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  성 유스티노 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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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설명 1914년 개교한 대구의 첫 신학교
지리좌표 북위 35°51′40″ 동경 128°35′20″
주      소 대구시 중구 남산 3동 219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전화번호 (053)660-5100
팩스번호 (053)660-5120
홈페이지 http://cuth.cu.ac.kr/~sinhak/
전자메일
관련기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1911년 조선교구(서울교구)에서 대구교구가 분리된 후 초대 대구교구장으로 취임한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주교가 교구 사제양성을 위해 1914년 5월 27일 개교한 대구의 첫 신학교(현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이다. 같은 해 10월 1일 교사(校舍)를 완성하고, 성 유스티노를 주보성인(主保聖人)으로 하여 당시 서울의 용산신학교에 위탁교육을 시키던 신학생들을 포함한 67명의 학생들에게 교육을 실시하기 시작하였다. 초대 교장에는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 교수였던 샤르즈뵈프(Chargeboef, 安德望) 신부가 취임했고, 교육 과정은 중등과 철학과 신학과 등 12년제의 학교였다.

 

학교 건물은 대구 천주교회의 초대 교구장이었던 드망즈 주교가 중국인 벽돌공을 동원하여 1913년에 착공하여 1914년에 완공한 붉은 벽돌조의 2층 신학교 건물로 서울 명동 성당의 건축에 참여했던 프와넬 신부가 건립계획을 세웠고 공사는 중국인 기술자들이 담당하였으며 책임목수는 프랑스 영사관을 건축할 때 참여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학교는 ‘ㄷ’자형 평면으로 중앙에 있는 성당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이며 1층 전면에는 로마네스크 건축에서 많이 사용되었던 연속 아치로 툇간을 설치하여 복도로 사용하고 2층은 계단실을 통하여 각 실을 연결하였다. 현재는 전면으로 돌출되었던 양익(兩翼)은 철거되고 중심부분만 남아있다.


1918년 첫 졸업생 주재용(朱在用)이 서품을 받은 이후 1944년 말 일제(日帝)의 전문학교령에 의하여 경성천주교신학교(용산 신학교)에 통합될 때까지 많은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한편 1919년 중 · 고등과를 폐지하였다. 8.15 이후에도 신학교는 재건되지 못했고 1946년 옛날 신학교의 자리에 대건중학교가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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