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 김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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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 김성종

하늘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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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 픔

- 김 성 종


나는 눈을 뜨고 사내를 바라보았다. 오십대의 그 사내는 너무 오래 기다린 데 대해서 완연히 낙담한 기색을 보이면서 나에게 힐끗 시선을 던져 왔다. 눈빛으로 보아 그는 몹시 피로해 있는 것 같았다. 아마 비쩍 마른 데다가 낡은 점퍼 차림의 초라한 행색 때문에 내가 그를 무시했던 모양이다.

 

"무슨 일이세요?"

나는 소파 쪽으로 옮겨 앉으며 사무적으로 간단히 물었다. 오후에 들어서 면서 날시가 부쩍 더워지고 있으므로 나는 거의 지쳐 있었고,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조차 귀찮았다.

 

사내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쓰면서 머뭇머뭇, "..... 좀 볼 수 없을까요? 사망자 명단 말입니다." 하고 말했다. 마디가 굵고 거친 손으로 보아 그가 품팔이 노동자란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 무슨 일 때문에 그럽니까?"

"좀 찾아 볼 사람이 있어서 그럽니다."

"여기에 묻혔어요?"

"그건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곤란해요. 이 국립 묘지에 묻힌 사람이, 10만이 넘는데,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찾아요."

 

이 친구를 될수록 빨리 내쫓은 다음 이번엔 아예 숙직실에 들어가서 낮잠을 자야겠디고 생각하면서 나는 밖을 내다 보았다. 8월의 뜨거운 태양 밑에서 수만개의 묘비들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들이 나에게 준 인상은 언제나 하얗다는 것뿐이었다.

 

"꼭 찾아야 될 사람이라 그렇습니다. 힘드시다면 명부만 보여 주십시오. 제가 직접 찾아 보겠습니다."

"안된다니까요. 여기에 분명히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한번 편리를 좀 봐 주십시오. 이거 약소합니다만..."

사내는 갑자기 청자 두 갑을 탁자 위에 꺼내 놓았다. 그러고는 초조한 듯이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졸음이 가시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누굴 찾는 겁니까?"

"제 아들입니다."

그는 재빨리 대답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가지 오게 됐어요?"

"사실은 1.4후퇴 때 아들 하고 둘이서 남하했는데, 부산에서 그 애를 잃어버렸습니다.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찾아 다녔지만 찾지 못하고 해서....  마지막으로 혹시나 해서 여기에 온 겁니다."

 

"그러니까 아들이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말씀이군요."

나는 조금 웃어 보이면서 호의적으로 말했다.

", 그렇습니다."

"고향이 어디죠?"

"평양입니다."

"아들 이름은?"

"이동운입니다. 동녁 동, 구름운자를 쓰지요. 지금 살아 있다면 서른 두, 선생님 또래는 되었을 겁니다. 잘 좀 부탁합니다."

 

실내에는 심부름하는 아이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직접 카아드를 찾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연고자가 없는 사망자 카아드를 뽑아 그 중에서 이가(李哥) 명단만을 하나 씩 훑어 보았다. 20분쯤 지나 다시 귀찮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을 때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동녁 동, 구름 운... 이 동운이라고 그랬죠?" 나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 그렇습니다."

사내는 일어서면서 말했다.

"원적이 평양 어디에요?"

"사동(寺洞) 25번지...."

"이리 오시요!"

 

나의 고함 소리에 사내는 허둥지둥 내 쪽으로 다가와서 카아드를 들여다보았다.

"194059, 생년월일 맞아요?"

 

내 질문에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카아드만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는데, 책상 위에 올려 놓은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더 이상 확인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196710월 월남에서 전사했습니다. 청룡 하사였었군요. 을지 무공 훈장을 받았고... 유언에 따라 모든 돈을 고아원에 기부했습니다. 결혼은 하지 않았군요. 모처럼 이렇게 찾으셨는데.... 안됐습니다. 함께 가시죠. 묘지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밖으로 나온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 사내는 꿈 속을 걷는 것처럼 입을 벌린 채, 멍한 표정으로 나를 따라왔다.

 

국립 묘지에서 관리인을 맡아 본 지가 5년이 넘었지만 오늘과 같은 이런 일을 겪기는 처음이었다. 21년 만에 만난 아들이 죽어 있다니, 하긴 그럴 수도 있겠지. 걸어가는 동안 나는 계속 더위만을 느꼈다.

 

아들의 묘지 앞에 이르자 사내는 묘비를 확인해 보고 나서, 그 주위를 한 바퀴 천천히 돌았다. 그러고는 내가 거북하게 서 있는 것을 알자, "감사합니다. 이제 됐습니다." 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위로가 되는 말을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별로 생각이 나지 않았으므로 다만 슬픈 표정으로 목례를 한 다음 그 자리를 얼른 피했. 우는 것을 구경한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유쾌한 일이 못 된다. 사실 나는 어느 정도 울음 소리에 질려 있었다. 도중에 뒤돌아 보니 사내는 여전히 빙빙 돌아가고 있었다.

 

사무실에 돌아온 나는 탁자 위에 놓인 담배 두 갑을 서랍 속에 넣고 쇠를 채운 다음 숙직실로 들어가 드러누워 잠이나 자고 싶었다. 여자와 함께 어젯밤을 고스란히 ㄳ혔기 때문에 나는 대단히 피로 했다.

 

이윽고 나는 즉시 잠이 든 모양이었다. 도중 아까의 그 사내가 피를 토하며 우는 꿈을 구었는데, 잠을 깨고 나서도 그 때문에 기분이 불쾌했다. 밖은 한낮이 기울고 이미 석양이 되어 있었다. 불현듯 사내의 일이 궁금해서 나는 묘지 쪽으로 가 보았다.

 

사내는 아직 거기에 있었다. 묘비 앞에 소줏병과 술잔을 하나 놓은 채 그는 웅크리고 있었다. 내가, "이제 그만 가시죠."

라고 말했지만 그는 꼼짝하지 않았다. 무릎 사이에 머리를 박고 있는 모습이 자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일곱시까지는 나가셔야 합니다."

이 말에 사내는 고개를 쳐들었는데, 술을 마셨는지 붉게 달아 오른 얼굴이 땀과 눈물에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열에 뜨고 충혈된 두 눈이 나를 정면으로 쏘아보았을때, 나는 차마 그를 맞바로 볼 수가 없었다. 크게 무안을 당한 기분으로 나는 그 자리를 물러섰다.

 

처음 얼마 동안은 사내에 대해서 마음이 켕겼지만 밤이 되자 거의 잊을 수가 있었다. 나는 텔레비젼을 보다가 짐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나는 잠이 깨자마자 무엇을 잊은 듯한 서운한 기분을 느꼈. 한참 동안 방 안을 두리번거린 다음에야 나는 밖으로 뛰쳐 나갔다. 잔디밭을 가로질러 달릴 때 발등에 떨어지는 이슬의 감촉이 무척 상쾌했. 나는 어제 갔던 묘지 쪽으로 곧장 달려갔다.

 

묘지에 닿은 나는 숨이 콱 막히는 것을 느꼈다. 놀랍게도 이 동운 하사의 묘비는 나둥그러져 있었고, 묘지도 파헤쳐져 있었다. 그리고 구덩이 속에는 유골함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주위를 한번 휘둘러 본 다음 재빨리 구덩이를 메우고 그위에 전처럼 묘비를 세워 놓았다. 이 일 때문에 나는 거의 한 시간 동안이나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곤욕을 치뤄야 했지만, 웬일인지 그 사나이의 행위에 대해서 기분 나쁜 생각은 들지 않았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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