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조선개국에 반대했던 정몽주를 추모하고 개국공신 정도전을 배신자라는 오명을 씌워 백성들에게 정몽주의 충성심을 본받도록 교육했다. 이는 통치자입장에서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은나라에 충성하여 주나라의 곡식을 거부하고 굶어죽은 백이숙제와 고죽국의 전설은 우리민족의 통치자에게 상당히 감명깊은 일이었을 것이다.(은나라와 고죽국은 모두 우리민족이 세운 나라이다. 이는 학계에서 증명되었다)

 

고죽국은 1세기경의 반고의 기록과 한나라때의 우공의 기록에 감숙성 롱서에 있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이후의 기록은 황하동쪽과 난하서쪽두군데 고죽국이 있는데 둘중 하나가 진짜이다라는 것이다.

 

 일통지(一統志)》에 ‘영평부(永平府)에 고죽국이 있고 거기에 3군(君)의 무덤이 있다.’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동(河東)의 수양산에 또 이제묘(夷齊墓)가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동사강목중에서

 

고주사(告奏使) 최치원(崔致遠)이 표(表)를 짓기를,

“우리 나라는 비록 울률(鬱壘)의 반도(蟠桃)와 경계를 접하였으나 위엄으로 다스리는 것을 숭상하지 않았고, 또

이제(夷齊)의 고죽국(孤竹國)과 강토를 연하여 본래 염퇴(廉退 청렴하고 겸손함)한 자질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정사년 효공왕(孝恭王) 원년(당(唐) 소종(昭宗) 건녕(乾寧) 4, 897)

 

신라의 영토가 이상하게 고죽국과 접하고 있다고 한다. 고대부터 고죽국이 황하동쪽혹은 난하 하류에 있다고 알고 있으니 둘중 한곳에 신라땅이 겹쳐있다는 것이다.

고려시대에 이첨이 말하길 고죽국은 고려의 해주라고 했다. 즉 황하동쪽이든 난하 하류이든 고려땅이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대명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조선성(朝鮮城)은 영평부(永平府)의 경내에 있는데, 기자가 수봉(受封)한 지역이라고 전해 온다

 

해주목(海州牧세종 지리지 / 황해도 / 해주목

 주의 동북쪽에 산이 있으니, 이름을 수양이라 하고, 동남쪽 바다 가운데 30리쯤 되는 곳에 두 작은 섬이 있으니, 이름을 형제도(兄弟島)라 한다. 그 하나는 높이 12보(步)이요, 또 하나는 높이 8보이며, 둘레가 모두 1백 20보이고, 서로의 거리가 2백 70보이다, 민간에서 이르기를, “백이(伯夷)·숙제(叔齊)가 이곳에서 죽었으므로, 주의 이름을 ‘고죽국(孤竹國)’이라 하였다.” 한다

 

영평부는 난하 하류를 일컫는데 조선성이 그곳에 있다고 한다. 게다가 조선의 해주는  고죽국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민족이 세운 고죽국은 그위치가 처음에는 감숙성 롱서에 있다가 고구려백제 신라시대에는 황하동쪽혹은 난하 하류에 있다가 고려시대와조선시대에는 난하하류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라의 땅이 그 고죽국바로옆이고 고려와 조선은 그 땅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결론이다.

 

 당서(唐書)》에서 배구(裵矩)가 말하기를, “고려는 본래 고죽국(孤竹國)인데, 주 나라가 기자를 봉하여 조선이 되었다.”고 하였다

   수서(隋書)》 배구전(裵矩傳)에 ‘고려는 본래 고죽국(孤竹國)이다.’ 하였고, 상고하건대 고죽국이 뒤에 요서(遼西)의 땅에 이르렀으니, 그 강역(疆域)이 멀리 뻗어 지금의 요심(遼瀋) 지대가 된다. 고구려가 요동(遼東)을 차지하였으니 배구의 말도 믿을 만하다. 이첨(李詹)은 지금의 해주(海州)라 하고, 본래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나왔다  동사강목

 

후대에 해석하길 고죽국이 난하서쪽에 있었는데 차츰 영토가 커져서 요하동쪽까지 차지했다. 그런데 이곳이 해주이다라고 해석한듯하다.즉 아무리 적게 잡아도 고려와 조선은  요심지대 즉 요양과 심양지대는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전해오는 속담에도 백이ㆍ숙제가 수양산(首陽山)으로부터 평양(平壤)에 찾아와 기자를 방문하곤 하였다는 말이 있다

평양은 고조선의 수도로 대릉하의 조양시이다. 이곳이 왕검성이며 고구려의 수도였다. 

 조선은 평양에 단군묘와 동명왕묘를 합사하여 둘이 마주보게 하였다. 즉 조선은 고조선의 시조인 단군과 고구려백제의 시조인 동명왕을 왕조의 수호신으로 생각하였거나 혹은 이를 계승한다고 생각한듯하다.  고죽국의 영역변천은 우리민족의 영역을 알려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것만 보아도 신라 고려 조선이 소국이 아니었음을 알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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