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구아재 사랑방

전남 무안. 유산정 유적비(遊山亭 遺蹟碑)

작성일 작성자 봉구아재

 

유산정 유적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53호.

 

 

 

전남 무안군 무안읍 교촌리 130번지.

 

 

 

유산정 유적비 안내문.

 

 

무안 유산정 유적비는 유산정(遊山亭)과 같이 있다.

유산정은 원래 고려 충열왕 때 인물인 면남(綿南) 박문오(朴文晤)가 낙향하여 지은 정자로 알려져 온다. 후에 박문오의 증손 풍정 박의룡(楓亭 朴義龍)이 조선 개국기에 활동하면서 이조, 호조 등의 판서를 지내다가 퇴관한 뒤 이곳에 내려와 지냈다고 한다.

 

세조 때 무안으로 낙향한 애한정 박익경(愛閑亭 朴益卿)은 박문오의 7대손으로 유산정을 중수한다. 그 뒤의 중수에 관한 기록은 자세하지 않으나 지역의 교류 공간으로, 후손들의 공동체 공간으로 활용되었다고 보아진다.

 

1879년에 이르러 사간(司諫) 박기종(朴淇鐘)이 당시 무안현감 홍재정(洪在鼎)의 격려를 입어 중건하고 그뒤 1905년과 1968년 등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산정 유적비는 후손 박기종이 중심이 되어 중건하던 시기에 면암 최익현의 비문을 받아 건립한 비이다. 이 비는 박문오가 유산정을 건립하게 된 내력과 그의 생애, 유산정의 연혁, 후손들의 분파와 활동에 대하여 기록한 것이다.

 

비문은 면암 최익현(1833∼1906)이 지었고 글씨는 후손인 박기준이 썼다. 건립연대는 비문 끝에 '永曆二百五十年丙申(영력이백오십년병신)'이라는 연기가 있어 1896년(建陽 1)임을 알 수 있다.

 

유산정 유적비는 유산정을 비롯한 무안 박씨 일문의 사적을 담고 있는 금석문이다. 유산정의 처음 건립 내역부터 조선후기에 이르기까지의 중·개수 내용 등 정자 자체의 연혁만이 아니라 후손의 정착과 분포 등 향촌 사회의 성씨 집단의 활동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건립의 연대는 1896년으로 빠른 편은 아니지만, 비문의 찬자가 면암 최익현으로서 역사성도 함께 지니고 있다.


 

- 우리 지역 문화재 -

 

 

고려 정승 면성부원군 박문오의 유산정 유적비 안내문.

 

 

유산정으로 오르는 돌계단길.

 

 

유산정.

 

 

유산정 현판.

 

 

유산정의 시문 현판.

 

 

시문 현판.

 

 

 

 

유산정.

 

 

2016.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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