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오강호

고구려군은 속국군대를 포함 40만이 넘는다

작성일 작성자 만주몽골조선땅임

 

乾封元年,又為遼東道行軍大總管,兼安撫大使。高麗有眾十五萬,屯于遼水,又引靺鞨數萬據南蘇城

구당서

건봉원년 하력을 요동도행군대총관으로 삼아 안무대사를 겸하게 했다. 고구려는 요수에 15만 병사를 진을 치게 했으며 또 말갈수만명을 남소성에 진치게 했다

 

건봉원년은 연남생이 고구려를 배신하고 당에 붙어 당나라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를 향해 진격하던 해였다. 이당시 고구려군은 요수에 15만이나 배치시켰다.그런데 어떤 국사학계도 이사실을 가르치는 자가 없다. 고구려군사가 많으면 자기들 밥줄에 지장이 있나 게다가 남소성에 말갈군수만을 배치시켰다고한다.

 

남건이 군사 5만으로 부여성을 구원하자, 적(勣)이 설하수에서 그들을 격파하였는데 머리 5천 급을 베었고 인구 3만을 사로잡으며, 나아가 대행성(大行城)  을 함락시켰다.

무진년 신라 문무왕 8년, 고구려 왕 장 27년 ○ 이해에 고구려가 망하였다(당 고종 총장(總章) 원년, 668)

 

고구려군이 수십만임을 잘 알수있다. 부여성구원에 5만이나 썻다

 

黑水靺鞨居肅慎地,東瀕海,南接高麗,亦附於高麗。嘗以兵十五萬眾助高麗拒唐太宗,敗于安市。

금사

흑수말갈은 숙신의 땅에 사는데 동쪽에 바다가 있고 남쪽은 고구려이다. 고구려에 복속되었고 15만 병사를 내어 고구려가 당태종이세민을 칠때 도왔다. 또한 안시에서 이세민을 패배시켰다.

 

고구려본국의 병사조차도 수십만인데 말갈군만 15만이란다. 그런데도 고구려군을 겨우 20만정도로 추정한 사람들이 아직도 있으니

 

 

國內及新城步騎四萬來援遼東

구당서

국내와 신성에서 보기병4만명이 요동성을 돕기 위해 왔다.

 

 국내성과 신성에서 출동한 병사만 4만이다. 신성이 전략거점으로 수만명의 군대가 있음을 알수있다.

 

을미일(乙未日)에 황제가 백암성에 진군하고 병신일(丙申日)에 오골성주(烏骨城主) 가 군사 1만여 명을 보내어 백암성을 성원하니

을사년 신라 선덕여주 14년, 고구려 왕장 4년, 백제 왕 의자 5년(당 태종 정관 19, 645)

 

오골성에도 수비군사가 몇만이다.

 

 

황제가 안시성(安市城)에 이르러 성을 공격하니, 정사일(丁巳日)에 고구려 북부의 누살(耨薩) 고연수와 남부의 누살 고혜진이 고구려와 말갈(靺鞨)군사 15만을 거느리고 안시성을 구원하였다

을사년 신라 선덕여주 14년, 고구려 왕장 4년, 백제 왕 의자 5년(당 태종 정관 19, 645)

 

고구려가 20만의 군대를 가졋으면  이런기록은 어떻게 나오냐

 

지금 건안성(建安城)과 신성(新城)의 오랑캐가 오히려 10만이 되는데, 만약 오골성으로 향한다면 다 우리의 뒤를 밟을 것이매 안시성을 격파하고 건안성을 취한 뒤에 거침없이 몰아나가는 것만 같지 못하니 이것이 만전의 계책입니다

을사년 신라 선덕여주 14년, 고구려 왕장 4년, 백제 왕 의자 5년(당 태종 정관 19, 645)

 

매국노 국사학계여 잘보아라 지금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하려 하자 요수에만 15만명을 배치시켰고 말갈군은 15만이나 동원했다.

이세민과 격돌한 고구려군은 15만이고 요동성 안시성이 최소 2-3만씩 오골성에 최소2만 개모성 백암성 등지에 최소 수천씩 게다가 신성과 건안성 병력이 10만이다.  그럼 이병력뿐인가 고구려수군 3만이상은 !!!!

평양성 신라 백제 국경지역의 병력까지 합치면 도대체 몇명이겠느냐

산수조차 못하는 국사학계가 교과서를 쓰고 있으니 어여 물러나라

고려도경에는 고구려가 병사가 30만이라고 써있다.

어림잡아도 당나라와 싸울때 고구려군이 40만이 넘는다. 최치원이 고구려 백제가 강할때 병력이 100만이라고 하자 매국노들은 코웃음 쳤다.  산수도 못하는 인간들이 무슨 !!!!

 

북조의 기록에 백제는 지방군만 15만이다. 중앙군합치면 30만은 족히 넘는다. 돌궐의 전성기에 병력이 무려 50만이란다. 흉노는 40만이다. 고구려는 돌궐과 백제 신라와 동시에 싸웠고 돌궐에는 이기고 백제에는 졋다. 고구려가 이당시 동원한 병력이 겨우 20만일까????????

산수좀 잘해봐라 매국노 국사학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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