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도산사(桃山祠)

 

향토문화유산 제6호.

(창건-1930, 중건-1997 / 2009.4.16)

 

 

전남 무안군 운남면 성내리 1159-3.

 

 

도산사 쌍전문(외삼문)

 

도산사는 전라남도 무안군 운남면에 있으며 2009년 4월 16일 무안군의 향토유적 제6호로 지정되었다.

 

도산사는 1558년 임진왜란 당시 남해현령으로 원균을 따라 사천에서 공을 세운 기효근(奇孝謹)의 위패를 모실 명당자리를 찾다 지금의 성내리 도원마을에 안장하게 되었다.

 

조선 선조(宣祖)가 공신지를 하사하였으며 1930년부터 향교 유림들의 발의로 기효근(奇孝謹), 기자헌(奇自獻), 수허당 (守虛堂) 기종헌(奇宗獻), 삼선생(三先生)의 충절(忠節)을 추모하기 위하여 사우를 건립하고 지금껏 음력 2월 22일에 제를 모고 있다.

 

기자헌(1562~1624)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대사헌,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하였으며 광해군 즉위 때 공헌하였다. 도산사는 1997년 새로 증축하였으며 현재는 행주기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 무안군청 -

 

 

도산사(桃山祠)

 

 

 

 

도산사(桃山祠) 현판.


 

 

 

도산사(桃山祠) 중건비.


 

묘갈명(좌측부터 기자헌, 기효근, 기종헌)

 

 

기효근.
기대유의 아들 기효근(奇孝謹, 1542~1597)은 1579년 무과에 급제했다. 선전관으로 재직할 때 임금의 명을 받아 전국 각지의 군사시설과 무기류를 두루 점검했다. 1590년 남해현령에 임명된 후에도 전란에 대비하여 함선과 무기를 점검, 보수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해상전투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때는 지병으로 인해 남해현령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가는 길에 일본군을 만나자 그의 어머니가 바다에 투신, 자살했고 그도 뒤따라 투신했다. 1604년 선무원종공신 3등에 추증되고 개백군(皆伯君)에 추증되었다.

 

기효근의 딸인 이문룡(李文龍) 처 기씨 부인 또한 일본군과 조우하게 되자 자결했다. 선조 임금의 명으로 그녀의 열행을 기리는 열녀 정려가 세워졌다.

 


기자헌.
기응세의 아들 기자헌(奇自獻, 1562~1624)은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는 예문관 봉교로 선조 임금의 피난길을 호종했다. 대사헌,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했으며 광해군 즉위 때 공을 세웠다

 


기종헌.
기종헌(奇宗獻)은 기대유의 손자이고 기효근의 아들이다. 1592년 남해현령이던 부친을 따라 일본군 방어에 공로가 있어 훈련원정(訓練院正)에 임명되었다. 1605년 선무원종공신이 되어 가의대부에 올랐으며 행원군(幸原君)의 작위를 받았다.

 

기종헌은 충청수사, 파주목사를 지냈으며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임금의 어가가 남한산성에 파천했을 때 남포루(南砲樓) 수비를 명받았으며, 여주목사 한필원, 이천부사 조명욱, 양근군수 한회일, 지평현감 박환과 함께 남한산성을 지켰다. 나중에 수군절도사가 되었다.


[Daum백과]

 

2018.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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