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돈 ...(우리교회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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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돈 ...(우리교회자랑)

왕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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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달 우리교회 영동지에 실린  손봉호 장로님의 글입니다.

 

 

 

 

 

      교회돈

     최근 많은 교회들과 교계지도자들이 돈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모든 가치들 가운데 최하급인 돈 때문에 모든 가치들 가운데 가장 고상한 사랑을 전해야 하는 교회가 세상의 지탄을 받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서울 영동교회가 38년간 적어도 돈 문제로는 큰 사고나 불미스러운 일이 없었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다.

     그런 전통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직접 혹은 간접으로 이에 공헌한 이야기 몇 가지를 소개할까 한다.

     1.기증 형식으로 하지 않고

 

    

 

    지금 예배당이 자리 잡고 있는 땅(강남구 논현 2동 88-2)은 故신세훈 장로님(당시 집사)이 기증한 것이다.

    본인이 가지고 있던 땅이 아니라 새로 구입해서 바친 것이다.

    대금은 신 장로님이 지불했으나 법적인 매수자는 교회였다. 그런데 그 땅을 판 사람이 자기가 그 땅을 교회에 판 것이 아니라

    기부한 것으로 신고하자고 교회에 제안했다. 그렇게 하면 세금을 많이 절약할 수 있고 그 절약한 돈을 교회와 자기가 절반씩 나누자고 한 것이다.

 

    교회는 물론 일거에 거절했다. 매매가 완결된 후 故 차은희 권사님(김경래장로님 사모님)이 교회부지를 등기하러 등기소에 갔다.

    등기소의 담당 공무원이 서류를 보더니 “이거 교회 건물 용지로 쓸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기증 형식으로 하지 왜 매매 형식으로 했습니까?”

    했다는 것  이다. 차권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건물을 짓는데 어떻게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까?” 하고 대답했다.

    서류를 드려다 보던 직원이 머리를 들고 차권사를 바라보며 “거 참 이상한 교회도 다 있네!” 하더란 것이다.

    처음부터 영동교회는 이렇게 좀 이상한 ? 교회로 시작했다.

 

       2.잠자리채와 연보궤

 

 

     예배당을 신축(1977)하고 얼마 후에 나는 헌금방식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때는 모든 교회에서 헌금 시간에 집사들이 잠자리채라는 별명을 가진 연보주머니가 달린 막대기를 교인들 코앞에 내밀던지 아니면

     연보바구니를 돌리는 방식으로 헌금을 거두었다. 헌금 할 마음이 없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의 눈치 때문에 돈을 주머니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성경에도 언급되었으니 연보궤(捐補櫃)를 사용하자고 했다.

     그러나 제직회원 대부분이 그렇게 하면 헌금액수가 부족할 것이라고 반대했다.

     나는 원해서하는 헌금이라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아무리 돈이 부족해도 억지로 내는 헌금으로 교회가 사역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고집을 부려서  기어코 관철 시켰다. 그러나 그후에 알아보니까 오히려 헌금액수가 늘어났다고 했다.

     요즘은 많은 교회가 그렇게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예배당 입구의 연보궤에 연보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서울 영동교회가 처음이었다

     3.교회 돈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1970년대 후반에 서울 영동교회가 아직 담임목사를 모시지 못하고 내가 설교를 혼자 도맡아 할 때였다.

     그때만 해도 돈을 구걸하러 교회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알코올 중독자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식사는 대접하되 가능하면 현금은 주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주일에 설교자를 찾아온 한 남자의 사정은 매우 딱해서 돈을 좀 주어야겠다고 판단하고 지갑을 열어보니

     하필 그날따라 돈을 충분히 가져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헌금을 정리하고 있는 회계집사들에게

     다음 주일에 갚을 테니 돈을 좀 빌려 달라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당시 회계를 담당한 신세훈장로(당시 집사)는 “교회 돈은 그렇게 빌려드리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단호하게 잘랐다.

     그래도 내가 설교자인데,그것도 내가 쓰려는게 아니라 구제하려는 것인데 그렇게 냉정하게 거절해서 좀 서운 했지만

     한 방 얻어맏고 나는 그날 구제를 포기했다. 그러나 그 사건은 교회 돈에 대한 나의 입장을 정리하고 나의 태도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이었고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교회 돈은 무서운 돈이다.

