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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실록,역사자료 단어 해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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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실록,역사자료 단어 해설 (아)

자 료 / 하얀그리움
※ 참고자료 클릭 ; 고려,조선 관청.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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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객(雅客) : 손님을 존칭하는 말.
아경(亞卿) : 참판(參判). 조선시대 6조(六曹)에 두었던 종2품직.정2품 판서(判書)를 보좌하는 차관격(次官格)
이었으며, 각 조에 1명씩 모두 6명을 두었다. 판서를 정경(正卿)이라고 하고, 참판은 아경(亞卿)이라고 했다.
아관석(鵝管石) ; 해화석(海花石), 속이 텅 빈 돌고드름. 석회(石灰) 동굴의 천정에 고드름처럼 달려 있다.
아교(阿膠) ; 짐승의 가죽, 힘줄, 뼈 따위를 진하게 고아서 굳힌 끈끈한 것. 주로 풀로 쓰는데 지혈제나
그림을 그리는 재료로도 사용한다. ‘갖풀’로 순화.
아권(衙眷) : 수령(守令)의 내아(內衙)에 있는 권속(眷屬). 외방(外方)에 부임한 관원이 임지에서 데리고 있는 가족.
아기[阿只] : 임금의 어린 아들 딸.
아기(兒妓) : 어린 기생.
아다개(阿多介) : 모피(毛皮)로써 만든 요나 방석 등의 깔개를 속칭하는 말.
아대부(阿大夫) : 아(阿)는 지명(地名). 춘추 때 제(齊)나라 위왕(威王)의 신하로, 왕의 측근의 신하를
잘 받들었는데, 행정은 잘못하면서 뇌물로 왕의 좌우 사람들을 매수하여 자신을 추대하였는데, 그가 아(阿) 지역의 대부가 되자, 왕의 측근이 그가 훌륭한 지방관이라고 하는 칭찬이 날마다 이르렀다. 왕이 몰래 사람을 보내어 살펴보니, 주민들의 생활이 말할 수 없이 어려우므로 그 날로 아대부와 평소 칭찬하던 자들을 불러서 삶아 죽인 고사임.
아록(衙祿) : 각 지방의 수령(守令)과 그에게 딸린 식구들에게 주던 녹(祿)을 말함.
아록전(衙祿田) : 조선조 때 나라에서 지방 관청 군(郡), 현(縣), 참(站), 도(渡)에 대하여 각종 경비와 수령의
봉록(俸祿)에 충당하도록 지급한 전지 (田地).
아리(衙吏) : 관청의 아전.
아마(衙馬) : 관청의 말.
아마(兒馬) : 작은 공이 있는 사람에게 내려주던 말. 길들지 아니한 작은 말.
아모(阿母) : 보모(保母).
아목(牙木) ; 엄나무. 해동(海桐). 음나무. 두릅나뭇과의 낙엽 교목. 높이는 15~25미터이며, 잎은 어긋나고
5~9개로 갈라진다. 7~8월에 누런 녹색 꽃이 산형(繖形) 꽃차례로 피고 열매는 둥근 핵과(核果)로 10월에 검게 익는다. 재목은 가구재, 나무껍질은 한약재로 쓴다.
아보(牙保) : 흥정꾼.
아보(阿保) : 보호하여 양육함. 보모.
아사(阿私) : 아부하고 사리를 행함. 아첨되고 사사로움.
아사이졸(衙仕吏卒) : 관아에 근무하는 이졸(吏卒).
아상(亞相) : 찬성(贊成), 동의.
아상복(迓祥服) ; 연산10년 기녀들을 뽑아 흥청(興淸)이라 하였는데 흥청악이 입는 옷을 아상복이라 하였다.
오색 청사로 만듦. 가흥청, 운평이 입었다. 연산 11년 12월 26일 명하기를 “가흥청, 운평의 입고 있는 옷이 이름은 비록 아상(迓祥)이라 하나, 실은 매우 누추하니 아울러 개비하여, 다홍[大紅]·자지[紫的]·분홍(粉紅)·유청(柳靑) 등의 색깔로 물들이되, 금이나 자황(雌黃)을 써서 그림을 분명하게 그리도록 힘쓰라. 각방(各坊)의 관원과 총률(摠律)은 전적으로 맡아서 검찰하라. 태만한 자는 죄를 논하리라.” 하였다.
아승지(阿僧祗) : 무량(無量)의 뜻.
아악(雅樂) : 바른 음악.
아악서(雅樂署) ; 고려 말 조선초에 예조 아래 궁중음악을 관장하던 음악기관의 하나. ▶ 자세한 자료는 (고려,
조선 관청) 참고.
아양록(阿羊鹿) ; 토산 영양(羚羊), 솟과의 포유동물. 몸은 날씬하며 우아하고 발에는 발굽이 있으며 매우
빠르다. 초식성으로 대부분 아프리카에 분포하는데 유라시아에도 분포한다. 천연기념물 제217호. 염소, 산양 따위의 짐승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도 쓴다.
아양마(衙養馬) ; 관아에서 키우는 말.
아언(雅言) : 정직(正直)한 말.
아음(雅音) : 정악(正樂).
아이현(阿耳峴) ; 지금의 서울 아현동 일대. 아이현(阿耳峴)은 우리말의 "아이고개" "애고개"를 한자로 옮겨 쓴 것
으로 보이는데, 전설에 따르면 옛 한성부에서는 서소문(西小門)을 통하여 시체를 나가게 했고 아이의 시체는 이 고개를 지나서 묻게 했다고 한다.
아일(衙日) : 백관(百官)이 조회(朝會)하여 임금에게 정무(政務)를 아뢰는 날. 이 아일(衙日)은 매달 여섯 번씩
이었는데, 조선조(朝鮮朝)에서는 처음에 초하루, 초엿새, 열 하루, 열 엿새, 스무 하루, 스무 엿새로 날짜에는 다소 변화가 있었으나 역시 육아일(六衙日)을 지키다가, 뒤에 아일이 줄어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초닷새, 열 하루, 스무 하루, 스무 닷새의 사아일(四衙日)로 되어 있다.
