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성기 감숙과 섬서 산서북부지역은 모두 조선땅이었다.

댓글수0 다음블로그 이동

조선전기영토

조선전성기 감숙과 섬서 산서북부지역은 모두 조선땅이었다.

소오강호
댓글수0

 

대명일통지에 실린 고지도

북적이란 섬서서부와 감숙과 합밀사이의 부족이다.

 

함길도 도체찰사(咸吉道都體察使) 신숙주(申叔舟)가 치계(馳啓)하기를,
“신이 회령(會寧)에 이르러 올량합(兀良哈)·알타리(斡朶里) 등의 여러 추장(酋長)들을 불러서 성상의 뜻을 가지고 타이르고 또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지금 명(命)을 받들고 와서 너희들의 정원(情願)을 들어 주고, 장차 올적합(兀狄哈)을 불러서 그들로 하여금 너희들과 더불어 화해(和解)하게 할 터인데,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니, 여러 추장(酋長)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모두 전하의 우리들을 위한 지극하신 계책(計策)이시니, 감히 명하신 대로 하지 않겠습니까?’ 하였습니다

우리 성상(聖上)께서 신무(神武)하시어 화난(禍難)을 평정(平定)하고서 동하(東夏)를 무육(撫育)하시고 사방(四方)을 정수(靖綏)하여서 이속(異俗)의 종족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나라 사람과 같이 하며, 구악(舊惡)을 모조리 떨쳐 버리고 멀거나 가까운 곳이 없이 친자식같이 보호한다는 말을 또한 너희들도 들어서 알 것이다. 지금 듣건대, 야당기(也堂其) 등의 처자(妻子)가 올량합(兀良哈)에게 죽거나 사로잡혔다 하니, 〈성상께는〉 그들이 죽거나 유리(流離)한 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나에게 명하여 올량합(兀良哈)을 타일러서 그들의 사로잡은 자를 돌려주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각각 전의 원한을 떨쳐 버리고 화해(和解)하도록 하셨다. 너희들도 와서 명(命)을 듣는 것이 가하다. 너희들이 비록 군사를 일으켜 보복하기를 꾀하고자 하지만, 너희가 지금 보건대, 이러한 무리들이 모두 우리의 근경(近境)에 살면서 우리 나라에 출입하고 충성하고 순종하기를 우리 나라 사람과 같이 하는데, 변장(邊將)이 어찌 모른 체하고 방관(傍觀)하겠는가?

 제종 야인(諸種野人)을 돌보기를 친자식같이 하는 때에 만약 이들을 보호하여 평안하게 하지 않는다면 어찌 천심(天心)에 합하겠는가? 네가 가서 올적합(兀狄哈)·알타리(斡朶里)에게 타일러 사로잡은 자를 돌려 주게 하고, 왕화(王化)를 막지 말게 하라. 올적합(兀狄哈)도 또한 길이 막힐까 두려워하지 말고 자주자주 내조(來朝)하게 하라. 각각 전의 원한을 떨쳐 버리고서 생업(生業)을 평안히 하게 하라.」 하셨다. 내가 지금 명(命)을 받들고 와서 변방(邊方)을 순행(巡行)하며 초유(招諭)하여, 올량합(兀良哈)·알타리(斡朶里) 등이 이미 모두 명을 듣고 감히 거역하지 못하고 사로잡은 자를 쇄출(刷出)하고 더불어 원수를 풀려고 원하고 있다 오로지 우리 승천 체도(承天體道) 열문 영무(烈文英武) 왕전하(王殿下)께서 신무(神武)하시어 화난(禍難)을 평정하고서 동토(東土)를 무육(撫育)하시고, 정성을 다하여 만물(萬物)을 대우하는 데 일시동인(一視同仁)하시니, 위엄(威嚴)과 은혜(恩惠)가 먼 곳에까지 미치어 동이(東夷)·북적(北狄)이 앞을 다투어 충성을 바쳐 오는 것이 마치 불나비가 촛불에 날아드는 것과 같다. 이만주(李滿住)·동창(童倉) 등이 전에 나라의 적(賊)이 되었다가, 지금 모두 투화(投化)하고 아들을 보내어 입시(入侍)하니, 전하께서 또한 옛 혐의(嫌疑)를 기억하지 아니하시고 이들을 대접하기를 한결같이 하시는데, 하물며 너희들에게 무슨 다른 것이 있겠는가? 올량합(兀良哈)이 지금 이미 명(命)을 듣고 감히 누가 어떻게 하겠는가

