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오강호

진짜 진시황릉으로 추정되는 감숙성 천수시 례현의 대보자산

작성일 작성자 소오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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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숙성 례현의 대보자산에 진공묘가 발굴되었는데 진시황의 시조릉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또한 이곳이 초기 진나라의 도읍지였다고 한다.

 

 

진공묘는 진시황묘는 아닐것이다. 크기가 수십m에 불과하니까 위의 사진은 진공묘이다.

진공묘에서 출토된 청동기 유물

 

그런데 대보자산근처에 위와 같은 사진이 있었다.

계단식지형이 인위적인 것임을 암시하는데 현재의 진시황릉보다는 커보인다.

지금은 제갈량의 무후사가 있다고 한다.

 

제갈량은 촉군 10만을 이끌고 기산에 진을 쳐서 당시 장안을 위협했다고 한다. 그럼 대보자산에서 서안시까지 수백km인데 위협이 가능한가? 사마중달이 코웃음치겠다.

 

사마중달과 최후의 일전을 벌인 오장원역시 학계가 주장하는 보계일대가 아니라 기산근처일 것이다.

 

진시황릉은 감천궁과 연결되는 구조인데 마침 감천진이란 지명이 천수시근처에 있었다. 그근처도 후보중에 하나이고 진시황의 조상무덤이 있는 대보자산일대도 또한 후보중에 하나이다.

최대 왕릉은 보계시에서 발굴되었는데 약 400m를 넘지는 못한다. 일본왕릉도 그정도 크기되는 것은 몇개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70만명의 인부를 동원한 대역사라면 규모가 거의km급은 넘어야 하지 않을까?

조선왕조실록에 태조가 선조들의 무덤을 왕릉규격에 맞게 수리하도록 했는데 만명가량이 1년간 일했다고 한다. 규모가 200m가 족히 넘되는 거대한 무덤을 몇개나 지은 것이다.

 

그럼 몇년동 수십만 인부를 동원했는데 이집트 피라미드에 버금가는 대역사를 했지 않을까? 거기는 돌로 쌓았는데 아무렴 흙으로 했다면 높이 100m 정도 폭은 km를 넘는 초대형 무덤을 만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항우가 파괴했고 도굴했다고 했으니 분명히 무덤은 온전한 모습이 아니어야 한다.

지금 시황제릉은 진시황의 무덤이 아니라 헌원황제의 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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