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장군 단소 표지석.

 

 

전북 정읍시 이평면 창동리 산 10-3 

 

 

 

동학농민군 대장 전봉준 단소 안내문.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 창동리에 위치하고 있는 전봉준 장군 단소는 전봉준 유적지(구, 전봉준 선생 고택지)에서 약 500m 떨어진 소나무 숲에 있다.

 

1954년 천안전씨 문중에서 제단과 비석을 세우고 매년 제사를 지낸다.
1994년부터 연차적으로 정비하여 유해가 없는 虛墓(허묘)를 조성하고, <전봉준 장군 운명시비>도 세웠다.

 

동학농민운동지도자인 전봉준은 1895년 3월 서울에서 처형되어 끝내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

 

비석에는 '갑오민주창의통수천안전공지단(甲午民主倡義統首天安全公琫準之壇)'이라고 새겨져 있다.

 

 

전봉준장군 단소 전경.

 

 

- 전봉준(全琫準): 1855(철종 6)∼1895(고종 32). 조선 말기 동학농민운동 지도자.

 

- 전봉준장군의 초명은 명숙(明淑), 호는 해몽(海夢)이다. 몸이 왜소하였기 때문에 흔히 녹두(綠豆)라 불렸고, 뒷날 녹두장군이란 별명이 생겼다.

 

- 아버지 전창혁은 고부 군수 조병갑(趙秉甲)의 탐학에 저항하다가 모진 곤장을 맞고 한 달  만에 죽음을 당하였다. 뒷날 그가 사회개혁의 큰 뜻을 품게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 전봉준 장군은 반외세를 외치며 거병(擧兵)했으나 밀고를 당해 1895년 4월 41세에 서울에서 교수형에 처해졌으나 끝내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

 

1890년(고종 27)경인 35세 전후에 동학에 입교, 그 뒤 얼마 안 되어 동학의 제2세 교주 최시형(崔時亨)으로부터 고부지방의 동학접주(接主)로 임명되었다. 동학에 입교하게 된 동기는 스스로가 말하고 있듯이, 동학은 경천수심(敬天守心)의 도(道)로, 충효를 근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보국안민(輔國安民)하기 위하여서였다고 한다. 동학을 사회 개혁의 지도 원리로 인식하고 농민의 입장에서 동학교도와 농민을 결합시킴으로써 농민운동을 지도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탐관오리에게 잃고, 농민군을 이끌고 고부 관아를 습격, 민란이 손화중·김개남 등 동학 접주들과 손을 잡고 동학농민운동으로 확대, 집강소 설치하고 폐정개혁 시행, 반외세를 외치며 거병했으나 밀고 당해 교수형에 처해졌다.

 

 

- 웹사이트 -

 

 

전봉준장군 단소.

 

 

갑오민주 창의통수 천안전공 봉준지단.

甲午民主 倡義統首 天安全公 琫準之壇.

 

 

갑오민주 창의통수 천안전공 봉준 사적비.

甲午民主 倡義統首 天安全公 琫準 史蹟碑.

 

 

갑오민주 창의문 비.

甲午民主 倡義文 碑.

 

 

파랑새 비.

 

 

전봉준 장군 순명 시.

全琫準 將軍 殉命 詩.

 

 

서기 1931년 천안전씨 대동족보 전봉준 기

전봉준 初名 鐵爐, 又名 炳鎬, 字 明淑.

 

 

백구시.

白鷗詩.

 

 

갑오민주 창의통수 천안전공 봉준지단 기.

 

 

지산 김용록

설송 김형식

송암 김용필 공적비.

 

 

단소 입구에서 바라본 전봉준장군 단소 전경.

 

 

 

2019.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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