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오강호

백제의 광릉군은 원래 양자강근처였다.

작성일 작성자 만주몽골조선땅임
《남제서(南齊書)》 백제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모태(牟太)가 또 표문을 올려서 말하기를, “신이 파견한 행 광양 태수(行廣陽太守) 고달(高達), 행 조선 태수(行朝鮮太守) 양무(楊茂), 행 선위장군(行宣威將軍) 회매(會邁) 등 3인에 대해서 특별히 굽어 살피시어 정식으로 관작을 제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고달은 이제 가행 용양장군(假行假行龍驤將軍) 대방태수(帶方太守)라 하였습니다. 양무는 이제 가행 건위장군(假行建威將軍) 광릉태수(廣陵太守)라 하였습니다. 회매는 이제 가행 광무장군(廣武將軍) 청하태수(淸河太守)라 하였습니다.

 

광릉군의 주인은 바로 백제황제이다. 

 

광릉공(廣陵公 문종(文宗)의 아들인 조선후(朝鮮侯) 도(燾)의 증손) 면(沔)이 졸하였다

무인 5년(1218), 송 가정 11년ㆍ금 홍정 2년ㆍ몽고 태조 13년고려사절요 고종

 

고려역시 광릉군과 조선군을 가지고 있었다.

 

광릉역(廣陵驛)에 이르렀음.
이날은 맑았습니다. 수부신사(水府神祠)에서 배를 출발시켜 양자강에 이르니, 강가의 5, 6리 사이에는 노를 저어 배를 움직여 가는 사람이 전후에 잇따랐습니다. 신 등이 돛을 달고 강 가운데의 금산 아래에 이르니, 강돈(江豚 돌고래)이 물결 희롱하기를 마치 전마(戰馬)가 떼지어 달아나는 듯이 하였습

표해록(漂海錄) 제2권무신년(1488, 성종 19) 2월[5일-30일]

 

광릉의 위치는 조선시대에도 전부 양자강근처로 알고 있었다.

 

숙신씨는 일명 읍루(挹婁)라고도 하는데, 불함산(不咸山)의 북쪽에 있으며, 부여에서 60일쯤 가야 하는 거리에 있다. 동쪽으로는 큰 바다에 닿아 있고, 서쪽으로는 구만한국(寇漫汗國)과 접해 있으며, 북쪽은 약수(弱水)에까지 닿아 있다. 그 땅의 경계는 너비와 폭이 수천 리이다

진(晉)나라 무제(武帝) 원강(元康) 초에 다시 와서 공물을 바쳤다. 동진(東晉)의 원제(元帝)가 진나라를 중흥시키자 또다시 강좌(江左)에 와서 석노를 공물로 바쳤다.

《진서(晉書)》

백제의 전성기가 바로 위오촉에서 晉나라시대이다. 요서,진평을 차지하고 고구려와 진나라를 밀어내고 막강한 힘을 행사하였다. 이때가 근초고 근구수황제때이다.  고구려의 북쪽에 있던 숙신부족 아마도 지금의 흑룡강동쪽일대남쪽에 있던 부족이다. 이부족이 양자강남쪽에 있던 동진과 교류를 하게 된것이다. 누구때문이겠는가

 

 

 

물길국(勿吉國)은 고구려의 북쪽에 있으니, 옛 숙신씨의 지역이다. 읍락(邑落)마다 각각 우두머리가 있다. 그러나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는 않다. 그곳 사람들은 굳세고 흉포하여 동이(東夷) 가운데에서 가장 강하며, 쓰는 언어도 그들만이 다르다

지난 연흥(延興) 연간에 그 나라에서 사신 을력지(乙力支)를 보내어 조회하고 방물(方物)을 바쳤으며, 태화(太和) 초에 또 말 500필을 바쳤다. 을력지가 일컫기를 우리나라에서 먼저 고구려의 10개 부락을 함락하고 비밀리에 백제와 모의하여 수로(水路)를 따라와 힘을 합쳐서 고구려를 취하기로 하였습니다.

《후위서(後魏書)》


후위서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바로 백제때문이다. 백제가 숙신부족과 동맹을 맺거나 혹은 숙신부족이 백제에 속국이 되기로 한것으로 보인다. 양나라기록에 신라가 백제사신을 따라 양나라에 왔다는 것처럼 숙신씨부족이 백제를 따라 양자강남쪽에 온것이다. 그렇다면 백제는 양자강근처에 땅이 있다는 것 밖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다른기록에도 흑룡강동쪽에 사는 부족이 백제에 붙었다는 것이 있으니 숙신부족일부가 백제에 충성한 것이다. 또한가지 백제가 강할때 그 영토가 연해주남부와 만주 남부에 미쳤음을 위에서 알수있다. 백제의 전성기에는 동아시아의 해안지대를 모조리 석권했다. 연해주에서 한반도 요동 하북 산둥 양자강하류 대륙남부 복건 광둥광서 일본 베트남 대만 오키나와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지를 거의 차지하고 군대를 파견하였다.  30만이상의 대군을 거느리고 동방의 로마제국으로 군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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