 그 글에 이르기를, ‘오로지 우리 승천 체도(承天體道) 열문 영무(烈文英武) 왕전하(王殿下)께서 병부(兵符)를 잡고 천운(天運)에 타고서 화난(禍難)을 평정(平定)하여 동하(東夏)를 무육(撫育)하시고 도이(島夷)·산융(山戎)을 나라 사람과 한가지로 돌보시니, 은혜와 위엄이 아울러 미쳐서 멀거나 가까운 곳에서 다투어 오기를 아들이 어미 품속에 뛰어드는 것과 같이 한다. 근자에 올량합(兀良哈)·알타리(斡朶里) 등이 올미거 올적합(兀未車兀狄哈)의 옛 원수를 갚고자 꾀하여, 그들의 불비(不備)한 틈을 타서 처자(妻子)들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우리 전하께서 그들이 죽거나 유리(流離)한 것을 불쌍히 여겨서, 신에게 명하여 변방(邊方)에 가서 안집(安輯)하게 하고, 피차(彼此)로 하여금 각각 전의 원한을 떨쳐 버리고 길이 생업(生業)을 평안히 하게 하였고, 또 너희들의 조현(朝見)하는 길을 통(通)하게 하였다. 내가 와서 선유(宣諭)하니, 올량합(兀良哈)·알타리(斡朶里) 등이 모조리 다 이마를 조아리고 명(命)을 듣고서, 너희와 더불어 원수를 풀고 다시는 서로 원수가 되지 않기를 원하였다.또 낭발아한(浪孛兒罕)이 말하기를, ‘근래에 듣건대, 올적합(兀狄哈) 2만여 군사가 와서 복수하고자 한다 합니다.’ 하므로, 신은 또 저들에게 화해(和解)를 청하는 일이 잘못된 계책일는지 어찌 알겠는가고 염려하여 지금 연습(鍊習) 사열(査閱)한 것에 의거하여 6진군(六鎭軍)의 부서(部署)를 짜고 정(精)하게 훈련하여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보건대, 올적합(兀狄哈)·알타리(斡朶里)·여진(女眞) 등이 6진(六鎭)의 근경(近境)을 빙 둘러싸고 있는데, 특별히 성상의 은혜를 받들어 오직 변장(邊將)의 부리는 자들은 우리 나라 사람과 다름이 없습니다. 신이 지금 오니, 곳곳에서 남녀노소(男女老少) 할 것 없이 모두 달려와서 다투어 알현(謁見)하는데, 수백 명씩 떼를 이룹니다. 올적합(兀狄哈) 등은 땅이 멀어서 은혜와 위엄이 미치기는 하지만 이러한 무리와 같지는 않습니다. 지금 초무(招撫)할 때를 당하여 마땅히 그 마음을 감동시켜야 하기 때문에, 신은 소재(所在)한 변장(邊將)으로 하여금 사로잡힌 올적합(兀狄哈)의 처자(妻子)를 불러서 후하게 음식을 먹이게 하고 양식을 적당히 주어서 상상의 은혜를 유시(諭示)하고, 또 성상께서 제종 야인(諸種野人)을 멀거나 가까움에 따라 후(厚)하거나 박(薄)함이 없이 대접한다는 뜻을 말하고, 각각 돌아가서 그들의 남편에게 〈성상이〉 아버지와 같더라고 말하게 하여 저들의 마음으로 하여금 감동하게 하였습니다.”
국역조선왕조실록 > 세조 5년 기묘(1459,천순 3) > 3월10일 (임진) >

 

