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고구려의 옛땅을 수복하였다.

댓글수0 다음블로그 이동

조선전기영토

조선은 고구려의 옛땅을 수복하였다.

소오강호
댓글수0

신이 삼가 살펴보건대, 고려는 진후(晉侯)가 나라를 세운 때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8백여 년이 되었는데, 비로소 삼성(三姓)을 바꾸었다. 당나라 이전에는 소위 고려(高麗 고구려를 가리킴)라고 하는 나라는 삼국 가운데 한나라에 지나지 않았으며, 오대(五代) 이후에는 삼한과 백제를 병합하여 하나로 통일하였으나, 승국(勝國 원나라를 가리킴) 때에는 오히려 탐라(耽羅)가 독립된 나라로 있었다. 지금은 탐라 역시 차지하여서 국토의 넓이가 수나라나 당나라가 정벌하러 갔을 때 비해 이미 몇 배는 된다. 그러나 그 나라는 자못 예의를 숭상하고 분수를 잘 지킨다. 이에 명나라에 들어와서부터는 중국 조정을 공손하게 섬겨, 철마다 조공을 바치면서 신하로서의 예절을 폐하지 않고 있다. 《대학연의보(大學衍義補)》

 

명나라때 지어진 책 대학연의보에는 고려가 고구려보다 몇배나 넓다고 한다.조선이 고구려보다 넓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수나라때 고구려가 동서6천리 남북4천리인데 조선은 동서7천리이상 남북 7천리이상으로 더크다.

 

《구당서》 실위열전(室韋列傳)을 보면, “대산(大山)의 북쪽에 대실위부락(大室韋部落)이 있으며, 그 부락의 곁에는 실건하가 있다. 이 물의 근원은 돌궐(突厥)의 동북쪽 경계인 구륜박(俱倫泊)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나하(那河), 홀한하(忽汗河)와 합류하고, 여기에서 다시 동쪽으로 흘러 남흑수말갈(南黑水靺鞨)의 북쪽과 북흑수말갈(北黑水靺鞨)의 남쪽을 지난 다음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하였다

 

구당서에서 돌궐의 경계를 알수있다. 돌궐의 동북쪽경계가 흑수의 근원인것이다. 즉 발해가 실위를 병합하고 어디까지 갔는지 알수있다.흑수의 근원까지 간것이다 .돌궐의 경계를 아니 고구려의 경계도 알수있다. 돌궐바로옆이 고구려기때문이다

 

11월. 상이 경연에 거둥하였다. 검토관 양성지(梁誠之)가 주달하기를,

"평안도 장성(長城)의 역사를 비록 파하기는 하였지만 여연(閭延)ㆍ무창(茂昌)ㆍ우예(虞芮) 등의 군(郡)이 강변에 닿아 있기 때문에 남도의 군사들이 큰 재를 넘어와서 수역(戍役)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인마(人馬)가 모두 고역을 견디지 못하여 대부분 전토와 재산을 팔고 요동과 심양 등지로 도망해 간다고 합니다. 지금 이 세 고을을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큰 강이 한계로 되어 있으므로 국토는 여전히 그대로 있게 됩니다   국조보감 제9권  단종 1년(계유, 1453)

 

조선이 일부지역을 포기하더라도 큰강을 경계로 정했다고 한다. 즉 이름없는 큰강이 조선과 조선의 통치를 받은 올럅합부족과의 경계이다

 

 

위의 지도를 보라 고구려와 발해가 돌궐과 경계를 한강이 바로 흑룡강의 근원이 되는 강으로 몽골의 중앙을 가로지른다. 그런데 조선은 세고을을 포기해도 큰강이 경계가 된다고 한다. 즉 조선이 고구려,발해보다 넓다(돌궐이 생겼을때의 경계로 돌궐이전에는 고구려가 조선보다 훨씬 넓다)

 

 

천하 무적 우리 육진의 군사 / 六鎭兵無敵
흉노가 날고뛴들 어떻게 해 보리요 / 匈奴技不如
기재의 손 안에 들어온 이상 / 奇才入彀率
승리는 우리의 것 오랑캐를 압도하리 / 勝氣壓穹廬

 계곡선생집(谿谷先生集

 

