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충효사(忠孝祠)

 

향토문화유산 제4호.

 

 

무안군 당국의 관리부실인지 아니면 주민들의 무관심에 비롯된 것인지 향토문화유산 제4호로 지정된 충효사 삼문 앞이 농업용구와 쓰레기로 볼성사납게 되어있다.

 

 

 

전라남도 무안군 운남면 저동길 57-14 (연리 539-1)

 

 

충효사.

 

충효사(忠孝祠)는 1906년(고종10)에 운남면 주변의 김(金), 기(奇), 정(鄭), 이(李)씨의 4성 6인이 선대의 충효사상을 기리기 위하여 창건되었으며, 김숭조와 임난공신(壬亂功臣)인 충렬공 정기린 등 그 충신과 기응세, 김상경, 정시철, 김필홍, 김성태, 이이주 등 일곱 명의 효자를 배향하고 있다.

 

9인의 단비를 세운 후 1917년과 1921년에 개수하였으며 현재의 건물은 1981년에 사우(祠宇)로 개축(改築)한 것이다.

 

현재 아홉 분의 단비는 1981년 사우(祠宇) 건립 시 매몰되어 현존하지 않으며 사우의 정면 좌측에 1916년에 세워진 충효단비(忠孝壇碑)가 세워져 있다.

 


- 무안군청 -

 

충효사.

 

 

정기린(鄭麒麟, 1570~1593)은 함평군 수호리 출신의 무관으로 하동 정씨 정만주(鄭萬珠)의 아들이다. 1585년 16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좌부장(左部將)을 거쳐 사복내승을 역임했다.
 
임진왜란 발발 후 고경명의 격문을 받고 의병을 모집하여 고경명의 막하로 들어갔다. 고경명의 의병부대와 함께 금산으로 갔지만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의병들이라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을 당해낼 수 없어 참패하고 거의 전원이 전사했다.

 

이때 살아남은 정기린은 순국한 의병들의 영령에 제사를 드린 후 의병을 다시 불러모았는데 그 수가 수백 명에 달했다. 정기린은 이들을 이끌고 김천일의 진영으로 들어가 활동했다.

 

그가 백의대검(白衣帶劍), 기백마(騎白馬), 건백기(建白旗) 삼백(三白)으로 호국의 뜻을 나타내니 선조 임금은 ‘백자장(白字將)’이라는 칭호를 내려주었다.

 

1593년 6월 제2차 진주성 전투 당시 성이 함락될 때 탈출에 성공했으나 나중에 순절했다. 뒤에 선무원종공신으로 녹훈되었으며, 1649년(인조 27)에 정려와 함께 충렬(忠烈)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Daum백과]

 

충효사 현판.

 

충효단비명.

 

 

안쪽에서 본 충효사 삼문.

 

 

2018.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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