아자(牙子) ; 짚신나물의 뿌리. 독을 푸는 데나 기생충(寄生蟲) 없애는 데에 약재(藥材)로 쓰인다.
장미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30~100cm이며 온몸에 털이 있다. 잎은 어긋나고 깃모양 겹잎이며 잔잎은 크기가 고르지 않다. 6~8월에 노란색 꽃이 가지 끝에 수상(穗狀) 꽃차례로 피고 열매는 수과(瘦果)를 맺는다. 어린잎은 식용하고 뿌리는 약용한다. 들이나 길가에서 자라는데 한국의 각지와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아자(牙子) : 물건을 사고 팔 때 중간에서 거간(居間)하는 사람. 중매장이. 아쾌(牙儈).
아전(衙前) ; 조선시대 중앙과 지방의 각 관청에 근무하던 하급 관리. 일명 이서(吏胥)라고도 불리는데,크게 경아전
(京衙前)과 외아전(外衙前)으로 구분된다. 중앙의 각 관청에 근무하는 하급 관리로는 녹사(錄事)·서리(書吏)·조례(皁隷)·나장(羅將)·차비군(差備軍) 등이 있었다.
이들 아전은 모두 중인 계층이었는데 경아전의 녹사는 종6품까지 승진할 수 있었고, 서리는 종7품 또는 종8품까지 승진할 수 있었으며, 거관(去官 : 다른 관직으로 옮김.) 후에는 체아직(遞兒職) 또는 산관직(散官職) 및 무록검교직(無祿檢校職)을 받을 수 있었다.
외아전은 향리(鄕吏)와 가리(假吏)로 나누어지는데, 향리는 그 지방 출신으로 대대로 아전을 하는 사람을 말하고, 가리는 다른 지방에서 와서 임시로 근무하는 아전을 말한다. 아전이라는 말은 군수·현령 등 지방수령이 근무하는 정청(正廳)의 앞에 그들이 근무하는 청사가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인데, 정청 앞에 있는 이방청(吏房廳)을 비롯한 육방청(六房廳)이 외아전의 주 근무처였다.
아조(衙朝) : 백관(百官)이 조회(朝會)하여 임금에게 정무(政務)를 아뢰는 날. 아일(衙日)의 조회(朝會).
아주(牙籌) : 상아로 만든 주판.
아중(衙中) : 관아의 안.
아지(阿只 ) ; 왕 자녀들은 어릴 때 아지(阿只)라고 부른다.
아지(阿之) : 유모(乳母).
아차산(峨嵯山 ;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동 동편과 광진구 중곡동에 걸쳐 있는 산. 서울의 동쪽 경계지인 아차산은
평강공주의 남편 온달장군이 전사한 아차산성이 있다.
아청(鴉靑) ; 검은빛을 띤 푸른 빛. 검푸른 빛.
아청 단자(鴉靑段子) : 단자는 곧 단자(緞子). 광택이 많고 두텁고 무늬가 든 비단.
아청색(雅靑色) ; 청색보다 짙으며 남색보다는 옅은 푸른색의 일종. 〈만기요람 萬機要覽〉에 의하면 1740년의
아청색 실 값과 1808년의 아청운문사 직물 값이 홍색과 함께 가장 비쌌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짙은 색으로 염색한 직물들의 값이 비쌌는데, 그 이유는 염색공정상 반복해서 작업을 해야 하므로 재료와 인건비가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 1445년(세종 27) 8월조에 보면 당시 아청색을 많이 염색하던 제용감(濟用監)에서 염료의 조달이 어렵기 때문에 다른색(皂色)으로 고쳐 사용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점차 그 사용이 빈번해지면서 1518년(중종 13)에는 청색의 값이 비쌌음에도 불구하고 조신들의 시복(時服)에 아청색을 사용하도록 했다. 더욱이 1533년에는 민가의 부인들이나 선비들 사이에서도 아청색의 복식을 입는 것이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이처럼 아청색과 같이 짙은 색의 사용이 증가하자 청색의 사용을 장려했다. 아청색이라는 명칭은 조선시대의 〈규합총서 閨合叢書〉를 비롯한 각종 문헌에 자주 보이며, 주로 궁중용 복색으로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예로는 매년 대전에 아청운문사 2필을 공상(供上)했으며, 행사용 복식으로는 세자의 면복, 흉배, 광다회에 모두 아청색을 사용했다. 빈궁의 경우는 가례·존숭(尊崇)·진연 때 적의(翟衣)에 아청색을 사용했다고 한다. 아청색 염색법은 〈임원십육지 林園十六志〉에 의하면 쪽잎을 따서 잘 닦고 3일간 물에 담가 불순물을 걸러낸 다음 다시 3일간 담갔다가 꺼내어 물의 양을 맞춘 다음 잿물을 넣고 혼합한다. 짙은 색을 내려면 여러 차례 반복해야 한다고 했다.
아청초주지(訝靑草注紙) ; 검푸른 물을 드린 종이.
아치(兒齒) : 노인의 이가 빠지고 다시 난 이.
아쾌(牙儈) : 물건을 사고 팔 때 중간에서 거간(居間)하는 것. 또는 그 사람.
아표(餓莩) : 굶주려서 죽음.
아해(衙廨) : 관아(官衙).
악공(樂工) ;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왕립음악기관에서 음악 연주를 담당하였던 전문음악인.
1) 삼국시대에는 일명 척(尺) 또는 악생(樂生), 고려시대에는 영인(伶人) 또는 공인(工人)으로 불렸고, 조선시대에도 공인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일본 나라시대(奈良時代)에 일본에 파견되었던 삼국악인들은 악생이라고 불렸으나, 본국에서는 악공 또는 척이라고 불렸다.