북적을 항복시키려면 그 사이에 있는 올량합 올적합 건주등의 여진족을 모두 평정해야 한다. 태조때부터 세조때까지 일관되게 실록은 그들을 모두 평정했고 우리군역에 종사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국초(國初)부터 남북의 이적(夷狄)들이 찾아와 복종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므로 우리 조종께서 우리 백성같이 보아, 그 중에 백성이 되기를 원하는 자를 북적(北狄)은 5진(鎭)의 성 밑에 살게 하고, 너희들은 3포에 나누어 있게 하여 우리 땅에서 생활하여 지금까지 왔다. 북쪽 변경의 야인(野人)들은 열성(列聖)들이 어루만져 편안하게 하여 주는 은혜를 감사히 여기고 받들어 군문(軍門)에 종사하기를 우리 백성들과 같이 하고 있는데, 너희들은 인구가 날로 번성하여지면서

국역조선왕조실록 > 연산군 6년 경신(1500,홍치 13) > 3월8일 (임술) >

북적이 세조때 드디어 항복하는데 연산군때까지도 항복해서 군역에 종사했다.

 

 

근자에 서융(西戎)들이 까닭없이 변경을 침범하여 사람과 가축을 죽이고 노략함이 한 번에서 두 번, 두 번에서 세 번에 장차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니, 대신의 정의(廷議)에서 모두 쳐야 한다 하고, 무인들은 손에 침을 뱉으면서 추호(酋豪)의 머리를 베어다가 궐하에 달고자 하니, 이야말로 천 년 만의 한 기회요, 이 적들은 백 년의 쇠운을 만난 것입니다., 기해년에 성종께서 윤필상을 명하여 가서 정벌케 하였으나 겨우 노약자를 얻어 이를 수급(首級)이라 하였으며, 신해년에는 허종(許琮)을 명하여 북적(北狄)을 정벌케 하였으나 또한 전공은 없고 사졸과 군마의 사망이 도로에 잇대었으므로 당시에 목격한 자는 지금도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이것이 모두 그러한 명험(明驗)입니다. 그런데 이제 일시의 분노를 참지 못하여 대중을 출동시켜 천 리를 건너가서 작은 오랑캐를 치려 하시니, 비록 군사를 온전히 하여 돌아온다 할지라도 백성을 괴롭힘이 이미 심하고, 만일 차질이 있으면 국위를 손상시킨 손실이 매우 클 터이니, 이것이 칠 수 없는 것의 둘째입니다.
 국역조선왕조실록 > 연산군 5년 기미(1499,홍치 12) > 5월14일 (계유) >

 

북적의 서쪽이 서융인데 서융의 침공을 받으려면 북적은 당연히 조선의 영토에 속해있어야 한다. 서융이 날아서 조선을 침공할수는 없지 않는가?

 

 

 

 

상참(常參)을 받고, 조계(朝啓)를 듣고, 조강에 나아갔다. 시강관 허굉(許硡)이, 석진(石晉)이 거란(契丹)을 섬기다가 나라를 망친 일을 논하고 이어 아뢰기를,
“우리 나라는 북적(北狄)과 남이(南夷)를 모두 화친하였습니다

국역조선왕조실록 > 중종 9년 갑술(1514,정덕 9) > 3월9일 (임신) >

 

 

중종때는 북적과 화친했다 즉 그들이 영토에서 벗어났다.. 화려한 날은 조금씩 지나갔다는 ..... 

 

명나라는 영락제때 가장 넓었는데 그때부터 땅을 뺏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천리를 후퇴했는데 다시 치고 올라간적이 있는데 바로 만력제때이다. 만력제는 거의 명나라 말기의 황제이다. 만력제가 조선과 함께 왜군과 싸우느라 국고를 소진하고 후대왕들이 어리석은 정치를 하느라 완전히 나라가 망했다.  명의 경계인 장안과 중조산 신향일대의 옛 장성을 사이에 두고 조선과의 사이에 여진족이 거주했는데 대부분 조선의 통제를 받았다. 물론 조선중기이후로는 그들이 따로 나라를 세워 결국 조선이 거꾸로 복속되고 만다.

맨위로

http://blog.daum.net/manjumongol/1709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