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구아재 사랑방

전남 무안. 한호 임연의 강학교류처 식영정(息營亭)

작성일 작성자 봉구아재

 

무안 식영정 전경.

 

한호 임연의 강학교류처 식영정(息營亭)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37호.
(지정: 2002.04.19)

 

관리자: 나주임씨 한호공파 종중.

 

 

다녀온 날: 2019년 9월 15일.

 

 

전남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 551 (호반로 562-15)


 

 

무안 식영정 안내문.

 

 

식영정(息營亭)은 한호(閑好) 임연(林堧: 1589∼1648)선생이 1630년에 무안에 입향 이후 강학소요처로 지은 정자로 영산강[이호(梨湖)]과 그 주변의 경관과 어울려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은 곳이다.

 

그리고 임연(林堧)의 증손으로 『동사회강』을 지은 문인 학자인 노촌(老村) 임상덕(林象德, 1683∼1710)이 제현과 교류하는 등 무안 몽탄 이산리의 나주임씨 강학교류 공간이었다.

 

무안 이거와 경관, 정자건립 등에 관해서는 1643년경에 임연(林堧)이 지은 『복거록(卜居錄)』에 잘 나타나 있고 교류한 문인도 많다.

 

식영정(息營亭)은 창건주 임연의 증손인 노촌 임상덕 等이 代를 이어가면서 교류공간으로 기능하였다.

 

식영정(息營亭)은 인문적 측면에서 보면 영산강 유역의 대표적 정자라 해도 손색이 없다.

 

그리고 정자의 입지나 주변의 경관도 뛰어나다.

 

현재의 건물은 1900년대 초반에 중건한 건물로써 나주임씨 한호공파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 우리 지역 문화재 -


 

통정대부 좌승지 한호 나주임공연 유허비.

通政大夫 左承旨 閒好 羅州林公堧 遺墟碑.

 

 

식영정 유래기 碑.

 

 

식영정의 유래 안내문.

 

 

 

 

식영정.

 

 

연비어약(鳶飛魚躍)

식영정에서 바라보는 솔개는 날으며 물고기가 뛰어오른다.

 

 

식영정(息營亭)

 

 

식영정.

 

 

식영정.

 

 

보호수.

수령 510년.

푸조나무.

 

 

보호수.

수령 510년.

팽나무.

 

 

쉼터 정자.

 

 

영산강 제2경. 몽탄노적(夢灘蘆笛)

 

 

이곳은 영산강 8경 중 제2경은 몽탄노적에 해당되는 곳으로 영산강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는 대표적인 장소로 꼽는다.

 

또한 몽탄강에 얽힌 전설이 전해오는데...

 

"몽탄강은 무안군 몽탄면과 나주군 동강면을 연결하는 영산강 하류를 말하며 이곳을 몽탄강이라 이름한 것은 후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태조 왕건이 아직 후삼국을 통일하기 이전에 후백제 견훤과 한판의 승부를 겨루게 되어 견훤이 마지막 나주성에 웅거하여 고려군과 싸우게 될 때 왕건이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동강면 옥정리 몽송부락에 당도하여 진을 쳤었다.

 

그 때에 견훤군이 사방을 애워 싸고 공격하니 포위된 고려군은 당황하여 포위망에서 혈로를 뚫으려하였으나 마침 강물이 범람하여 빠져나갈 수 없기 때문에 고려군은 사력을 다하여 방어하였으며 밤이 깊어서야 견훤군이 공격을 멈추어 서로가 방어태세를 갖추게 되었고 싸움은 소강상태에 들어가게 되어 고려군은 지친 나머지 잠에 빠지게 되었다.

 

물론 고려의 장수 왕건도 군막에서 잠이 들었는데 백발노인이 왕건 앞에 나타나 "앞으로 대업을 이루려는 장군이 일기도 모르고 잠만 자면 되는가! 지금 강물이 빠졌으니 군사를 이끌고 빨리 강을 건너 무안 청용리 두대산을 향하여 파군천 하류에 진을 치고 있다가 견훤군이 뒤를 쫓으면 그곳에서 견훤군을 치면 장군은 크게 승리하고 삼국을 통일하는데 성공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사라졌다.

 

왕건은 깜짝 놀라 일어나니 꿈이었다.

 

왕건은 이상한 꿈인지라 밖을 나가보니 과연 강에는 물이 완전히 빠져있어 급히 군사를 깨어 강물이 빠진 여울을 건너 청용리 두대산을 향하여 행군하니 두대산은 마람으로 이어져 군량미를 쌓아놓은 노적봉 같았고 파군천에 이르니 마치 강물이 하얀 쌀뜨물처럼 흐르고 있어 이상히 여기고 군사를 좌우에 매복시켜놓고 지형을 살피고 있을 때 견훤군이 뒤를 쫓아오다가 이상한 노적봉이 있고 또 하얀 쌀뜨물이 흐르니 큰 군사가 진을 치고 있는 줄 알고 전진을 주저하고 있을 때 좌우에 매복되었던 왕건의 군사가 함성을 지르며 협공하니 혼비백산한 견훤의 군대는 지리멸열하여 크게 부서지고 견훤은 겨우 생명을 부지하여 도망하였다.

 

그 후 이 강을 꿈에 여울을 건넜다 하여 몽탄강이라 부르게 되었고 이 몽탄강 하류의 전승지를 파군천이라 하였으며 이 천을 이은 다리를 파군교라 하였다.

 

 

몽탄노적에서 바라본 영산강.

 

 

2019.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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