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만의 하룻밤 / 기 드 모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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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만의 하룻밤 / 기 드 모파상

하늘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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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만의 하룻밤

( A NIGHT OUT WITH THE BOYS )

BY ELSIN ANN GRAFFAM

- 기 드 모파상 지음 / 정태원 옮김

 

어두워서 한 방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의자가 놓인 방 한가운데로 더듬거리며 걸었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실내 공기는 아내의 향수처럼 숨이 막혔다. 의자를 끌어다 낯선 남자 옆에 앉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방안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보았지만 낯익은 얼굴은 없었다.

나는 조지아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넥타이를 고쳐 매면서 옆에 앉은 남자가 손에 들고 있는 재떨이를 바라보았다. 재미있게 생긴 재떨이었다. 적어도 그날 밤 그 때까지 어떤 것보다도 내 흥미를 끌었다.

그러나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치밀었다. 지난주에 편지가 왔을 때 겉봉을 뜯은 건 아내였다.

"자요!"

아내는 겉봉을 뜯은 편지를 내밀며 말했다. 예쁘게 인쇄한 종이였다.

"맞은편에 사는 인상 좋은 남자가 가지고 왔어요. 무슨 회의 초대장이래요. 한번 다녀오세요."

"가라구? 무슨 회의인데?"

나는 외투를 벗고 편지를 받았다.

 

아래와 같이 초대합니다.

브라이아웃 남성 클럽 연차총회.

: 18() 오후 8.

: 알즈 레스토랑 람즈룸.

당신의 동포, 그렌 레이놀즈.

 

", 모르겠어. 이 남잔 전혀 모른다구. 이런 클럽 이름도 들은 적이 없어."

내가 말했다.

"가시래두요! 이웃과 사귈 수 있는 좋은 기회예요. 이리 이사 온 지 벌써 두 달이나 되었는데도 아직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잖아요."

조지아는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를 냈다.

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슈퍼마켓 같은 데서 한두번 조지아의 수다를 들으면 누구든 찾아올 마음이 없어질 것이다.

"이 근처 사람들은 조용한가보군."

내가 말했다.

"동부 사람은 고향 사람만큼 붙임성이 없나 봐요."

조지아는 빈정대는 말투였다.

"이봐 조지아, 그 이야기는 그만둬. 우린 당신 때문에 정든 집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왔어."

"어머, 당신 지금 나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거예요? 어떻게 그런 말이 나와요?

그건 다 당신 잘못이에요. 내가 집을 나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인 줄 아세요."

"알았어, 조지아."

"아빠의 돈이 없었으면 당신은 어떻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또 내가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구요!"

"그래, 내가 나빴어. 피곤하니 이제 그만... "

조지아는 아니꼽다는 듯 웃으면서 오렌지색 머리칼을 마포 걸레 같이 흔들며 말했다.

"옷은 뭐가 좋을까? 짙은 갈색 양복에다 내가 사 준 새 넥타이를 매고... "

아내는 내가 입고 갈 옷을 일일이 참견했다. 지금까지 14년 간 하루도 빼지 않고 그래 왔던 것처럼.

 

이렇게 해서 8일 밤, 나는 브라이 아웃 남성 클럽 연차총회에 나오게 된 것이다. 몹시 진저리치면서, 도대체 <연차총회>를 하는 클럽이 어디 있단 말인가! 무슨 봉사 클럽? 아니면 친목회? 그렇다고 해도 1년에 한 번이라니...

참석자들이 다 모인 것은 8시쯤이었다. 거의 모두 지친 슬픈 얼굴들이었다.

장의사 지배인의 모임? 아니면 자살미수자 클럽인가?

"이제 전부 모인 것 같군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전처럼 알파벳 순으로 시간은 1분씩."

연단에서 레이놀즈가 말했다.

50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슬프고 피로한 기색으로 단 위로 올라 갔다.

"해리 아담스입니다. 내 아내는, 내 아내는.."

남자는 불안한지 이마에 땀을 닦았다.

"올해는 최악의 해였습니다. 여러분은 내 아내가 미인이라는 걸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다른 사람 눈에는 내가 행복하게 보이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 하루 종일 이것저것 사달라고 조릅니다. 어떻게 내가 그렇게 많은 돈을 융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말을 안 들어주면 집에 있는 돈을 몽땅 가지고 나가겠다고 합니다. 사실 돈이 없어, 이 은행 저 은행에서 집을 수리한다는 핑계로 융자 해다가 필요한 모든 것을 사 주었습니다. 그래도 밍크코트니 다이아몬드니 하고 조릅니다. 나는 돈도 다 써 버리고 더 이상 융자도 할 수 없어..."

"1분입니다. 해리!"

작은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다른 사람과 교대했다.

 

"브라우닝입니다. 마누라의 성화로 장모가 집에 들어왔어요. 나는 마누라와 사이가 좋지 않은데 이번엔 상대가 둘이 된 겁니다. 쨍쨍거리지 않나, 트집을 잡지 않나, 그것도 스테레오로 말입니다. 여러분은 상상도 못할 겁니다. 5분만 늦게 들어가도 둘이서 시끄럽게 야단이고, 마누라의 생일이나 장모 생일을 잊어버리기라도 하면 그때는... "

브라우닝은 단상에서 레이놀즈를 보았다.

"아직 괜찮습니까?"

"10초 남았습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더는 참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나는 젊지 않습니다. 나는..."

