었다. 

 

靑海(청해)는 동쪽으로 金城河(금성하)와 합류하여 북쪽으로 흘러갔다. 金城河(금성하)는 黃河(황하)의 지류로 積石(적석)을 지나며 물길이 북쪽으로 변하여 龍門(용문)까지 3천여 리를 흘러갔다. 역사기록들에 金城河(금성하)와 일치하는 강줄기는 현재의 Heihe River(흑하, 黑河)이며 積石(적석은 현재의 Zhangye Danxia National Geological Park(장액단하지질공원, 张掖丹霞地质公园)에 위치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출처: http://www.pluskorea.net/sub_read.html?uid=51464&section=section78&section2=한국통사/역사칼럼/

출처 : 고지도와 사서의 진실-세계사는 조작되었다(고지도) | 글쓴이 : 요수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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