 

      4. 교회 돈은 효과적으로 써야..

 

 

     신 장로로부터 좋은 교훈을 얻은 지 얼마 후 국제고등교육진흥협회(IAPCHE)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아프리카의 잠비아에 가게 되었다.

     당회에서 여비로 쓰라고 미화1000불을 나에게 주었다. 한 푼 도 나 자신을 위해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대회 기간 내내 어떻게 하면 그 돈을 가장 유용하게 쓸까를 생각했다. 현지 교인들과 의논한 결과

     한 가난한 선교단체와 루사카 신학교 도서관에 기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내 돈이 아니기 때문에 서울영동교회 이름으로 기부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영수증을 받아서 귀국 후에 교회에 전달했다.

     나의 뜻을 알았기 때문인지 그 뒤에는 교회가 다시는 나에게 돈을(사례?) 주지 않았다.

    5. 당회원은 잃어버린 돈을 물어내라.

 

     한번은 당회에서 결정해서 어떤 분에게 500만원을 빌려 주었는데 무슨 사정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제때에 그 돈을 회수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당회원들에게 그 돈을 물어내라고 요구하고 나부터 내겠다고 했다.

     당회가 잘못 결정해서 성도들의 헌금을 축내었으면 당회가 그것을 메우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어느 장로도 반대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다행이도 사건이 잘 해결이 되어 500만원이 돌아왔고

    장로들은 벌금을 내지 않아도 되었다. 이것이 영동교회의 전통이 되기를 바란다.

 

     6..가장 아름다운 낭비

 

     서울 영동교회 역사에 가장 큰 낭비는 장애인을 위한 승강기와 슬로프가 아니었나 한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1992?)지금 부엌 옆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있는 화장실 자리에 승강기가 하나 있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스스로 버튼을 누르고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그때 서울 영동교회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한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내가 장애인을 위한 승강기 설치를 제안했을 때 젊은 집사들이 만약 그런 장애인이 교회에 오면

     자기들이 휠체어를 들고 계단을 올라가겠다고 하면서 승강기설치를 반대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장애인에게 너무 불편하고 그들을 너무 힘들게 한다고 나는 반대했고 기어코 상당한 돈을 들여 승강기는 설치되었다.

 

     그런데 돈을 아끼느라 그랬는지 아니면 그때 우리 기술 수준이 낮아서 그랬는지 그 승강기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기에

     얼마안 되어 철거하고 계단 옆에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는 슬로프를 만들었는데, 몇 안 되는 장애인보다 노인들이 아주 좋아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본당 옆에 교육관을 세우며 성능 좋은 승강기를 이용할 수 있게 되자 그 슬로프마저 철거되었다.

     승강기와 슬로프설치 철거에 상당한 액수의 돈이 들어갔을 것이다 .큰 낭비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서울 영동교회가 그보다 더 멋진 낭비를 해본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연약한 자를 위한 낭비였고 하나님은 그런 낭비를 매우 기뻐하신다고 확신한다.

   6번의 승강기 이야기에 저와 관련된(부끄러운)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손장로님은 장애인선교의 초석이 된 밀알선교회의 창립멤버셨기에

  사회의 약자인 장애인을 적극적으로 도와야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하는데 대부분의 교회 예배당이 2층에 있기 때문에

  막상 장애인(휠체어)들을 전도 하여 교회에 데려와도 예배당에 올라가기가 어려우니,

  이것은 형식적인 장애인전도라고 생각하시고 우리교회에  승강기설치를 강력 주장하셨는데,

  마침 이 소문을 듣고 왔는지 아니면 밀알을 통해 왔는지

  몇몇 장애인들이 왔고 그때 휠체어 장애인 2명도 우리교회에 등록을 하였습니다.

 

  그때는  제가  양재역쪽에 살다가 옥수동으로 이사하여 (1990) 얼마 안되는 시점이라  계속 서초구역에 속해 있다가

  1992년 성동구역장으로 임명이 되어 ,한남동과 이태원에 살던, 그 휠체어장애인들이 모두 다 우리구역 식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장애인들은 다 형편이 열악하여 ,

  한남동의 구역식구는 거의 전신마비 환자인데도 반지하방에 세를 들어 사는 노총각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은 누워서 지냈고 교회에 오는 것도 장애인협회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에 하반신을 거의 결박?한 채로 와야 했습니다.

