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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하늘에서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계4:1-11)

작성일 작성자 진실
땅과 하늘에서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계4:1-11)
임진남 목사(예본교회, 한국개혁신학연구원)
   

본문 말씀을 듣기 전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예수님께서 자신의 종, 요한을 부르셔서 이 계시록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고, 그리고 기록된 그 말씀을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모두 전하여 읽게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계시록의 말씀은 먼 미래에 일어날 일이 아니고, 그리고 먼 미래에 사는 성도들을 위해 기록된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계시록의 말씀이 우리와 상관이 없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마치 로마서나 에베소서 그리고 다른 기타 성경들이 1세기 초대교회 성도들과 교회들을 위해 기록되었다고 해서 오늘 우리와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이 계시록은 여전히 과거나 지금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사는 모든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시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바른 신앙의 요구를 항상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 계시록은 앞으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기록된 말씀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당시 예수님께서 자신의 교회와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시고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는 세력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오신(coming)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종말에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 계시록은 주님의 재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 계시록의 초점은 한 마디로 말하면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시지 않지만, 자신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모든 나라와 세상의 주권자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인류의 모든 세계사에서 그 중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무것도 주님의 주권적 통치 아래에서 벗어나 스스로 일어나는 일이 없습니다. 계시록의 말씀을 바르게 읽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물 가운데 영광을 받으시고, 원수들은 심판을 당한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도 요한 당시 주의 백성들은 그 시대의 거짓 종교들과 국가주의에 순종하라고 요구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님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믿음으로 이기라고 강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주님의 요구는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요구하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사실 우리도 매일 사탄의 위협과 유혹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심지어 같은 믿음의 사람들로부터 거짓되고 비윤리적인 삶을 같이 살자고 유혹을 받습니다. 세상과 타협하면 쉽게 살 수 있다고 하는 요구가 우리들 주변에 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할 것인지? 아니면 사탄에게 순종할 것인지 늘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계시록이 비록 당대 1세기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록되었지만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요구는 동일합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믿음으로 승리할 것을 명령 받았습니다. 교회와 성도는 연단을 통해 정금같이 그리스도의 신부로 나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연단을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바른 믿음과 신앙으로 세상을 이기고,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메시지가 계시록을 통해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지금부터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도를 계속 배우고 들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사자들에게 편지하라고 하시는 말씀과 내용을 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요한은 하늘에 열린 문을 보았고, 나팔소리 같은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음성은 요한을 불러서 무엇인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2절부터 사도요한이 성령의 감동으로 무엇인가 보고 있습니다. 