6진은 흉노의 땅즉 몽골일대를 말함이다. 조선의 북쪽끝이 고구려와 동일함을 알수 있다. 또한 명나라기록에 조선은 고려보다 땅이 배나 넓다고

 

폐4군(廢四郡)이란 무창ㆍ여연ㆍ우예ㆍ자성이다. 네 고을의 지역이 거의 천 리가 넘어서 지금 황해도와 비교하여도 곱절이 넘는다. 비록 고을 관아는 없으나 또한 인민은 섞여서 살고 있다. 네 고을을 회복하지 않을 수가 없으나 남쪽으로 평양과의 거리가 거의 몇천 리여서, 감사가 멀리까지 통제할 수가 없다.  군현분예(郡縣分隸)

 

우리나라 무식한 국사학자님들이 4군을 북한 압록강이라 하는데 어째서 4군에서 평양까지 몇천리인가? 천리도 안된다. 인조이후 조선은 사군천리지역을 호인(청나라)에게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조선은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지고 4군지역을 넘겨주었다.  4군의 위치는 요하서쪽으로 추정된다.

 

 

고구려는 작은 나라인데도 성(城)을 잘 지키는 것으로 이름이 나서, 수(隋)·당(唐)의 백만 군대를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지방이 고구려에 비하여 배(倍)나 크고 산천이 험준한 것은 고금(古今)이 같은데도, 병자년12215) 의 난리에 오랑캐 병졸이 마치 무인지경(無人之境)같이 밀려 들어와, 마침내 하성(下城)하는 치욕을 당하였다. 이 일을 생각하면 어느 새 너무 마음이 아프다.”

숙종 38권, 29년(1703 계미 / 청 강희(康熙) 42년) 12월 7일(무인) 1번째기사

숙종때는 조선땅이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그래도 고구려보다 2배나 넓다고 한것은 조선초기부터 조선이 고구려보다 넓다고 후대왕들에게 가르쳐왔기 때문일 것이다.

 

여지승람》에는,

“용강현(龍岡縣)에 안시성이 있다

 

 용강현(龍岡縣)
영(令) 1인. 평양도 우익 병마(平壤道右翼兵馬)를 겸한다.
본래 고려의 황룡성(黃龍城), 일명(一名) 군악(軍岳)인데, 뒤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본조(本朝)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세종 지리지 / 평안도 / 평양부 / 용강현

 

 《한서》 지리지의 요동군(遼東郡) 망평현(望平縣) 아래에 반고는 자주하기를,

“대요수(大遼水)가 새외(塞外)로 나가 남쪽으로 안시(安市)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대요수를 현재 요하로 보아도 안시가 요하근처임을 알수 있다. 

 

 김시습(金時習)의 《관서록(關西錄)》에도 또한 안주(安州)로 안시성을 삼았는데

 

조선땅 용강현에 안시성이 있다고 한다. 조선의 고구려의 주요 거점을 거의 회복하고 서북으로는 고구려말기보다 더 넓다.

 

 

 

 

러시아 역사연구소 연구원 논문 입수

시베리아 출신 지도제작자인 레메조프의 17세기 후반 지도와 기록도 흥미롭다. 박연구원은 고려인인 보리스 박의 ‘러시아와 한국’이라는 책(러시아 원문)에 나타난 레메조프 관련 부분을 인용했다. 여기에는 레메조프가 조선 영토는 아무르강에서 시작된다고 그렸다는 것. 레메조프는 조선이 아무르강 남쪽 그리고 만주 동쪽에 길게 놓인 지역으로 묘사했다. 레메조프의 기록은 오스트리아에서 번역돼 책으로 간행되기도 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스빠파리와 레메조프의 기록에서 일치하는 대목은 조선의 영토가 아무르강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린 조선 국경은 두만강이 아닌 아무르강이었다. 박연구원은 “조선 영토가 바로 아무르강 남쪽에서 시작된 것은 당시 극동에 와 있거나 또는 극동 지역을 연구하던 외국인들(러시아인 포함) 사이에 흔히 거론되던 내용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이 망하기전에도 조선땅이 상당히 컷음을 알 수 있다. 

맨위로

http://blog.daum.net/manjumongol/63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