2) 고려시대 악공은 대악서(大樂署)와 관현방(管絃房) 소속의 음악인들이었는데, 악공들의 직분은 1053년(문종 7)에 세습하도록 하였으며, 1140년(인종 18)에는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도록 하였다.
3) 조선 초기 악공은 전악서(典樂署)와 아악서(雅樂署) 및 관습도감(慣習都監) 소속으로 활동하였고, 장악원(掌樂院)의 설립 이후 우방에 속해 있으면서 향악과 당악을 연주하였다. 조선시대 악공이라는 명칭은 장악원의 좌방소속으로 있으면서 아악을 연주하였던 악생의 대칭어로 쓰였다. 조선시대 악공들은 원칙적으로 공천(公賤) 중에서 뽑혔으나, 양인 신분으로 악공을 원하는 사람은 될 수도 있었다. 장악원의 악공직은 모두 악공적(樂工籍)에 올라 세습적으로 전승되었고, 50세 이후에야 악공적에서 벗어나 공역을 면제받았다.
성종 때 악공의 숫자는 악사 2명, 악공 518명, 보수(補數) 52명 등 총 572명이었으나, 병자호란 이후 429명으로 줄었다가 영조 때 446명으로 정하였다. 조선 후기의 악공들은 그들의 봉족(奉足)이 바치는 가포(價布)로 생활하였고, 큰 공을 세우는 경우에 가자(加資:품계를 올리는 일)나 면천을 받았다. 조선 초기에 악공의 선발과 훈련은 악학(樂學)이 담당하였다.
악기도감(樂器都監) ; 조선시대 악기와 제복(祭服) 제작에 관한 업무를 관장한 임시 관청. ▶ 자세한 자료는(고려,
조선 관청) 참고.
악기조성청(樂器造成廳) ; 조선 후기 악기제작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임시로 설치하였던 관청. ▶자세한 
자료는 (고려, 조선 관청) 참고.
악미(惡米) : 쌀 속에 섞여 있는 붉은 빛이 나는 쌀, 앵미. 흰쌀에 섞은 잡곡.
악부(嶽父) : 악장(嶽丈). 곧 아내의 아버지. 장인.
악사(樂師) ; 조선시대 아악서(雅樂署),전악서(典樂署),장악원(掌樂院)의 악공(樂工)이나 악생(樂生)중에서 우두머리
구실을 하였던 원로음악인들로서 잡직(雜職)을 담당하였던 벼슬아치.
성종 때 장악원에 우방(右坊) 소속 악공 출신의 악사가 2명, 좌방 소속 악생 출신의 악사가 2명이었는데, 이들은 좌방악사 또는 우방악사라고도 불렸다. 조선 후기 악사들은 나라의 행사 때 맡은 직분에 따라 집사악사(執事樂師) 또는 집박악사(執拍樂師)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악학궤범≫에 의하면, 악사의 임무는 궁중행사 때마다 악공이나 악생을 거느리고 음악연주의 지휘와 감독을 맡았는데, 예컨대 문소전(文昭殿)의 제례행사에서 연주된 전상악(殿上樂)의 경우에 악사 1명이 악공 39명을 거느렸고, 전정악(殿庭樂)의 경우에 악사 1명이 악공 61명을 지휘하였다. ≪경국대전≫이나 ≪대전통편≫을 보면, 악사 2명은 정6품의 전악(典樂) 및 종6품의 부전악(副典樂)이라는 잡직을 가졌는데, 이러한 잡직은 체아직(遞兒職)으로서 장악원에서 1년에 네 차례 추천서로 이조에 보고하여 사령서를 받았다.
악생(樂生) ; 조선시대 아악서(雅樂署)·전악서(典樂署)·장악원(掌樂院)에서 의식음악과 의식무용을
전문적으로 담당하였던 음악인의 한 부류. 악생들은 장악원의 좌방(左坊) 소속으로 있으면서 아악만을 연주하였으며, 이들은 향악이나 당악을 연주하였던 악공들과 구분되었다. 악생들은 양인(良人) 중에서 선발되었기 때문에, 공천(公賤) 중에서 뽑힌 악공보다 신분적으로 높았다. 악생들의 주요임무는 궁중의 제례의식 거행 때 등가(登歌)의 노래와 문무·무무를 담당하는 것이었다.
성종 때 악생의 수는 악사 2명, 악생 297명, 보수(補數) 100명으로 총 399명이었으나, 1636년 병자호란 이후 190명으로 감원되었다가 영조 때 195명으로 개정되었다. 성종 때의 ≪경국대전≫에 의하면, 악생 중에서 부전악(副典樂), 전율(典律), 부전율, 전음(典音), 부전음, 전성(典聲), 부전성과 같은 잡직을 받기도 하였는데, 이들의 잡직은 체아직(遞兒職)이었으므로 장악원에서 1년에 네 차례씩 추천서로 이조에 보고하여 사령서를 받아갔다.
악실(惡實) ; 우방자. 우엉의 씨를 한방에서 이르는 말. 열을 내리고 독을 푸는 작용을 하여 인후염, 홍역 초기,
해수(咳嗽) 따위에 쓰인다. 대력자(大力-子), 서점자(鼠黏-子), 야차두(夜叉-頭)라고도 한다.
악악(諤諤) : 직언(直言)을 하는 모양. 거리낌 없이 바로 집어 말한다.
악양망고지난(岳陽亡故之難) : 악양에서 죽을 재난.
악전(幄殿) : 포장으로 꾸민 막차.
차일을 치고 휘장을 사방에 둘러 막고 그 안에 임시로 어좌(御座)를 꾸민 것을 말한다.
악정(樂正) ; 고려와 조선시대 성균관에 두었던 음악관계벼슬.