드디어 상징과 비유의 말씀들이 계속 기록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이 상징과 비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그리고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2,000년이 지난 지금, 그리고 문화적으로 다른 우리들이 이 상징들과 비유들의 말씀을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한 구약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이 상징과 비유들이 무엇을 말씀하려고 하는지 더더욱 알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로 생겨난 것이 바로 계시록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들이 난무하게 되었습니다. 그중에 가장 피해를 많이 주는 성경해석이 바로 세대주의 해석입니다. 세대주의자들이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주로 사용하는 것은 단어 하나하나에 그 의미를 둡니다. 예를 들면 지금 1절에 요한에게 올라오라고 하는 이 단어는 들림을 받았다고 하는 휴거를 의미하기 때문에 교회가 휴거 되어 올라갔다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전체적으로 읽는다면 올라오라고 하는 이 말이 교회가 휴거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요한에게 무엇인가 말씀하여 주시려고 요한을 부르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교회는 이런 식으로 오늘날까지 계시록을 해석하고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으로 한국교회가 천국에 대한 소망을 성도들에게 어느 정도 심어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상에서 교회와 성도의 삶과 책임에 대한 가르침은 너무나 소홀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바른 성경해석만이 바른 신앙과 바른 믿음을 성도들에게 줄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하늘에 열린 문을 통해 본 것을 먼저 기록하고 있는데 자세하게 보면 우리가 이미 구약에서 본 것과 아주 유사한 것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모세가 세운 성막과 같은 패턴을 이룬 천상의 참된 성전입니다. 요한이 본 성전에서 가장 먼저 본 것은 보좌 가운데 앉아 계신 분입니다. 그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누가 보좌에 앉아 계십니까? 우리의 신앙고백과 성경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보좌 가운데 앉아 계십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1:26-28) 본 환상과 요한이 보고 있는 이 환상을 비교해보면 아주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세우라고 한 성막을 보면 그곳에는 시은좌와 상응하는 보좌, 일곱 촛대와 상응하는 일곱 등대, 스랍들과 상응하는 네 피조물, 놋바다와 상응하는 유리바다, 24제사장 반열과 상응하는 24장로들을 본 것입니다. 더욱이 보좌에 앉으신 이 주변에 보석들과 무지개가 둘러 있습니다. 이러한 광경은 마치 구약에서 에덴동산에 있었던 보석들과 연관이 되어 지고 있고, 더 이상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하지 않는다고 하는 언약의 상징인 무지개까지 있다고 하는 것은 지금 요한이 보고 있는 곳이 마치 지상에 있었던 성전과 아주 유사한 형태라고 하는 것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이 보고 있는 것은 바로 천상에 있는 성전이었습니다. 지상의 성전과 유사하지만 그러나 완벽하고 아주 놀라운 성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은 요한에게 천상에 있는 성전을 요한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지상에 있는 일곱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환난과 고난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곱 교회 안에 있었던 성도들에게 주어진 다양한 문제들이 무엇인지 우리는 말씀을 통해 들었습니다. 그 모든 문제들, 유대교와 로마제국으로부터의 핍박, 교회 안에 침입한 거짓 선지자들의 유혹, 자신들만 거룩하다고 하는 교만,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어리석음, 세상과 쉽게 하나가 되어 바른 신앙이 무엇인지도 분별 못하는 무지함, 그런 신앙들이 단 번에 해결되고 바른 신앙가운데 교회가 교회답게, 그리고 성도가 성도답게 설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주님은 요한을 통해 아주 강력한 은혜를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천상에 있는 완전하고 영원하며 영광스러운 성전, 즉 교회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특히 믿음 때문에 환난과 핍박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힘과 용기와 기쁨을 주시기 위해 주님은 천상의 교회를 보여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전 안에 있는 것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거룩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는 성전에 있고, 예루살렘에 있으며, 유대인들과 함께 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이단으로 치부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회유할 때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자신들에게로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이 어디입니까? 예수님께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천상에 있는 성전에 계신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이제 하나님은 스데반이 증거한 것처럼 사람이 손으로 지은 건물에 계시지 않습니다. 이미 하나님은 구약이전부터 온 우주 만물에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히브리서를 기록한 사도는 지상의 성전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우리들에게 가르쳐 줍니다. 이제 구약의 모든 짐승의 제사는 하나님의 아들께서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단 번에 그 모든 제사를 다 이루었습니다.

