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예찬

대한민국 최초의 유격부대 백골병단 전적비

작성일 작성자 굳건이




대한민국 최초의 유격부대 백골병단 전적비



대한민국 최초의 유격부대 백골병단 전적비


백골병단 전적비와 역사전시관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 3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곳을 지나는 분들은 백골병단 전적비를 찾아 묵념하고 역사전사관을 들러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생전 모습도 만날 수 있습니다. 






위로부터 백골병단 지휘부와 결사 11연대 명단-12연대 명단-13연대


육군본부직할 백골병단의 활동

1950 12 21일 대통령 령 국민 총 동원령에 따라 대구 소재 육군보충대에 진결했습니다. 입대한 애국청년, 학생 6,000 여 명 중에서 선발된 820 여명을 육군 제7훈련소에 입소시켜 소정의 군사 특수전 교육과 훈련을 실시했습니다.

 


백골병단 역사전시관


1951 1 25일 임시장교 123명을 GO군번 부여와 동시에 임관하고, 병사 700여 명은 G군번 부여와 동시에 병장이상의 계급을 부여받았습니다. 이들은 작전명령에 따라 1951 1 30일 결사 제 11연대 363(연대장 육군중령 채명신)이 영월군 영월읍에서 적진 후방지역으로 침투하였습니다.



육본 직할 결사대 침투 작전 요도


 1951 1 30일 적진 초도 침투 작전

 

1951 2 14일에는 결사 제 13연대 124명이 묵호항에서 대관령, 월정사를 경유, 삼산리 방면으로 침투 중 1951 2 19일 강원도 명주군 연곡면 퇴곡리에 주둔중인 결사 제 11연대에 각 합류함으로써 3개 연대 647명이 집결했습니다.



결사 유격 제 12연대 출동

 

1951 2 20일 육군중령 채명신이 백골병단의 창설을 선포하고, 3개 부대를 통합 지휘하여, 강원도 홍천군 광원리와 구룡령을 차단해 평창, 인제, 양양 지역 설악산, 군량발, 오색, 단목령 지구 등 산간지역에서 아군작전에 기여하는 천공을 올렸습니다.




강릉에 개선한 후 한때

 

그 후, 1951 3월 하순, 설악산 지구에서 북한군 1개사단으로부터 협공을 받아, 보급이 두절되어 일주일간 산야를 행군하며, 적에게 저항하다 많은 전우들이 굶고 허기져 동사하였습니다.



 강릉에 개선한 후 한때

 

1961 8 23일 참전 생존자중 백골병단 작전참모 겸 결사 제 11연대 작전참모 임시대위 전인식(임시 소령 예편)이 전우회 설립을 발기한 이후, 계속 자료를 발굴 정비하고 실천, 실화를 저술하여 군 발전 자료로 활용하는 한편, 1986 6월 전몰 장병의 명복을 빌고 전적을 기리고자 육군본부의 지원으로 참전 전우회와 육군 제 2307부대에서 1990 11 9일 이 전적비를 건립하였습니다.





결사대 전우회 모임을 결성하고 전적비를 건립하기까지~

 

백골병단 전몰장병 364명 중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위패안치 58, 대전현충원 안장 3위 외에 303위는 아직 미확인 중입니다.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 용감하게 싸우다 순국 산화하신 장병의 명복을 빕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유격부대(백골병단)에게 드린 감사패

 

출진한 백골병단 육백사십용사

오대.설악을 넘고 또 넘어

혁혁한 전공을 세운 그들

장하고 거룩한 겨레의 햇불

! 그 영광 청사에

길이 빛나리



<청춘예찬 이서경 부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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