성균관에서 음악을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일을 맡아 하던 벼슬. 고려에서는 뒤에 사예승(司藝丞)으로 개칭되었는데, 이들의 직분은 음악을 이론적으로 연구하던 일인 듯하다. 고려시대 유명했던 유신들 중에 이곤(李混)·이제현(李齊賢)·안축(安軸)이 성균악정을 지낸 바 있다.
악정은 임금이 친히 제사에 참석하는 친사(親祠)의 등가(登歌)와 헌가(軒架)에 반드시 참석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그 품계가 종4품이었고, 1인의 악정을 성균관에 두었으나, 조선 건국 당시인 1392년(태조 1) 7월 28일 문무백관을 새로 정할 때, 정4품의 악정 2인을 성균관에 두었다. 그 뒤 성종 때에는 그 명칭이 사예로 바뀌었고, ≪경국대전≫에 의하면 3인으로 그 인원이 늘었으나, 1865년(고종 2)의 ≪대전회통≫에 의하면 다시 2인으로 줄어들었다.
악착(齷齪) : 마음이 좁고 작다.
악학(樂學) ; 조선 전기 음악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기관. ▶ 자세한 자료는 (고려, 조선 관청) 참고.
악학도감(樂學都監) ; 조선 전기 예조 아래 궁중음악을 관장하던 음악기관의 하나. ▶ 자세한 자료는 (고려,조선
관청) 참고.
안가(晏駕) : 임금의 죽음. 붕어(崩御)함. 사망을 말한다.
안거(安車) : 앉아서 탈 수 있도록 만든 작은 수레.
안거승(安居僧) : 일정한 기간 동안에 나가지 않고 한데 모여 수행(修行)하는 중.
안거치변(安車輜輧) : 앉아서 타는 수레로, 덮개가 있는 것.
안구마(鞍具馬) : 안장 갖춘 말.
안기집(安驥集)》 : 중국에서 전하는 의약책, 3권. 그 서(序)를 보면, “尙書兵部阜昌五年 準內降付下部省奏朝散大
夫 尙書戶部郞中 馮長寧等箚子 成忠郞 皇城司準備 差遣盧之賓進呈司牧安驥集方 四冊…”라 하여 구서(舊書) 4책(冊)이 있은 듯하다. 모든 병마다 각각 그림[圖]이 있고, 약방(藥方)이 그 끝에 붙어 있다.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 ; 고려시대의 지방행정기구. ▶ 자세한 자료는 (고려, 조선 관청) 참고.
안독(案牘) : 사건 서류. 관청의 문서.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 ; 1) 고려 때 1014년(현종 5)에 설치한 대도호부로 경주에 설치하였다. 2) 고려와 조선
때 경상도 안동에 설치하였던 관청. ▶ 자세한 자료는 (고려, 조선 관청) 참고.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 ;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가 고구려의 옛 땅에 설치한 최고 군정기관(軍政機關). ▶자세한
자료는 (고려, 조선 관청) 참고.
안등(鞍鐙) : 안장에 달려 있어 말을 탔을 때 발로 딛는 제구, 등자(鐙子).
안란창(安瀾倉) ; 고려시대 서해도(西海道) 장연현(長淵縣) 해위포(海葦浦)에 설치하였던 조창.▶ 자세한 자료는
(고려, 조선 관청) 참고.
안롱(鞍籠) ; 1) 수레나 가마 등(等)을 덮는 우비의 한 가지. 한쪽에 사자를 그린 두꺼운 유지(油紙)로 만들었다.
2) 장악원(掌樂院)ㆍ사복시 등(等)의 여러 관아(官衙)의 구실아치.
안률(按律) : 법률에 비추어 해당되는 처벌을 가려 냄.
안릉전(安陵奠) : 임금 또는 왕비의 장례(葬禮) 때에, 매장이 끝난 뒤에 제물을 차려 지내는 제전을 말한다.
안렴사(按廉使) ; 고려시대 집아장관으로 절도사.
안찰사라고도 한다. 각 도의 으뜸 벼슬. 1276년(충렬왕 2)의 관제개정에 따라 안찰사(按察使)를 개칭한 것이다. 1298년에 경상도·전라도·충청도는 땅이 넓고 일이 많아 안렴부사(按廉副使)를 더 두었다. 충선왕 즉위 후에 제찰사(提察使)로 고쳐졌다가 충숙왕 때 다시 안렴사로 되었다.
1389년(창왕 1)에 안렴사가 관질(官秩)이 낮아 수령을 통할하고 그 직책을 다할 수 없다고 하여 양부대신(兩府大臣)으로 임명되는 도관찰출척사(都觀察黜陟使)로 고쳤다. 지금의 광역시장. 도지사.
안면(案面) : 문서의 표면.
안무고려군민총관부(安撫高麗軍民摠管府) ; 원나라가 심양(瀋陽)지방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을 통치하기 위하여
설치한 특수행정기구. ▶ 자세한 자료는 (고려, 조선 관청) 참고.
안무사(按撫使) ; 1) 고려시대의 관직.
1012년(현종 3)에 절도사제(節度使制)를 폐지하고 75도(道)에 안무사를 파견하였으나 1018년에 폐지되었다. 이때에 안무사는 75도가 아니라 양주·광주·충주·청주·진주·길주·황주 등의 7주에 파견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1107년(예종 2)에 백성의 질고와 수령의 전최(殿最 : 관리의 근무태도를 조사하여 고과를 매기는 일)를 살피는 것을 그 임무로 하는 안무사를 여러 도에 보냈다. 이 때부터 안무사는 일이 생기면 파견하고 그 일이 끝나면 파하는 임시관직으로 되었다.
