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목적지인 대가야박물관까지는 아들이랑 보고, 부인님은 울산에서 조인한다.

뭐가 좋은지 모르겠지만 아이 좋단다


시골의 정서를 느끼게 해주는 플래카드


여기도 고속철도 역 유치 전쟁이 치열한갑다.


자!


박물관 입구

비중이 작아 아들의 국사 점수에는 별 보탬이 안될지 모르겠으나

본 여행이 나중에 마주할 딱딱한 교과서와 수업에도 불구하고 역사에 재미 느끼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가야 토기 문양을 살짝 반영해 놓은 듯


6월 연휴 시작이라 그런지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가 제법 된다. 



6개 국가의 연합이라 알고 있는데 ... 7 개인데?

가야의 역사가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제멸망 678년, 가야 멸망 562년. 백년 차이밖에 안난다)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신라에서 철저하게 파괴했음을 짐작케하는 대목.

그리고 대가야 영토는 생각보다 상당히 컸네.


가야의 일반적 특징은 꽤나 독특하게 발전된 토기, 그리고 가장 앞선 철의 생산국




아래 국립김해 박물관도 작년에 다녀와서 포스팅했으니 관심있음 다시 한 번 봐주시고

http://blog.daum.net/loch_ness/3710507


이렇게 잊혀진 역사를 발굴하는 것이 분명 의미 있는 일일게다.




청동기 시대 바위 그림을 데어다가 무덤 뚜껑으로 사용했다니 재미있다.




전시관 내부





중세시대 사람들이 로마가 건설했던 수로와 다리를 보고 저건 사람이 만들 수 없는거야 하고 악마의 다리라 이름 붙이기도 했다는데

조선인이 산 정상의 거대 왕릉을 보고 느꼈던 감정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이런 저런 지방 축제가 많은데, 대가야 축제도 꼭 활성화 되었으면 좋겠다.

산천어 잡고 진흙 바르는 것도 좋지만 역사를 재미나게 널리 알리는 것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아직 왕릉 전시관이 남아 있다.





가야의 앞선 철기 기술은 일본에게도 널리 전해졌고 가야와 일본, 그리고 백제는 거의 형제 국가처럼 친했던 듯 하다.

1500 년전 꽤나 친밀했던 한반도와 일본이 오늘날 이렇게 틀어지게 된 것은 물론 전적으로 일본의 탓이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양국이 다시 손을 잡고 친구가 되길 바란다. 


가야의 몹시 엽기적은 특징은 또 있다.

하나는 이마를 찍어 눌러 편편하게 만든 성형수술이 널리 행해졌던 점.

또 하나는 순장.

이게 꽤나 대규모로, 또 조직적으로 행해 졌다.

주인이 죽으면 따라 죽어야 했던 시녀, 무사들.

이들은 기쁜 마음으로 주인을 따라 무덤에 묻혔을까, 신분의 차별이 공공연한 더러운 세상을 탓하면서 죽어갔을까

(가야 외에는 신라 초반에 드물게 발견된 걸로 알고 있다.)



가야 역시 오키나와까지 교역한 나름의 국제 무역 국가



고분군이 존재하는 바로 그 자리에 박물관을 세운, 절묘한 위치 선정이다.





왕릉 트랙킹도 해볼만 하겠네.


입장료는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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