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오강호

만일 위화도 회군이 없었다면

작성일 작성자 이성근 루제로

명나라기록을 읽어보던중 태조이성계의 위화도회군에 관한 재미난 기록을 발견했다.

고려의 장수가 명에 귀순했는데 그가 말하길 최영이 이성계에게 명령을 내려 명을 치라고 했다. 그런데 이성계는 공격을 주저했고 이에 화가난 고려왕이 이성계의 아들을 죽였고 소식을 들은 이성계는 대노하여 군을 되돌려 고려왕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원나라는 최후의 결전을 위해 20만이 넘는 대군을 준비시켰다. 고려의 이성계가 10만대군을 이끌고 합류하면 곧장 명나라의 북벌군을 격파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고려의 지원군은 오지 않았고 단독으로 명나라군에 맞선 원나라군은 대패했다. 사실상 중원의 패자가 명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만일 고려왕이 이성계의 아들을 죽이지 않고 직접 최영을 보내 이성계를 설득했다면 어찌되었을까

 

태조이성계는 타타르인자 여진인으로 칭기즈칸의 후손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타타르인들은 칭기즈칸의 몽골부와 오래도록 싸웠고 칭기즈칸은 타타르를 거의 멸족지경까지 몰았다. 또한 여진족의 금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의 패자가 되었다. 그러니 타타르인과 여진인을 기반으로 한 태조는 원에 대해 배척할 수밖에 없었다. 타타르와 오이라트가 후에 몽골부를 장악하여 태조와 그 후손에게 동맹을 제의했으나 거절한 것도 어찌보면 태조이래로 조선은 칭기즈칸 직계는 배척한다라는 유지가 있었던 모양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태조의 고향사람즉 합란여진부족과 함흥(현재의 난하와 요하일대)부사람들은 고향사람이니 우대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수많은 여진과 타타르부족병사들은 태조의 호위무사가 되고 선봉을 맡았다.

 

그러나 만일 태조가 병사들을 잘 다독여서 대명전선에 투입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주원장에 대핸 조선전기학자 우재의 글에는 주원장은 조선이 조공하기전까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두려워했다고 한다. 또한 태조는 나중에 명나라를 침공하기위해 수십만 병력을 지금의 요동반도와 요하일대에 집결시킨 상태였다. 명나라와 전쟁해서 지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 정도전에게 침공을 지시하지 않았겠는가!

 

고려말 홍건적을 토벌할때 고려는 20만대군으로 홍건적 수십만을 완전히 포위해서 전멸시켰다. 그들은 당시의 압록인 난하동쪽땅을 밟지도 못하고 태조의 방어군에 막혔고 고려의 하북을 침공한 홍건적역시 고려군에 전멸당했다.  고려군은 태조이성계가 북방군대를 이끌고 합류하면서 그 전투력이 배가되었으며 특히 북방군대는 말위에서 자유자재로 편전을 쏘는 무시무시한 군대였다.  금나라기병수십명에게 2천명의 송나라보병이 짓밟힌적도 있으니 태조의 북방기병수만은 아마도 명나라군대를 유린했을 것이다.게다가 원나라의 병력역시 수십만이니 주원장은 고려원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이길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고려원연합군은 지금의 베이징일대에서 합류한후 명나라북벌군과 대규모 회전을 벌인후 남하했을 것이다. 

하북성 보정시 석가장 한단등 중요도시는 한달이내로 고려원연합군에게 수복될 것이고 황하일대에서 아마도 주원장의 주력과 또한번 교전했을 것이다. 일단 승기를 타면 고려조정은 더많은 대군을 보냈을 것이다. 이왕 이기려면 확실히 이겨야 하니 말이다. 고려원연합군 약40만가량이 주원장의 병력40만가량과 황하북부에서 대규모 전투를 벌였을 것이고 주원장은 100% 패배할 것이다.

한달뒤 고려원연합군은  개봉에 입성하고 주원장은 사절을 보내 화친을 구걸할 것이다.

 

주원장의 행태를 분석해보면 필시 고려에 먼저 영토할양을 제의하고 원과의 동맹을 끊으려 했을 것이다. 고려조정은 원의 세력이 더 커지는 것을 원치 않으니 대략 양자강북쪽에서 전진을 멈추고 화친에 응할 것이다. 원역시 고려없이는 남진이 불가능하니 결국 화친을 받아들일 것이다.

 

대략위와같이 국경조약이 체결되었을 것이다. 

 

원나라 마지막황제인 기씨황후의 아들은 기록을 보건데  저영토는 유지할수 있는 인물로 보인다. 

다만 고려는 두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로 최영이 이성계를 제거하기위해 군대를 일으켰을 수 있다. 내란이 발생했을 것이고 북방의 군대를 앞세운 이성계가 승리했을 것이다. 최영은 전쟁일등공신인 이성계의 세력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둘째로 최영이 늙어서 은퇴한후 이성계가 서서히 권력을 장악하여 평화적으로 정권교체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성계는 고려에 투항할때부터 고려황제가 될 야심이 있었던 사람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황제가 되기위해 준비를 했기에 최영이 쉽게 몰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위화도회군을 하지 않고 최영이 이성계에 대한 암살을 하지 않았다면 위와같이 역사가 전개되었을 것이다.

결국 이성계는 고려의 황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 우선 임진왜란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왜는 임진왜란전 조선에 대한 정찰에서 조선군이 40만이지만 오랜 평화에 훈련도 덜되고 나태해졌다고 파악했기에 자신들의 30만군대를 믿고 침략한 것이다. 그러나 위와같이 유지된다면 조선군은 70만이 넘는다 게다가 조선은 명나라의 북벌도 저지하고 원나라의 견제도 해야하기에 언제나 국방력을 튼튼히하려고 했을 것이다. 왜는 조선이 아닌 명을 침략했을 것이고 그 경로는 오키나와를 거쳐 대만을 통해 복건을 공격했을 것이다.

 

조선은 왜를 오히려 지원했을 것이고 그 결과는 명이 남부영토를 떼어주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을 것이다.

 

이런 상태로 서양열강들이 아시아에 진출하게 되었을 것이다. 혹은 원대신 난하상류의 여진족이 청을 세우고 원의 영토를 차지했을 수도 있다. 명과 왜와 원을 상대로 국방력을 강화했을 조선이니 청나라에게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청이 명을 먹으려 하면 조선이 견제했을 것이다.실제로 금나라의 남송정벌때 고려가 남송을 도와 군대를 파병했다. 즉 제아무리 동족이라도 한쪽이 커져서 자신을 위협하는 상황은 받아들일수 없는 것이다.

아편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과 일본은 동맹국으로 남았을 것이다.

일본은 개화후에 명의 영토를 계속 노렸을 것이고  조선은 원과 명을 견제하기 위해 개화에 적극적으로 나섰을 것이다.

조선의 왕비가 왜놈에게 죽는일도 없었을 것이고 조선사람이 왜놈에게 끌려가 강제징용당하지도 위안부로 끌려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조선의 황실이 유지되었을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가난하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적어도 존경받는 가문으로 남았을 것이다. 입헌군주제이든 대통령제이든 조선은 남북으로 갈라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만주의 석유자원과 4억이 넘는 인구를 바탕으로 미국에 버금가는 강대국으로 계속 남았을 것이다. 역사를 조작하는 놈들이 교수가 되어 어린 학생들에게 우리 조상은 나약하고 침략만 받았고 땅도 작다라고 허위로  가르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소설이지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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