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파 (Old Gu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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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파 (Old Gu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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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파 (Old Guard)는 어떤 개혁 · 혁신 (Reform)의 움직임에 대해 현상 유지를 바라는 세력 및 기존 세력을 가리킨다.

특히 개혁 반대 세력에 대해 기득권을 갖고 세력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 보수파 '와 다르게 '수구파'을 자칭하는 것은 거의 없다.

중국사 에서는 청나라말기의 이른바 변법자강 운동(変法自強運動)에 즈음하여 개혁을 반대파를 수구파라고 불렀다. 조선 근대사에서는 청나라의 독립 과 근대화를 목표로 한 개화파에 봉건 제도를 유지하려고 한 세력에 이용되었다.

 

강유위

 

변법자강운동(變法自強 運動)은 중국 청나라 말기의 1898 년 강유위(캉유웨이)가 추진한 정치 운동이었다.

1898년의 변법자강책(變法自強策)’이다. 광서제는 당시 서태후의 손아귀에 휘둘리고 있었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 개혁 정치를 추구하기 위해 강유위의 갖가지 정책을 지지하게 된다.

강유위의 변법자강책에는 과거 제도 개혁, 조세 개혁, 탐관오리 혁파, 각종 경제 개혁 등이 담겨 있었고, 무술변법을 통해 이중 일부를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변법은 광서제의 미약한 권위에 의존했고, 결국 서태후 등 반개혁파에게 패배하여 외국으로 망명을 가는 결과로 끝이 났다. 이로 인해 무술변법은 '100일 변법'이라고도 불린다.

 

김옥균

 

개화파(開化派)는 김옥균을 중심으로 1874년경에 형성된 개화당에서 비롯된다. 1882년 임오군란 전후하여 개화당 및 개화파가 청나라에 대한 입장 차이 및 개화정책 방안을 둘러싸고 갈등하여 온건개화파와 급진개화파로 분화되었다. 개화당의 출발은 급진개화파 와 온건개화파의 인물을 아우르지만, 분화된 이후에는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급진개화파만을 개화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한, 급진개화파는 청나라의 속방화정책에 대항하여 독립을 매우 강조하였기 때문에 개화당을 당시에 개화독립당이라 불렸으며, 이에 반하여 청나라에 의존하여 집권한 민비수구파를 사대수구당이라고 불렀다. 중심인물은 김옥균· 홍영식· 서재필· 서광범· 박영효· 박영교· 서재창· 변수· 신응희· 유혁로· 정난교· 이규완 등이었다. 급진개화파는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위안스카이의 청나라의 개입에 밀리며 3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이후 김옥균, 서재필, 서광범, 박영효 등 주요 인사들은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한국을 멸망시킨 조직도

* 과거나 현재나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소련파, 중공파, 북한파, 일본파, 미국파 등 이름만 바뀐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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