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오강호

강소성의 양주는 백제와 신라,고려의 땅이었다.

작성일 작성자 만주몽골조선땅임

회수(淮水)와 바다 사이에는 양주(揚州)가 있다. 도이(島夷)는 초복(草服)을 입는다. 《상서

 

양주가 원래 강소성일대임을 알수있다. 그곳은 원래 우리민족의 땅이었다.

금과 남송은 회수와 다싼관(장안근처)를 국경으로 삼았다. 위의 지도에 금나라의 동남쪽이 회수이다. 회수의 동쪽은 고려땅인데 띨빵한 국사학계가 자기 선조땅도 표시하지 못한다.

 

괄지지(括地志)》에 이르기를,

“백제국(百濟國)의 서남쪽 큰 바다 가운데에 큰 섬 15개가 있다. 모두 부락이 있고 사람이 살고 있는데, 백제에 속하는 곳이다. 또 왜국(倭國)은 이름을 고쳐 일본(日本)이라 하는데, 백제의 남쪽에 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섬에 살고 있는데, 모두 1백여 개의 작은 나라가 있다.”
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양주(揚州)의 동쪽에 있는 도이들이다. 살펴보건대, 동남쪽 오랑캐들의 초복(草服)은 갈월(葛越)이나 초죽(蕉竹) 등으로 만들어 입는데, 월(越)은 바로 모시이다.

《사기정의》

  [주D-002]양주(揚州)의 옛 공물(貢物) : 《서경(書經)》 하서(夏書) 우공(禹貢)에 의하면, 양주(揚州)와 회(淮), 해(海) 지역에서는 토산(土産)인 귤(橘)과 유자[柚]를 공물로 바쳤으므로 이른 말이다

 

양주에서 귤과 유자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아래 언번로 속집에 고려의 무주에 귤과 유자가 난다고 하니 고려의 무주가 옛부터 양주라 불리던 곳임을 알수있다. 

 

 건염(建炎 송 고종(宋高宗)의 연호) 2년(인종 6, 1128), 절동로 마보군 도총관(浙東路馬步軍都摠管) 양응성(楊應誠)이 아뢰기를 "고려를 경유하여 여진에 닿는 것이 노정(路程)으로 보아 굉장한 지름길이 되니, 고려에 사신을 보내어 연운(燕雲)에 있는 이성(二聖 송 휘종(宋徽宗)과 송 흠종(宋欽宗))을 맞이하도록 시도해 보십시오." 하자 응성을 가칭 형부 상서로 삼아 부사(副使) 한연(韓衍)과 서장관(書狀官) 맹건(孟建)을 함께 보내려 하니, 절동(浙東)의 장수 적여문(翟汝文)이 아뢰기를 "만약 고려에서 금(金) 나라 사람이 해로(海路)를 물어 대국을 엿보기를 청하리라는 이유로 거절한다면 무슨 말로써 대답할 것입니까? 보내지 마옵소서." 하였다

송사전 고려열전 

 

 

띨빵한 국사학계가 그린 지도를 보면 아무리 봐도 남송과 금은 서로 싸우면 되는데 굳이 고려땅을 경유하겠단다. 두나라가 빙신이거나 아니면 국사학계가 빙신이란 증거이다. 고려가 금과 남송의 사이 동해안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기록이 나오는것이다. 빙신 국사학계는 어서 물러나라!!!

 

 18년 초, 이심(李深)ㆍ지지용(智之用)이 송 나라 사람 장철(張喆)과 공모하여 심이 성명을 고쳐 동방흔(東方昕)이라 하면서 송 나라 태사(太師) 진회(秦檜)에게 편지를 통하기를 "만약 금 나라를 정벌한다는 명목으로 고려에게 길을 빌려달라 하고 우리가 안에서 호응한다면 고려를 정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송사전 고려열전 

 

같은 내용으로 국사학계가 등신이란 증거를 위에서 알려주고 있다.

 

고려는 동쪽에서 서쪽까지가 2천 3백 리이고 남쪽에서 북쪽까지는 3천 리인데 압록강(鴨綠江)을 의뢰하여 견고함을 이루었다. 동쪽은 바닷물이 깨끗하여 깊이 열 길 정도는 내려다볼 수 있고, 동남쪽은 명주를 바라보게 되는데 그곳의 바닷물은 모두 시퍼렇다

  송사전 고려열전 

 

언번로 속집에는 5천리 남쪽까지 고려땅이라 하는데 졸지에 2천리가 날아갔다. 위의 기록을 작성할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다. 당서에는 신라가 동서1천리 남북3천리로 나온다. 그러니 한반도를 옜날부터 동서1천리정도로 생각한것 같다. 고구려의 천리장성이 요동반도동쪽에서 시작되고 거기바로 옆은 백제땅이니 신라땅은 만주 남부근처였을 것이다. 앞에서 백제가 전성기때 숙신부족의 상국이었다고 했으니 원래 전부 백제땅이었는데 고구려가 뺏고 신라가 다시 빼앗았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 동래까지 9백리정도이니 대략2300리이면 고려땅의 서쪽경계는 지금의 베이징근교로 연산에서 고려땅이 시작한다는 것과 일치한다. 

 

고려도경에 보면 고려는 원래 동서2천리 남북 1500리인데 신라와 백제땅을 병합했다고 한다. 즉 백제땅이 고려땅보다 오히려 더 컷을수도 있음을 알수있다. 후백제는 산둥강소 하북일부 한반도일부를 장악하고 있었다. 신라는 한반도동해안에서 3백리안쪽까지는 장악하고 있었다. 

 

 신의 경로는 우두 외양에서 도저소, 항주로 해서 북경의 회동관(會同館)에 이르렀으니, 대개 합계하면 6000여 리였습니다

  표해록(漂海錄) 제3권(우두외양은 절강성동쪽해안)

 

 

 

 연번로속집(演繁露續集)》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고려의 속군(屬郡)에 강주(康州)가 있는데, 고려에서 남쪽으로 5000리 되는 곳에 있으면서 명주(明州)와 마주 보고 있다. 강주의 이웃 군을 무주(武州)라고 한다. 귤과 유자가 생산된다

 [주D-007]명주(明州) : 중국 절강성(浙江省)의 영파부(寧波府)이다

 

고대기록을 보면 절강의 남쪽에서 북경까지는 6천리이다. 그럼 고려의 시작점인 연산(북경부근)에서 5천리 남쪽은 당연히 강소성남쪽해안지대이다. 이를 언번로 속집도 명주와 마주본다고 증명해주고 있다. 띨빵 무식 국사학계가 기록은 제대로 검토해 보고 국사책을 쓰는지 참으로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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