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산사 입구 홍살문.

 

 

광주광역시 서구 불암길 82-100 (서창동 1)

 

 

 

학산사 전경.

 

 

광주시 서창동 불암마을 팔학산 기슭에 위치해 있는 학산사(鶴山祠)는 임진왜란 때 제1차 금산성 전투에서 일본군과 싸우다가 순절한 의병장 김세근(金世斤, 1550~1592)장군의 충의를 기려 제사지내는 사당이다.

 

김세근의 본관은 김해김씨이며 경상남도 함안군 마륜동에서 출생했다. 그의 방조(傍祖) 김일손이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참살 당하자, 김세근의 아버지 김석경(金碩慶)은 식솔들을 거느리고 이곳으로 이주해 왔다.

 

김세근은 1577년 28세 때 문과에 급제한 후 홍문관의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35세 때 종부시 주부(宗簿寺主簿)에 올랐다.


1592년 4월 그의 나이 42세 때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하여 곧바로 서울로 진격하니 선조 임금은 의주로 몽진하게 되었다. 이 무렵 김세근은 사복시 주부(정6품) 벼슬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요양 중에 있었다.

 

그 해 6월 12일 충청지역 의병장인 스승 조헌(趙憲)의 격문을 받은 김세근은 의병 300여 명을 모아 인근의 계곡에서 훈련시킨 후 전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흩어져 있던 관군 200여 명을 규합하여 충청북도 영동 부근의 일본군을 공격했다.

 

김세근은 자신이 훈련시킨 장정들을 이끌고 추성회맹(秋城會盟)에 참가하여 유팽로, 김덕홍, 안영 등과 더불어 고경명의 의병군 대열에 합세했다. 전라북도 전주에서 의병 군진을 정비하던 그는 일본군이 금산(錦山)으로 침입한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들을 이끌고 금산으로 갔다.

 

고경명이 지휘하는 의병과 합세하여 금산 와평들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던 김세근은 7월 9일 고경명 등 의병들과 함께 전사했다. 조정은 그에게 가선대부 병조참판의 벼슬을 내리고 선무원종공신에 서훈했다.

 

광주 유림에서 그의 넋을 추모하는 사우 건립을 발의하여 1958년 학산사를 세웠다.
매년 봄 음력 3월 22일 제사를 지낸다.

 

 

 

청주한씨(淸州韓氏)


김세근의 부인 청주한씨(淸州韓氏, 1551~1592)는 김세근이 금산성 전투에서 순절했다는 비보를 전해 들었다. 시동생 김수근과 아들 김추남(金秋男)이 금산으로 달려가 유해를 수습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초혼으로 선영 밑에 장사지낸 다음날 청주 한씨는 '부사충(夫死忠)하고 부사열(婦死烈)은 인지본(人之本)'이라는 유고를 남기고 부군이 전장(戰場)으로 떠나면서 자신에게 준 단검으로 자결했다. 조정에서는 부인 한씨에게 '정부인' 칭호를 내렸다.

 

사우 안에는 선무원종공신 녹권과 출전 시 부인에게 주었던 단검이 유물로 보관되어 있다.

 

 

[Daum백과]

 

학산사 외삼문.

 

 

학산사 안내판.

 

 

학산사 내력 안내석 앞면.

 

 

학산사 내력 안내석 뒷면.

 

 

학산사 경의당(景義堂)

 

 

경의당 현판.

 

 

학산사 묘정비.

 

 

내삼문(창열문)

 

 

학산사 사당.

 

 

보수공사가 시급한 학산사의 무너진 담장.

 

 

학산사 앞의 연못과 배롱꽃.

 

 

*학산사 입구 홍살문 부근에 삽봉 김세근 의병장 묘소가 안치되어있다.*

 

 

2018.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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