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교구 >  여우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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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설명 성 이윤일 요한과 서치보 요셉 가정에 의해 형성된 교우촌
지리좌표 북위 36°47′43″ 동경 128°14′03″
주      소 경북 문경시 문경읍 하리 2-1 
전화번호 (054)571-0326
팩스번호 (054)57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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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관 문경 성당


여우목 성지는 103위 성인인 이윤일 요한 성인(대구 관덕정, 대구대교구 제2의 주보 성인, 당시 여우목 공소회장)과 서치보 요셉 가정에 의하여 이루어진 교우촌이다. 부근의 교우촌인 ‘건학’과 ‘부럭이’(부락이)는 산길로 불과 20-30리 내에 있다. 그러므로 이들 세 교우촌은 처음부터 서로 빈번한 접촉을 하면서 이웃집 드나들 듯이 서로 긴밀하게 연락하고 서로 도와가며 열심한 교우촌을 이루어 살고 있었다.

 

여우목 성지는 소백산맥이 높고 험준한 대미산(1,115m)을 경계로 하여 충북 단양과 경계를 이루는 문경 지방의 최동북단에 위치해 있다. 여우목은 대미산 중턱에 잡리 잡고 있어서 옛날부터 경상도 동쪽 지방의 사람들이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이 여우목 고개를 넘어 문경 읍내와 새재로 넘어갔던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곳에 처음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1,600년경 현재 이곳에 살고 있는 장원의 10대 조부인 장기풍이 단양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와서 움막을 짓고 다래덤불을 걷고 산지를 개간하며 살았다고 한다.

 

천주교 신자들이 이 곳에 살기 시작한 것은 1839년 기해박해를 전후해서이다. 충청도 홍주가 고향인 성 이윤일 요한 가정이 상주 갈골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왔고, 그 무렵에 경상도 초대 교우 서광수의 손자인 서치보 요셉 가정이 충북 정원에서 이곳으로 피난 옴으로써 신자들이 살기 시작했다(1815년 을해박해, 1827년 정해박해때 순교한 순교한 박경화 바오로와 아들 박사의 안드레아의 가정이 몇 곳으로 피난을 다니다가 이곳으로 우거해 살았다. 또한 경상도 첫 신자 가정 중의 한 가정인 서광수의 후손들이 1839년 기해박해쯤 이곳 여우목으로 피난 와서 살았다).

 

서치보 요셉(1791-1840)은 가족들과 함께 이곳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1840년 9월 19일(음)에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셨다. 그 때 나이 49세였다. 그 후 선산(현 여우목 마을이 있는 뒷산)에 묻혀있던 그의 유해는 1999년 9월 18일 이곳에 새로이 산소를 마련하여 아들 서인순 시몬과 함께 이장하여 모셨다.

 

한편 이곳에 살다가 상주 경산 등지로 피난 갔던 서치보의 아들들인 서인순 시몬과 서익순 요한, 서태순 베드로는 병인박해 때 순교하였다. 서인순 시몬은 경산 모개골에 살다가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대구의 경상 감영에서 문초를 받고 감옥에서 옥사했다. 서익순 요한은 대구에서 서울로 이송되어 가서 서울 절두산에서 백지사형을 받고 치명하였다. 서태순 베드로는 박해를 만나 대구에서 문경 한실로 피난 갔다가 문경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문초를 받고 상주 진영으로 이송되어 다시 혹독한 심문을 받은 후 상주 감옥에서 옥사했다. 한편 베로니카라는 노파는 이곳에서 신자들과 함께 체포되어 가는 도중에 마음 앞 노상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안동교구 홈페이지]

[사진출처 : 오영환, 한국의 성지 - http://www.paxkorea.co.kr,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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