후기의 안무사는 실제로는 지방에 민요와 같은 변란이 일어났을 때에 흔히 파견되었으며 지방 군현(郡縣)의 떠돌아다니는 백성을 안집(安集)하는 것을 임무로 하였다. ≪고려사≫ 백관지(百官志)는 1276년(충렬왕 2)에 안무사를 고쳐 순무사(巡撫使)로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그 뒤에도 여전히 안무사가 파견되었다.
조선시대 지방에 특사로 파견하던 관직.
일반적으로 북감사(北監司)라 불렸으며, 당하관일 경우에는 안무어사(安撫御使)로도 불렀다. 전쟁이나 반란 직후 민심수습을 위하여 파견되었다. 1595년(선조 28) 임진왜란이 소강상태에 있을 때 왜적이 물러간 남부지방의 민심수습을 위하여 비변사에서 안무사의 파견을 건의하여 집의 신식(申湜)을 경상도안무어사로 임명하여 보냈다. 1728년(영조 4) 무신란(戊申亂 : 李麟佐의 亂)을 평정한 뒤에도 충청도 지역의 민심수습을 위하여 안무사를 파견하였다.
안문(案問) : 심문.
안변도호부(安邊都護府) ; 고려시대의 지방행정기구. ▶ 자세한 자료는 (고려, 조선 관청) 참고.
안병(按兵) : 군대(軍隊)를 한 곳에 멈추어 둠.
안부(案付) : 대장(臺帳)에 기록함.
안부전(案付田) : 문서에 오른 밭.
안부 정전(案付正田) : 양안(量案:토지 대장)에 등록된 정전(正田).
안북대도호부(安北大都護府) ; 고려시대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기구. ▶ 자세한 자료는 (고려, 조선 관청) 참고.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 ; 고려시대의 지방행정기구. ▶ 자세한 자료는 (고려, 조선 관청) 참고.
안석(案席) : 벽에 세워 놓고 앉을 때 몸을 기대는 방석.
안순 왕후(安順王后) : 예종 계비 한(韓)씨.
안식(鞍飾) : 말 안장의 장식.
안식향(安息香) ; 때죽나무과에 딸린 갈잎큰키나무. 잎은 알꼴인 데 뾰족하고 어긋맞게 나며, 여름에 가지
끝에 잔 꽃이 핌. 나무진은 향기(香氣)가 짙으므로 훈향료, 방부제(防腐劑), 소독제(消毒劑)로 쓴다.
안양(安襄) ; 시호(諡號). 화목하기를 좋아하고 다투지 않는 것이 안(安)이고, 일에 말미암아 공(功)이 있는 것이 양
(襄)이다. 성종 192권, 17년(1486 병오 / 명 성화(成化) 22년) 6월 7일(경진) 1번째기사
안양군(安陽君) : 성종의 세째 아들 행(㤚).
안연(晏然) : 평안하고 태평스러움.
안인(安人) ; 조선시대 외명부인 문무관처에게 내린 정, 종7품 작호(爵號).
문·무관 7품의 관계에 오른 적처(嫡妻)에게 봉작된 작호이다. 1396년(태조 5) 문무 각품 정처(正妻)에 대한 봉작제를 실시할 적에는 6품관의 정처에게 봉해졌으며, ≪경국대전≫에는 정7품과 종7품의 문무관 처에게 봉해지도록 격하되었다.
남편의 경우 문관은 정7품 무공랑(務功郎), 종7품은 계공랑 (啓功郎)으로, 무관은 정7품 적순부위(迪順副尉), 종7품은 분순부위(奮順副尉)로 세분되었으나 그 부인을 통칭하여 안인이라 하였다. 본래 안인은 송나라 휘종(徽宗) 때에 현군(縣君)을 3등급으로 나누어 실인(室人), 안인(安人), 유인(孺人)이라 한 데에서 비롯되었으며, 명나라와 청나라에서의 안인은 6품의 문무관 처에게 봉해진 봉호였다.
안일 호장(安逸戶長) : 호장의 나이가 70세가 되면 벼슬에서 물러가게 하되, 봉록을 주어서 안일하게 지내도록
하였다.
안업(安業) :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함.
안영(晏嬰) : 춘추 시대 제(齊)나라 대부. 자는 평중(平仲). 절검 역행(節儉力行)하여 밥상에 두 가지 고기를 놓고서
먹지 않고, 첩도 비단을 입지 않으며 갖옷 하나를 30년이나 입어 이름이 제후들에게 드러났다. 뒷사람들이 그의 행사(行事)와 간(諫)한 말을 모아 《안자춘추(晏子春秋)》를 만들었다.
안옥(犴獄) : 옥(獄)이란 뜻으로, 옥사(獄事)를 이르는 말.
안자(鞍子) : 말 안장.
안접(安接) : 근심 없이 편안히 지냄.
안조(案照) : 조사해서 고찰함.
안치(安置) : 형벌의 한 가지, 죄인을 귀양보내어 다시 일정한 장소에 거주를 제한하던 일.
안접(安接) : 걱정 없이 편안하게 머물러 삶.
안지(眼紙) ; 모눈종이. 방안지(方眼紙).
안지(鞍枝) ; 말안장.
안집사(安集使) ; 고려시대 양계(兩界)에 파견되었던 지방 장관.
대몽항쟁이 끝난 직후 동계(東界)의 강릉도(江陵道)에 처음 설치되었다. 즉 1258년(고종 45) 몽고가 영흥을 중심으로 한 철령(鐵嶺) 이북에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설치하면서 더이상 이곳에 병마사(兵馬使)를 파견할 수 없게 되자, 고려는 쌍성총관부 밖에 잔존해 있는 동계 지역의 통치를 위해 새로운 지방관으로 안집사를 파견하였다. 그러다가 1298년(충렬왕 24) 충선왕이 즉위하여 이를 혁파하고 교주도안렴사(交州道按廉使)로 하여금 겸임하게 하였다. 한편, 충렬왕 29년에 서북면안집사가 된 김겸(金堅)의 사례로 미루어 보아 몽고로부터 동녕부(東寧府)가 환부된 충렬왕 16년 이후에는 서북면에도 강릉도의 예에 따라 안집사가 파견되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원종 때 삼척에 은거해 있던 이승휴(李承休)에게 출사를 권한 안집사 이심(李深)이 정4품관인 병부(兵部)의 시랑(侍郞)을 지낸 사실을 고려할 때 안집사 또한 5도의 안찰사(按察使)와 마찬가지로 주로 4품 내지 6품의 관원들이 임명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안치(按治) : 조사하여 다스림.
