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오강호

고구려의 전신 고죽국은 치우의 구려국이며 장안과 화산의 사이에 있었다.

작성일 작성자 이민준비중

 

長平郡永安中置。治玄氏城。

  領縣二

  戶五千四百一十二

  口二萬二千七百七十八

  高平永安中置。治高平城。

  玄氏二漢、晉屬上黨郡治。有羊頭山。

북위서

장평군은 치소가 현씨성이다. 현이 2개 있는데 고평현은 치소가 고평성이다.

 

 告平城遗址 位于县城西15公里的敷水镇西南2公里、秦岭电厂东北240米,新西潼公路北约150米处的平坦耕地上,西距大华公路100米。据清《华阴县志》记载:“敷水南山石山之敷谷有告平城。相传武王伐纣告太平于此。”据《魏书·地理志》载,称为高平城。1988年9月文物普查发现告平城遗址范围:现有城墙残迹,东西约45米,南北380米,呈南北走向,残墙高约2—4米,夯土层厚约8—12厘米,平夯内夹杂有鹅卵石,为周代古城遗址

阴晋城遗址_互动百科

고평성유적은 화양현성 서쪽 15km부수진 서남 2km에 있다. 화양현지에 부수남산의 석산의 부곡에 고평성이 있다고 한다. 위서 지리지에도 고평성이라고 한다.

 

 

진나라 장수 백기가 조나라군40만을 죽이고  사실상 조나라와 한나라의 주력을 괴멸시켜 위조한을 병합하는 결정적계기가 된 장소인 장평이 바로 려산일대에 있었던 것이다.  각 지방의 문물국은 그 지방의 문물과 유적을 발표하는데 이는 짱개 중앙정부의 지침을 잘 따르지 않는다. 왜냐면 유적이 많아야 지방정부는 홍보도 되고 관광자원도 되기때문에 굳이  축소시킬 필요가 없던 것이다.

 

장안에서 화산에 이르는 땅에는 우리민족과 연관된 지명이 많다.  먼저 용수산은 우리 지리지에 고죽국의 북쪽에 있는 산이라고 했다. 고죽국동쪽에는 수양산이 있다고 적혀있다. 중국백과는 이땅을 가리켜 려융의 땅이라고 한다. 한족의 땅이 아니라 려,와 융의 땅즉 치우의 구려족과 융족의 땅인 것이다. 그러니 아직도 치우성이 저기에 남아 있다. 마침 고죽국의 수양산과 백이숙제묘가 고지도상에도 근처에 표기되어 있다.

 

장안에서 한참 서쪽에 있는 룡서현의 문물국에서 백이숙제묘와 수양산이 있다고 발표했다. 그들은 백이숙제가  주나라에 와서 무왕을 설득하려다 실패한후 서쪽으로 가서  주나라땅이 아닌 당시 융적이라 불리던 이들의 땅인 룡서 수양산에서 주나라 음식을 먹지 않고 굶어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지에 사당도 있다. 그렇다면 중국에 여러개 남아있는 백이숙제묘는 전부 가묘인 것이다. 특히 정황상 백이숙제의 고죽국은 당시에 영토가 려산일대에서 산서성 최서남단 일부까지 걸쳐 있음을 알수 있다.

그렇다면 수나라 사신 배구가 고구려가 본래 고죽국이라고 한것이 이해될수 있다. 고죽국은 치우의 구려족의 땅위에 세워진 나라였으니 그렇게 말한 것이다.