 

  아직 40대였던,열심이 특심?이었던  나는 그성도를 위해 반찬을 해 가지고 자주 심방을 갔고  ,

  나중에는 밀알에서 만난 다른 장애인 (당뇨가 심하여 다리를 저는 )과  그 노총각이 우리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게 되었는데

  그 결혼 피로연 음식을 내가 주관해주기 까지 하였습니다.

  (얼마 안되어 그분은 제천으로 이사갔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족?은 이태원에 살고 있던 (해뜨는 집) 세 자매들이었는데 ,

  친 가족은 아니었고 그들도 밀알에서 만나 기계편물을 같이 하며 함께 사는 장애인 처녀들이었습니다.

  그 무렵 교회의 승강기 혜택을 본 유일한 성도들이 그 <해뜨는 집> 식구들이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제 병이 <다정도 병.> 인지라,

  어떻게든 형편이 어려운 그들을 도와주려고,이동이 어려운 그들을 위해 음식을 해가지고 가서, 몇년동안 구역예배를, 전적으로 그들 집에서 드렸고,

  그들이 짠 쉐터를(하자가 있어서 크레임에 걸린) 교회바자회에서 팔아주기도 하고,

  북한산 황태를 도매값에 떼어다가 그들이 주문을 받은 곳에 배달을 해주기도 하고,

  비싼 월세방을 전세로 바꿔주기 위해,교회에서 보조도 받고

  몇몇 교회집사님들에게 매월기부금을 받아 적금을 들어 전세로 바꿔 주었는데

  방값은 반년(그때는 전세기간이 6개월)마다 올라서 점점 더 열악한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4년 그중에 리더격인 박XX 자매가

  휠체어나 자동차를 타고 오르내리기가 용이한, 이면도로변의 개인주택 주차장안쪽의 방을 얻게 되었으니

  어디서 3부 이자로 1500만원만 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그동안 그들이 한번 움직일 때마다 얼마나 힘이 드는지 잘 알 고 있는지라 차마 모른 체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우리친구들 모임의 회비(적금)를 내가 관리를 하고 있어서 ,내가 이자를 꼭 받아내기로 하고 그돈을 빌려주기로 하였는데

  적금 만기가 한달 쯤 남아 있어, 우리 구역 권찰에게 한달 이자를 주고 먼저 빌려 이사를 하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이사를 하고 6개월 쯤 되었는데 이번에는 인천으로 이사를 하게 될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마침 방학기간이라 몇 주 구역 예배를 쉬고 있어서 3주쯤 지난 후에 가보니 ...

  세상에나.... 그들은 이사를 가고 없었습니다.

 

  그때는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 그들이 작정?을 하고 이사를 한 후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어버리니 행방을 알 길이 없었습니다.

  설마 설마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한달쯤 지난후에 공중전화로 죄송하다고, 받을 돈을 받으면 찾아 뵙겠다고 연락이 와서

  속으로 의심한게 미안 하여 그러라고 흔연히 대답했는데...

  그 후로 20년이 지나도록 그들은 소식이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 식구끼리는 돈거래를 하면 안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

  그들의 형편이 딱하여 차마 거절을 못한 제가 어리석었고 ,

  맨마지막 이사할집의 전세계약을 내이름으로 해야한다는 주위의 충고를 무시한 내가 바보였고,

  3년동안 구역장으로써,큰언니처럼 엄마처럼 진심으로  최선을 다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들은 겉으로는 경건한 척, 주일과 구역예배는 드리면서도 , 속으로는 교회와 나를 우롱했다는 것이 부끄럽고 서글펐습니다.

 

  그 때가 마침, 막내 고모가 사고를 쳐서 우리 시골집을 날린 시점이라,

  고모가 빌려간 돈과, 내가 친구모임 회비를 빌려온 것을 갚느라 ,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속이 시커멓게 타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아무리 다급해도, 교회식구끼리는 돈을 빌리지도 말고 빌려주지도 말라는 말씀을 금과옥조처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도 어디를 가도

   우리 구역, 아니 내 주위에는,

   섬겨야할 연약한 지체들이 항상 끊이지 않으니 하나님이 제게 주신 사명? 아니 은사려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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