안치(安置) : 유배형(流配刑)의 하나. 보통 귀양은 귀양간 땅에서 다시 구속을 받지 않았으나, 이는 귀양 간 곳에서
일정한 장소에 한하여 거주를 제한하는 것이며, 대개 왕족이나 높은 벼슬을 한 사람에게만 적용하였다. 《대명률》 유형에 준하는 형벌로, 죄를 3등급으로 나누어 원근(遠近)을 참작하여 바닷가나 황무지 등에 귀양보내어, 그곳을 떠나지 못하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처(付處)와 같이 가족과의 동거를 허락하되, 출입은 부처보다 더욱 제한되며, 고향에 두는 본향 안치(本鄕安置), 먼 변방에 두는 극변 안치(極邊安置), 먼 섬에 두는 절도 안치(絶島安置), 그리고 더욱 엄격히 출입을 금하여 탱자 가시 울타리를 쳐서 두는 위리 안치(圍籬安置)가 있는데, 이 형벌은 대개 왕족이나 높은 벼슬아치의 말하자면 정치적 범죄에 가해진다.
안태(安胎) : 임금이나 왕실의 태(胎)를 태실(胎室)에 안치하거나 또는 이매(移埋)하던 일.
안태사(安胎使) : 왕실(王室)의 태(胎)를 태실(胎室)에 안치(安置)하는 일을 맡은 관원.
①조선(朝鮮) 시대(時代) 때 임금이나 왕자의 태(胎)를 태실(胎室)에 안치(安置)하던 관원(官員) ②궁실 밖에서 임금이 되어 들어온 사람이나 왕비(王妃)로 책봉(冊封)하여 들어 온 여자(女子)의 실가(實家)에 묻혔던 태반을 다시 왕가의 태봉에 이매(移買)할 때의 사신(使臣)
안해(雁醢) ; 기러기 젖갈.
안핵사(按覈使) ; 조선 후기 지방에 사건이 발생시 이의 처리를 위하여 파견한 임시관직.
대개 민란발생시에 문제의 수습을 위한 긴급대책으로 파견되었는데, 목사·군수 등 인접지역의 수령이 주로 임명되었고, 때로는 경관(京官)이 파견되기도 하였다. 임무는 사건의 전말과 상황에 대한 상세한 조사·보고 및 사건의 처리방안을 건의하고 아울러 조정의 지시에 따라 이를 수습하는 것이었다. 민란이 극성하였던 19세기 철종·고종조에 자주 파견되었고, 사건처리의 책임문제 때문에 병을 칭탁하여 임명을 회피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민란이 일어난 모든 지역에 파견된 것은 아니고, 철종조의 경우 진주·개령·청주·익산·함흥 등지에 파견되었던 것이 그 예이다.
안협(安峽) ; 즉 강원, 평안, 황해 삼도쯤에 있는 고읍 이름이다.
안흥창(安興倉) ; 고려시대에 설치되었던 조창(漕倉). ▶ 자세한 자료는 (고려, 조선 관청) 참고.
알(訐) : 남을 헐뜯기 위하여 없는 일을 있는 것 같이 꾸미는 것.
알고(謁告) : 휴가를 청하는 것.
알성(謁聖) : 임금이 성균관 문묘(文廟)의 공자 신위에 참배하던 일. 문묘 배알.
알자(謁者) ; 고려시대 내알사(內謁司)·내시부(內侍府)에 두었던 관직.
내알사는 종5품, 내시부는 종7품이었다. 일반적으로 알현을 청하는 사람, 또는 빈객을 주인에게 안내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고려시대에는 왕명의 전달과 왕이 사용하는 붓과 벼루의 공급, 궁궐문의 열쇠와 자물쇠의 관리 보관, 궁궐 안뜰의 포설(鋪設) 등에 관한 일을 하였다. 고려 초기에는 액정원(掖庭院), 성종 때는 액정국(掖庭局), 1308년(충선왕 복위 원년)에는 내알사, 다음 해에는 다시 액정국에 속하였다. 또한, 가례(嘉禮) 때에도 책사(冊使)와 사신(使臣)들을 인도하였다. 구체적으로 원구단 제례시에는 태위·사공·태상경·광록경 등을, 사직단 제례시에는 태상경, 태위 등을, 태묘와 별묘 제례시에는 태상경, 광록경, 사도, 아헌관, 종헌관, 사공, 태위 등을 인도하였다.
알직(訐直) : 남의 비밀을 들춰내어 거침없이 헐뜯음.
암눈비앗 ; 익모초. 꿀풀과의 두해살이풀. 높이는 1미터 정도이며, 잎은 마주나고 잎자루가 길다.
7~9월에 엷은 홍자색 꽃이 윤산(輪繖) 꽃차례로 잎겨드랑이에서 피고 열매는 다섯 갈래가 지는 분과(分果)이며 약재로 쓴다. 한국, 일본, 중국에 분포한다.
암랑(巖廊) : 궁전 옆에 있는 월랑. 의정부의 별칭.
암련(諳練) : 모든 사물에 정통함.
암약(闇弱) : 어리석고 빙충맞음, 똘똘하지 못하고 어리석으며 수줍음을 타는 데가 있다.
암학(巖壑) : 바위와 골짜기.