 

 

요한을 통해 이 계시록을 읽고 있었던 당시 일곱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환희와 기쁨과 감사와 자신들이 믿고 있는 신앙이 얼마나 위대하고 참된 진리라는 확신 가운데 설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부모를 따라 어린 자녀와 아직 태어나지 못한 상태에 있는 자녀들까지 자신들의 부모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창과 불에 죽는 것을 기꺼이 피하지 않고 순교하였던 것입니다. 만약 주님께서 우리가 개척하여 함께 예배드리는 이 공동체를 인정해 주신다면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 가운데 누구라도 천상에 계신 주님과 교회를 보았다면 그리고 그것을 말해 준다면 얼마나 큰 용기가 생기겠습니까? 우리가 바르게 예배하고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이라고 하는 이 은혜가 우리에게 넘쳐 날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가장 먼저 주님께서 요한을 올라오라고 하시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요한이 본 천상의 교회의 모습과 그리고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아야 할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보좌를 24 보좌가 둘러 있고, 24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금관을 쓰고 있습니다.

 

24라는 숫자는 2412의 배수입니다. 12는 잘 아시는 대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이스라엘은 12지파로 구성된 언약백성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12지파로 불렀습니다. 새언약 백성인 교회 역시 12지파로 불립니다. 왜냐하면 신약교회는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이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에서 새 예루살렘 성은 바로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4라는 숫자는 구약과 신약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24장로들은 흰 옷을 입고”, “금관을 쓰고 있습니다. 흰 옷은 3장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정결함과 의로움을 말합니다. 그리고 금관(스테파노스)”은 왕관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24장로들이 왕관을 쓰고 흰 옷을 입고 머리에 보좌에 앉아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어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은 자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동시에 하나님과 함께 천상에서 이 세상을 왕으로서 통치하시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한은 네 생물을 봅니다. 네 생물은 하나님이 앉아 계신 보좌를 둘러 서 있습니다. 네 생물은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날개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합니다. 날개뿐만 아니라 앞쪽과 뒤쪽에도 눈이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그림으로 그리면 괴상한 물체가 될 것인데 이것은 다름 아닌 천사들입니다. 에스겔과 이사야서에서 나오는 그룹과 스랍을 합쳐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천사가 그래 이렇게 생겼구나라고 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요한이 보고 있는 것은 상징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네 생물은 하나님이 부리시는 모든 사자들, 천사들입니다. 그리고 네 생물의 얼굴은 각각 하나님의 엄위로우심(사자)과 힘(송아지)과 지혜(사람), 고상함(독수리)을 상징하고, 수많은 눈들은 하나님이 이 땅과 창조물을 끊임없이 살피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이 네 생물은 지상에서 가장 뛰어난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해 일을 하십니다. 우리는 천사가 어느 정도로 있는지 모릅니다. 천군천사가 지금도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을 섬기고, 하나님의 섭리를 수종합니다. 그리고 삼위일체 한 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이 네 생물은 밤 낮 쉬지 않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이여 이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이시라고 찬양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원하심에 대한 노래입니다.

 

이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유한이 무한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존재하시고 어떻게 생겼는지 우리는 인간의 지식으로 알 수 없습니다. 만약 인간이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마치 괴물처럼 그려낼 것입니다. 지금 사도 요한이 보고 있는 천사들마저도 괴물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참으로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볼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봅니다. 요한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고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만왕의 왕으로 모든 백성들이 자신들이 쓰고 있는 왕관을 벗어 놓고 그 분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마치 로마황제 앞에 피식민지 왕들이 자신들이 쓰고 있던 왕관을 벗어 황제 앞에 벗어 버리는 것과 같은 그 모습을 일곱 교회 모든 성도들이 계시록을 통해 보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우주 만물의 왕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의도적으로 주님께서 요한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말씀을 읽는 자는 예수께서 온 우주 만물의 왕시시고 영원히 찬양 받으실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믿고 고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주님은 단순히 왕으로만 그치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생명의 주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께서는 요한에게 천상에서 자신의 교회를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천상 교회에서 어떻게 주님이 찬양과 영광을 받고 있는지 아주 자세하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지상의 교회에 있는 자신의 백성들이 믿음으로 이기고 끝까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신앙으로 승리할 것을 요구하시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저 말로 우리를 위로 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실재로 자신이 어떻게 예배를 받고 있는지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지상에서 예배하는 자들은 삼위일체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예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고안해낸 방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아들의 피를 믿고 그 이름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고 그들이 드리는 예배를 받으십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지금 예배드리는 이 순간에 천상에서도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시 이 땅에서 예배하지만 영원히 예배하는 저 천상에서 또한 우리가 예배해야 한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요한이 보고 있는 시간에 지상 교회가 예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들은 항상 이 땅에서 예배할 때, 예배시간에 자신들의 마음을 들어 천상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예배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지금 우리도 동일한 가르침으로 우리 마음의 눈을 들어 천상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배해야 합니다. 이러한 예배로 하나님께 나가는 예배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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