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오강호

고려때 대방군은 남원이라 불렀으며 텐진의 서남쪽이다.

작성일 작성자 만주몽골조선땅임

《삼국지》에는,

“건안(建安) 연간에 공손도(公孫度)가 낙랑군의 둔유(屯有)ㆍ유염(有鹽) 이남 황지(荒地)를 나누어 대방군으로 삼으니, 왜(倭)ㆍ한(韓) 모든 나라가 다 소속되었다.”

 

황무지라고 하였기 때문에 산서성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한이 소속되었다고 했는데 한은 기록에 역수에 있다. 즉 텐진의 서쪽에 있다.

 

역수를 건너면 한의 유주이며 역수를 건너면 고려땅 밖이다.

결국 대방군은 역수의 남쪽에 있다. 낙랑군역시 텐진의 서쪽에서 서남쪽이니 그 남쪽이 대방군이된다.

 

 《진서》 지리지에 의하면, 대방군은 공손연(公孫淵)이 설치하였고 위 무제(魏武帝)가 패권을 차지한 뒤에 이어 군치(郡治)인 대방현(帶方縣)을 두었으며, 진 무제(晉武帝) 함령(咸寧) 2년에 평주를 설치하니, 대방군이 소속되었는데, 소속된 7현(縣)은 〈대방군을 포함해〉 열구(列口)ㆍ남신(南新)ㆍ장잠(長岑)ㆍ제해(提奚)ㆍ함자(含資)ㆍ해명(海冥)이고, 호수는 4천 9백이었다 하였는데

 

 

평주의 위치는 구만리장성이 끝나는 텐진에서 한참서쪽이다. 평주에 대방군이 소속되려면 산서성에 대방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텐진의 서남쪽이 대방이라고 보는것이 제일 합당하겠다. 

 

《위지(魏志)》에,

대방군에서 왜(倭)에 이르자면, 해안을 따라 한국(韓國)을 경유한다

 

 진 효무(晋孝武) 태원(太元) 10년에 연주(燕主) 모용보(慕容寶)가 고구려왕 안(安)을 책봉하여 대방왕(帶方王)으로 삼고, 북제(北齊) 무평(武平) 연간에 백제왕 창(昌)을 대방군공(帶方郡公)으로 삼았다

 

대방군은 고구려 백제가 번갈아 차지하다가 신라에 넘어간후 고려가 차지했다.

 

 《삼국유사》에는,
“남대방(南帶方)은 조위(曹魏) 때 설치하였는데, 지금의 남원부(南原府)이다.” 하고, 《고려사》 지리지에도,
“남원부는, 후한(後漢) 건안(建安) 연간에는 대방군이라 하고, 조위 때에는 남대방군이라 했으며, 당 고종(唐高宗)이 유인궤에게 검교대방주자사를 시켰다

 

 삼국유사》에도,
“북대방(北帶方) 소재지는 죽군성이다

 

죽군성은 원래 백제땅이었다. 결국 고려가 차지했다는 것이다. 고려는 요대현이 있는 산서성남부와 대방군이 있는 하북성중남부와 산서성동부까지 다 차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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