암행어사(暗行御史) ; 조선시대 왕의 측근의 당하(堂下 : 정3품 하계 통훈대부 이하) 관원을 지방군현에
비밀리에 파견해 위장된 복장으로 암행하게 한 왕의 특명사신. 당하 관원 중에서 임시적으로 특명해 이들을 비밀리에 보내면서 수령의 득실(得失 : 훌륭한 정치와 탐학한 정치)과 백성의 질고(疾苦 : 고통이나 어려움)를 탐문해 돌아와서 임금에게 사실대로 아뢰는 것을 직무로 하였다. 수의(繡衣) 또는 직지(直指)라고도 한다.
암행어사가 일반어사와 다른 점은 일반어사는 이조(吏曹)에서 임명하고 그 거동이 공개적인 것에 비해, 왕이 친히 임명할 뿐 아니라 그 임명과 행동을 비밀에 부친 점에서 특색이 있다고 하겠다.
비밀을 본질로 하는 특명사신 파견의 전례는 조선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사헌부의 당하 관원을 행대(行臺) 또는 행대감찰이라 해 지방에 파견할 때, 혹은 왕의 측근의 관원을 경차관(敬差官)에 임명하고 지방에 파견할 때, 염문규찰(廉問糾察)의 편의상 비밀리에 파견해, 잠행체찰(潛行體察)했다든가 암행규찰(暗行糾察)했다는 기사가 보인다.
암혈(巖穴) : 속계를 떠난 산중.
압(鴨) ; 오리.
압객(狎客) : 터놓고 지내는 사람.
압닐(狎昵) : 허물없이 가까이 함.
압량(壓良) : 양민을 억압하여 종을 삼음, 압량위천(壓良爲賤)의 준말.
압량위천(壓良爲賤) : 양민을 억압하여 종을 삼음, 압량(壓良).
압령 사지(押領事知) : 배를 압령하는 관원.
압마(押馬) : 외국에 왕래하는 사신 일행의 말을 압송하는 책임을 진 관원.
압물(押物) : 사신이 외국으로 갈 때 수행하던 관원. 조공(朝貢)하는 물건과 교역(交易)하는 물건 등을 관리하던 책임
자이다.
압물관(押物官) ; 조선시대 각종 예물 호송관.
조선시대 중국·일본과의 사행(使行) 왕래시에 수행한 각종 예물 호송관.
세폐(歲幣)를 비롯한 각종 방물(方物)·예물을 운송, 관리, 수납하는 일을 압물이라 하고, 이를 담당하는 관리를 압물관이라 하였다. 이들은 모두 사역원(司譯院)의 역관들로서 임명하였다. 중국에 가는 정기사행의 압물관은 세폐영거관(歲幣領去官) 3인, 세폐미영거관 2인, 방물영거관 7인으로 구성되었고, 부정기 특별사행에는 8인의 압물관이 동행하였다. 압물관은 대부분 중국어 통역관으로 차출하였으나, 조선 후기에는 만주어〔淸學〕역관 2, 3인, 몽고어·일본어 역관 각 1, 2인씩이 포함되었다.
일본으로 가는 통신사(通信使)의 압물관은 초기에는 일본어 역관 2인, 중국어 역관 1인으로 구성되었으나 1682년(숙종 8)부터 일본어 역관 1인이 추가되었다. 이들은 국가의 공식예물을 호송하는 외에 소량의 사물(私物)을 무역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 한·중교역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사무역을 통하여 큰 부를 축적하기도 하였다. 한편, 중국이나 일본에서 오는 사신의 예물 호송관은 ‘압물(押物)’이라고 불렀는데 보통 1, 2인이 왔다.
압반(押班) : 조정에서 백관의 정렬하는 위차를 주관함. 또는 그 사람.
압사(狎邪) : 마음이 간사하여 은혜를 모름.
압선 사지(押船事知) : 배를 목적지까지 압령(押領)하는 일을 맡아 보게 하던 사지(事知)를 말한다.
사지는 강화(江華)·통진(通津)의 사람 가운데 배를 잘 부리는 자를 말하는데, 이들은 배 한 척마다 두 명을 정하여, 좌번(江番), 우번(右番)으로 나누어서, 좌번 사지는 경강에 이르러 배를 영수하는 자와 함께 쌀을 바치고, 우번 사지는 빈 배를 가지고 돌아오도록 하였다.
압슬(壓膝) ; 조선 시대에, 죄인을 자백시키기 위하여 행하던 고문. 죄인을 기둥에 묶어 사금파리를 깔아 놓은 자리
에 무릎을 꿇게 하고 그 위에 압슬기나 무거운 돌을 얹어서 자백을 강요하였다. 대명률에 없는 형벌이다.
압슬기(壓膝器) ; 압슬(고문)할 때에 쓰던 형구(刑具)의 한 가지. 주(主)로 널빤지를 많이 사용(使用)하였다.
압승(壓勝) : 목적의 인물을 힘으로 굴복 시켜 저주로써 승리를 구하는 것을 이름.
압연(押宴) : 연석(宴席)을 관리함. 잔치를 주관함.
압존(壓尊) : 예절의 존숭(尊崇)을 더 높이는 것. 웃어른 앞에서 그 위엄에 눌림. 어른에 대한 존대심이 더 높은 어른
앞에서는 줄어짐을 말한다.
압책관(押冊官) ; 고려시대 국왕이 보내는 사절단의 일원.
각종 책봉례(冊封禮)를 행할 때 국왕이 보내는 사절단의 일원. 태후, 왕비, 태자, 왕녀 등을 책봉할 때 왕이 내리는 옥책(玉冊), 새보(璽寶) 및 물장(物狀)을 행사장까지 운반하는 책임을 맡았는데, 이를 위해 지책(持冊)과 지인(持人)으로 불리는 4명의 보조원이 수종하였다. 발책(發冊)에서 상책(上冊) 및 회빈(會賓)에 이르기까지 모두 참여하였다.