"1분입니다."

그리고 다음 사람, 나는 황홀해서 앉아 있었다. 정말 멋진 생각이다. 1년에 한번씩 모여 아내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다. 혼자 끙끙 앓던 것을 속시원히 토해놓는다. 이런 멋진 모임에 나오기를 주저했다니!

다음에는 도먼이란 사람이 나왔다. 이 남자의 부인은 너무 먹어대서 체중이 280파운드나 되는 거구로 변했다.

다음은 프린. 그의 부인은 자신이 병에 걸렸다고 믿어 지금까지 서른 여섯 명의 의사를 찾아다녔다.

하워드의 처는, 손님이 오지 않을 때는 틀니를 빼고 천연덕스레 집 주위를 걸어 다닌다. 그리고 아내가 새 스포츠카를 1년에 서너 번씩 들이받는다는 그라츠, 남편이 좋아하는 헌 옷을 전부 자선단체에 내주었다는 모건의 아내.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난 특별히 시선을 끌려고 하지 않았다. 그 점을 밝혀두겠다. 그러나 소리내어 말함으로써 아내가 내게 한 짓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그것만으로도 멋진 일이었다.

나는 단상에 올라가 레이놀즈를 보았다.

"시작하시지요."

레이놀즈가 상냥하게 말했다.

"프레디 나프라고 합니다. 그녀의 이름은 제니, 제 비서였습니다. 나이는 스물셋, 이 세상 무엇보다도 사랑했습니다. 그걸 저 냉혈동물인 마누라가 냄새를 맡고는 모든 사람에게 나의 행동을 소문내고, 그 창녀한테서 떨어지기 위해서는 아주 먼 데로 이사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니는 창녀가 아닙니다. 다시는 그녀와 만날 수 없겠지요. 아직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데, 마누라는 옛날 일을 끄집어내서 지금도 뇌까립니다.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잊고 싶지만 그게 안 됩니다.

아내가 항상 생각나게 만들지요."

"프레디 1분입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단에서 내려올 때, 마이크에다 대고 힘껏 소리쳤다.

지금까지 39년 동안 이처럼 기분 좋은 적은 없었다. 막힌 걸 토해낸 듯 시원해서 자꾸 웃음이 나와, 자리에 돌아온 나는 다른 남자들 이야기는 반도 듣지 못했다.

 

아버지는 바보라고 아이에게 가르치는 오웬스의 부인, 대학을 졸업해서 남편보다 더 똑똑하다고 믿는 쿠엔튼의 부인, 늦게까지 자고 집안일은 전부 남편에게 시키는 스미스의 부인, 그리고 남편의 옷을 직접 만들어 불황시대 영화에나 나오는 몰골로 다니게 하는 즈게이의 부인 - 오늘 밤도 그는 그런 차림이다- 에 이르기까지 남자들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내 싱글거리며 앉아 있는 남자가 내 시선을 끌었다.

무척 즐거운 모양이다. 어디서 본 적이 있나 싶어 그의 얼굴을 유심히 보고 있는데, 레이놀즈가 떠들기 시작했다.

"좋습니다. 여러분, 대단히 훌륭했습니다. , 그럼 투표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조지, 종이와 연필을 나누어 주세요."

"투표?"

나는 옆에 앉은 남자에게 물었다. 이 남자의 부인은 남편이 외출하는 게 싫을 때는 남편의 가발을 감춰 버린다고 한다.

"그래요, 우리들 가운데서 제일 악처를 가진 남편을 뽑는 거지요."

나는 프레디 나프라고 썼다.역시 제일 나쁜 마누라를 가진 사람은 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렌 레이놀즈는 종이를 모아 정리한 뒤,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오늘 밤 처음 나온 회원이 뽑혔습니다. 프레디 나프. 그의 애인을 창녀라고 욕한 부인의 남편입니다."

나는 엉거주춤하게 일어서서 레이놀즈의 축하를 받았다. 조금 얼떨떨하기도 했지만 자랑스럽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영예일 것이다.

그러자 슬픈 표정이 한풀 꺾인 사내들이 모두 주위에 몰려와 내 손을 잡았다.

그중 몇몇은 눈에 눈물까지 글썽이며 내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그 뒤, 모두 로비로 가서 한잔 마실 때, 나는 바 구석에서 레이놀즈를 발견하고 술잔을 든 채 그에게 다가갔다.

"굉장한 아이디어입니다! 몸에 누적된 것을 배출한다는 건 정말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 클럽은 누구 생각입니까?"

"내 생각이오. 지난 5년 동안 1년에 한 번씩 모였습니다. 내가 회원을 관리하고 있어 당신도 참석해 주기를 바란 겁니다. 당신 부인도 상당한 호걸이신 것 같기에... 그렇지요?"

", 그렇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왜 가만히 계셨나요? 당신이 만든 클럽이라면서..."

"나요? 나는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마누라는 벌써 4년 전에 죽었습니다."

"그것 참 안됐군요."

나는 갑자기 이상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저니 계속 웃고 있는 분은 누굽니까?"

"게일 마크레랑 말입니까? 수도국 직원이지요."

", 그렇군요. 집사람이 그랬는데, 마크레랑 부인이 지난해 끔찍한 사고로 죽었다고..."

레이놀즈는 싱긋 웃으며 내 팔을 토닥거렸다.

"맞습니다. 마크레랑이 작년 투표에서 뽑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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