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구아재 사랑방

전남 영광. 임진수성사(壬辰守城祠)

작성일 작성자 봉구아재

 

임진수성사(壬辰守城祠) 전경.

 

 

1592년 임진왜란 때 영광읍성 방위를 위해 굳게 뭉친 선비 55인의 의열정신(義烈精神)을 기리기 위해 영광읍 에 사당 임진수성사가 건립되었다.

 

 

 

다녀온 날: 2019년 6월 6일.

 

 

전남 영광군 영광읍 무령리 315-55 (중앙로 228-75)

 

 

 

55인의 명단 중 일부를 보면, 이응종(李應鍾)이 도별장(都別將)을 맡아 지휘했고, 만호(萬戶)를 지낸 강태(姜泰)가 부장(副將)을 맡았다. 그 밑에 종사관, 참모관, 장문서, 수성장, 도청서기, 군관, 수문장, 유군장, 중위장, 중부장 등의 직제를 두어 수성 부대를 편성했다.

 

5년 후인 1597년 정유재란 때 피난 가다가 일본군의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갔던 강항도 명단에 들어있는데 그가 맡았던 직함은 문서를 다루는 장문서(掌文書)이다.

 

 

임진수성사 안내문.

 

 

임진수성록.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201호.
1998년 2월 5일.

 

 

1592년 임진년(壬辰年)에 왜군의 침략을 받아 우리나라가 혼란스러울 때 우리고을도 군수마저 부재로 민중들은 당황하고 망연하였으나 고을의 우국지사들이 영광읍성에서 모여 결사보국키로 삽혈공맹하고 대표 55인으로 수성부서를 편성 의기 충전하여 군율을 시행하고 자체 수비하는 한편 무기와 군량을 의주행재소와 전선에 조달하여 병창의 의무를 수행하는 등 우리 고장 선인들은 의를 위해서는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장거는 면면히 이어온 우리 민족정기의 발현이었으며 향토를 사랑한 영광군민의 의로운 정서였다.

 

이에 대한 임진수성록이 1998년 2월5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201호로 지정되었으며, 수성제현의 호국의지와 의열정신을 귀감하고 교훈 삼아 지난 세기의 민족수난과 치욕을 불식하고 온 겨레의 역량을 결집하여 중흥을 기해야 할 책무가 있어 임진수성사를 건립하였다 한다.

 

 

- 웹사이트 -

 

 

 

임진수성비.

 

 

임진수성비.

 

 

공덕비.

 

 

숭의문(외삼문)

 

 

수성사 묘정비.

 

 

수성사 사당.

 

 

임진왜란(1592) 당시 군수 부재 상황에서  우국충정에 불타는 지역주민 55명이 성을 끝까지 지키며 항거하여 왜군을 막아냈다고 한다.

 

그 애국 충정의 정신을 기리는 사당으로 55인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수성사.

 

 

수성사 현판.

 

 

유물관.

 

 

임진왜란 때 영광을 수성(守成)하던 재향사림 55인의 활약상을 소상히 기록한 임진수성록(壬辰守城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201호)은 총 1책 21장으로 구성되었으며, 임진왜란수성명첩서, 임진수성록. 수성명첩.  수성법, 수성방위 사례 등이 기록되어 있다.

 

문헌에 따르면 영광군수 남궁견이 상복을 입고 있을 때 수령이 부재한 상황에서 당시 영광의 향중사림이 자치적으로 읍성을 지킨 기간은 1592년(선조 25) 10월 18일부터 이듬해 2월 28일까지 약 5개월간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부서를 24개로 편성하고 각 부서의 책임자를 배정하여 수성군 방위조직을 갖추었다.

 

수성록은 1748년(영조 24) 당시 의병들의 후손인 정치형 등이 영광에 왔던 어사 한광희의 도움으로 간행하였다 하며, 책 끝부분에 상지이십구년계유중추개간우봉정사(上之二十九年癸酉中秋開刊于鳳停寺)라고  씌어 있어 1753년(영조 29)에 봉정사(현재 장성군 삼계면 소재)에서 인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영광 임진수성 사적보존회 현판.

 

 

 

2019.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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