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정읍. 동학농민혁명군 지도자 손화중 장군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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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 동학농민혁명군 지도자 손화중 장군 묘역

봉구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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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농민혁명군 지도자 손화중 장군 묘역.



다녀온 날: 2019년12월 8일.



전북 정읍시 상평동 산 134.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손화중(孫華仲) 장군.

 

전라북도 정읍의 지주 집안 출신으로 20대에 동학교도가 되었다. 온화한 성품으로 도술을 부린다고 소문이 나서 그의 부대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렸다.


우금치 전투가 실패로 끝난 후에 잔여 부대를 이끌고 광주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패배하고, 고향에 숨어 있다가 관군에 체포되어 전봉준과 함께 처형되었다.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손화중 장군 묘.



1895년 3월 29일(양력 4월 23일) 교수형에 처해져
35세 나이로 최후를 마쳤는데. 시신을 거두지 못하였다.

이 묘는 빈 허묘(虛墓)로 1996년 후손 손홍렬 등이 조성하였다.



배우자와 합장된 묘 앞의 비석.


갑오총령 밀양손공 화중선생지묘.

배: 고흥 류씨 부좌.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손화중 장군 묘 안내문.



손화중(孫華仲)의 본관은 밀양이며 이름은 정식(正植), 자는 화중(華仲, 和中, 化中), 호는 초산(楚山). 1861년 6월 22일(음력) 정읍 과교리(현 정읍시 과교동)에서 출생했으며, 1881년 처남 유용수(柳龍洙)를 따라 지리산 청학동에 갔다가 동학에 입도하여 수도하였다.


수도를 마치고 1883년 고향 정읍으로 돌아와 동학을 포교하였다. 정읍군 내 농소리, 입압리, 신면리, 음성리 등지를 돌아다니며 포교하다가, 인근 고창군 무장면(茂長面)에 들어가 김모씨의 집에 포교소(布敎所)를 설치하여 동학 포교를 본격화하였다.
 
후에 접주가 되어 1892년 전라북도 삼례(參禮)에서 교조신원운동(敎祖伸寃運動)이 일어나자 많은 교도들을 동원하여 참여시키기도 하였다. 1893년 서울 광화문 복합상소(伏閤上疏)가 이루어질 때는 호남 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 충청북도 보은 장내리(帳內里) 집회에도 많은 교도들을 동원하는 등 동학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크게 발휘하였다.
 
1894년 동학군의 전주화약(全州和約) 후에는 전라남도 나주(羅州) 지방으로 가서 폐정개혁(弊政改革) 운동을 지도하였다. 제2차 동학혁명운동을 일으킨 1894년 10월에는 일본군의 배후상륙에 대비하여 최경선(崔景善)과 함께 나주 부근에 주둔하여 일본군을 경계하였다.


전봉준(全琫準)의 공주(公州) 공략이 실패한 뒤에는 나주성을 공격하였으나 지형관계로 또 실패하였다. 12월에 일시 광주(光州)로 후퇴 입성하였다가, 정부군의 압박을 받고 그 후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興德)으로 되돌아왔다. 여기서 이모씨의 재실(齋室)에 숨어 있다가, 1895년 1월 6일 재실지기 이봉우(李鳳宇)의 고발로 체포되고 말았다. 전주 감영(監營)으로 압송되었다가 서울로 이송되었고, 여러 차례의 심문 끝에 전봉준, 김덕명(金德明), 최경선, 성두환(成斗煥)과 함께 처형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손화중 장군 묘역.



무인석(武人石)과 망주석(望柱石). 그리고 석등(石燈)이 묘역을 지키고 있다.



묘역 앞에 소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있다.



2019.12.08.


다음은 <전봉준 장군 단소>로 안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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