압해(押解) : 압송(押送).
압해관(押解官) : 사람이나 마소(馬牛)를 목적지까지 압령(押領)하여 교부(交付)하던 관원. 죄인을 잡아 보내는 관원.
압화사(押花使) ; 고려시대 국왕이 보내는 사절단의 일원. 각종의 책봉례(冊封禮)를 행할 때 국왕이 보내는
사절단의 일원.태후·왕비·태자·왕자·왕녀 등에 대한 책봉이 끝나고 축하 연회를 열 때 쓰라고 왕이 하사하는 꽃(宣花)과 술(宣酒)을 운반하여 권화사(勸花使)에게 인도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래서 압화주사(押花酒使)라고도 불리었다. ≪고려사≫에 보이는 인화담원(引花擔員)은 이 압화사를 돕는 보조원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앙급지어(殃及池魚) ; 옛날 송(宋)나라에서 성문(城門)에 실화(失火)하여 성문이 탈 때 불길이 연못 물에까지 번져
못의 고기가 떼죽음을 하였다는 고사(故事)에서 나온 말로, 재앙이 의외의 곳에 미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앙사부육(仰事俯育) : 위로 부모를 섬기고 아래로 처자를 기름.
앙앙(怏怏) : 불평을 품고 우울해함.
앙조(仰曹) : 상급 관청. 하부 기관이 상부 기관의 소속 조(曹)를 말한다.
애기풀 ; 원지(遠志). 원지과의 여러해살이풀. 줄기는 높이가 30cm 정도이며 잎은 어긋나고 선 모양이다.
7~8월에 자주색 꽃이 총상(總狀) 꽃차례로 가지 끝에 피고 열매는 삭과(蒴果)이며 뿌리는 약용한다. 함경도, 황해도에 분포한다.
애루(隘陋) : 좁고 더러움.
애문(挨問) : 집집이 찾아서 범인을 잡음. 애문(挨門).
애분(涯分) : 분수에 알맞은 정도. 곧 본분.
애일(愛日) : 시간을 아끼는 것인데, 《논어(論語)》에 ‘아들은 애일(愛日)하는 정성을 말 수 없다.’ 하였으니 부모
에게 효도를 다함을 뜻한다.
애일지성(愛日之誠) ; 부모를 봉양하는데 날과 시간을 아껴 조금도 태만하지 않다. 《논어》 이인편(里仁篇)에
‘부모의 나이를 알고 있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니,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두려운 것이다.[父母之年 不可不知也 一則以喜 一則以懼]’ 하고, 그 주석에 날을 아끼는 정성[愛日之誠] 때문에 스스로 그만두지 못하게 된다 하였다.
애자(睚眦) : 흘겨 보는 눈초리, 곧 극히 작은 원망.
애책(哀冊) : 애책문(哀冊文)을 말하는데, 제왕(帝王)이나 후비(后妃)의 죽음을 슬퍼하여 지은 지은 글이다. 옥책
(玉冊) 또는 죽책(竹冊)에 적는다.
애호(艾蒿) ; 산쑥.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2미터 정도이며, 잎은 마주 나고 깃 모양으로 깊게 갈라진다.
8~9월에 노란 꽃이 가지 끝에 원추(圓錐) 꽃차례로 핀다. 어린잎은 식용하고 말린 잎은 뜸쑥을 만드는 재료로 쓴다. 한국, 일본, 사할린 등지에 분포한다.
애훼(哀毁) : 부모의 죽음을 슬퍼하여 몸이 훼상된 것.
액수(額數) : 정원수.
액정(掖庭) : 궁중(宮中).
액정서(掖庭署) ; 조선시대 왕과 왕족의 명령 전달, 알현 안내, 문방구 관리 등을 관장하던 관서.
조선시대 때 왕명의 전달과 임금이 쓰는 붓, 벼루의 공급, 대궐의 열쇠의 보관 대궐 뜰의 설비 등을 맡아보던 관청. ▶ 자세한 자료는 (고려, 조선 관청) 참고.
액정원(掖庭院) ; 고려 시대에 왕명의 전달 및 안내, 궁궐 관리 따위의 일을 맡아보던 관아. ▶ 자세한 자료는
(고려, 조선 관청) 참고.
액취(腋臭) ; 암내.
액험처(阨險處) : 지세(地勢)가 막히고 험한 요해처(要害處)를 말한다.
액호도감(額號都監) ; 고려시대에 설치되었던 임시관서.
1130년(인종 8)에 처음 설치되었으며, 관원으로는 사(使)와 부사(副使)·판관(判官) 등이 두어졌다. 그 기능 및 이후의 연혁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알 수 없다.
앵무배(鸚鵡盃) ; 앵무새 부리 모양의 술잔. 모양은 타원형이고 한쪽에 손잡이가 있으며 오색이 영롱한 조개 껍질과
같이 변한다 한다.
앵미 : 쌀 속에 섞여 있는 붉은 빛이 나는 쌀, 악미(惡米).
앵속(鶯粟) ; 양귀비. 양귀비꽃과에 딸린 두해살이풀. 높이 50∼150cm, 온몸이 부연 푸른빛이고, 길둥근
잎은 톱니가 있으며 어긋맞게 남. 5∼6월에 빨강, 하양, 자주 따위의 큰 꽃이 줄기 끝에 하나씩 곱게 피며 둥근 열매를 맺는 데 덜 익은 열매의 즙을 내어 말린 것을 '아편(阿片)'이라 하여 약으로 쓴다. 미낭화(米囊花). 아부용(阿芙蓉).이라고도 한다.
앵속각(鷪粟殼) ; 양귀비의 열매의 껍질. 거담(袪痰), 경약(鎭痙藥) 또는 설사(泄瀉), 이질(痢疾) 따위에 쓴다.
어미(御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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