 

치우가 패해서 려산일대가 헌원에게 넘어간 것이 아니라 후에 제곡고신이라는 왕이 치우의 후손을 쳐서 동쪽으로 밀어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때 제곡고신이 려산일대를 점령한 것이다. 그래서 현재y염색체 유전자 조사를 통해서  제곡고신의 직계후손인 주나라왕실의 후손과 주몽(그는 자신의 조상이 제곡고신이라고 했으며 고죽국이 고구려의 전신이므로 고죽국의 왕실은 고구려의 선대왕실인셈이다)의 후손인 횡성고씨, 전주이씨의 y염색체는 모두 일치함이 밝혀졌다. 반면 은나라 왕실의 경우 전설에 고신의 아내가 다른 씨앗을 먹고 잉태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고신의 자손이 아님을 뜻하는데 실제로 은나라왕실후손의 y염색체는 제곡고신의후손과 달랐다. (칭기즈칸의 첫째아들역시 다른사람의 아들이나 칭기즈칸이 자신의 아들로 선포했다. 이와 같은 맥락이다.)

 

馬融云首陽山在河東蒲阪華山之北河曲之中。高誘則云在雒陽東北。阮籍詠懷詩亦以為然。今此二山並有夷齊祠耳。而曹大家注幽通賦云隴西首陽縣是也。今隴西亦有首陽山。許慎又云首陽山在遼西。諸說不同,致有疑惑,而伯夷歌云『登彼西山』,則當隴西者近為是也。」

전한서

수양산은 하동포판화산의 북쪽에 있다. 하곡의중간에 있다.  

 

河東郡,秦置。莽曰兆陽。有根倉、溼倉。戶二十三萬六千八百九十六,口九十六萬二千九百一十二。縣二十四:安邑,巫咸山在南,鹽池在西南。魏絳自魏徙此,至惠王徙大梁。有鐵官、鹽官。莽曰河東。大陽,吳山在西,上有吳城,周武王封太伯後於此,是為虞公,為晉所滅。有天子廟。莽曰勤田。〔一〕猗氏,,〔二〕蒲反,有堯山、首山祠。雷首山在南。故曰蒲,秦更名。莽曰蒲城。

전한서

 하동군에는 현이 24개 있는데 안읍현은 무함산이 남쪽에 있다.  해현이 있고 포판현이 있는데 요산과  수산사와 뢰수산이 있고 왕망이 포성이라고 했다.

 

 

화산의 지명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대지명을 찾는 실마리가 된다. 포성은 청나라고지도에는 위에 표기된 위치라고 하지만 실제 포성은 화산근처로 더 남쪽으로 내려와야 한다. 수양산 역시 청나라고지도는  황하를 건너서 있지만 실제 고죽국의 수양산은 포판현바로 위로 황하를 건너지 않는다.  고평에는 고도즉 고씨의 도읍이라는 지명도 있는데 이것이 왜 생겨났는지는 쉽게 알수 있다.바로 구려와 고죽국에서 유래한 지명인 것이다.

 

해현이라는 지명이 등장함으로써 왜 부여왕족이 해씨인지 이유를 알수 있다.제곡고신은 자신의 후손을 해현에 봉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해씨로 성을 삼은 것이고 그들이 바로 고죽국인 것이다. 후에 고죽국이 제나라에 멸망당한후 황하를 건너갔을 것이고 최초의 왕인 해부루의 이름을 따서 부루즉 부여라고 이름지은 것이다. 주몽은 부여왕자로서 새로이 나라를 건국하면서 그 윗대의 조상인 제곡고신의 성을 따서 고구려라고 한 것이다.

 

단군왕검의 직계후손으로 추정되는 개성왕씨의 Y염색체조사에서 주몽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이 증명되었다. 이는 왕검의 아들이 해부루라는 기존의 기록과 배치되는 것으로 아들이 아니라 사위였을 가능성 혹은 완전히 아무런 관련이 없는 별개의 부족일 가능성을 제시한다. (고려 개성왕씨는 산서성에 있는 옛 낙랑왕씨들과 Y염색체가 일치했다. 이는 낙랑왕씨가 바로 왕검에게서 유래된 것이라는 내 가설이 맞다는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신라 어느왕족도 왕검과 연관짓지 않고 고구려는 제곡고신, 신라는 소호금천이 조상이라고 했다. 그러나 고려시대에는 갑자기 단군왕검이 등장하고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했다.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 지배층의 자신의 조상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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