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의 유래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서애 유성룡이 도체찰사로 있을 때의 일이다.
각 고을의 발송할 문서가 있어서 역리에게 주었는데, 공문을 보낸 뒤 사흘 뒤에 
그 공문의 내용을 고쳐야 했다. 그래서 발송한 공문을 회수하라고 지시했더니, 
그 역리가 즉시 공문을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아니, 공문을 어찌하여 네가 고스란히 가지고 있느냐? 삼일 전 이미 발송했어야 
하지 않느냐?" 

유성룡은 자신의 지시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에 대해 역리를 꾸짖으며 물었다. 
그러자, 역리가 대답했다.

"속담에 '조선공사삼일(朝鮮公事三日)'이란 말이 있어 소인의 소견으로 사흘 후에 
다시 고칠 것을 예상하였고 사흘을 기다리느라고 보내지 않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유성룡은, "가히 세상을 깨우칠 말이다. 나의 잘못이다."라며 공문을 
고친 뒤 반포했다.

'조선공사삼일'이란 속담은 본래 '고려공사삼일'이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고려 말에 정치가 혼란하고 부정부패하여 관청의 행정명령이 자주 바뀌고 체계가 
없는 것을 비꼬는 말이었다. 그러던 것이 조선시대로 넘어가면서 '조선공사삼일"이 
되었다.

비단 정치가나 관청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의 성격이 처음에는 잘하다가 조금 
지난 후에는 흐지부지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로부터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이 비롯되었다.

작심삼일은 마음을 단단히 먹기는 했지만 사흘만 지나면 그 결실이 흐지부지되고 
만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사흘을 두고 생각한 끝에 비로소 결정을 본다는 
신중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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