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하멜 표류기의 하멜이 난민이었다면?

작성일 작성자 법무부 블로그


<제주 서귀포시의 하멜상선전시관 전경, 난파된 선박인 스페르베르호를 모델로 재현>



제주도로 입국한 예멘인들의 난민신청과 인정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제주도로 표류한 외국인들의 거취문제를 두고 비슷한 고민을 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수년전 이 사건을 모티브로 '탐나는 도다'(탐라: 제주의 옛 이름)라는 제목으로 만화와 영화로도 제작되기도 했었죠. 바로 '하멜표류기'로 불리는 사건인데요. 제주도 난민이었던 하멜과 일행은 당시에 어떤 처우를 받고 살았을지, 그리고 하멜일행이 현대에 와서 난민신청을 한다면 어떤 법적 절차를 밟게 될지 살펴보시죠.

 

     

하멜표류기, 읽어보셨나요?

1653(효종 4) 8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무역선인 '스페르베르'에는 하멜을 포함에 64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는데요.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이 선박은 풍랑을 만나 파선되고, 생존자 38명이 제주도에 표류하면서, 제주도 관원들에게 체포됩니다. 제주 목사 이원진은(목사: 현 시장급 지방관) 효종 왕에게 이 사실을 보고 후, 한양에서 파견 나온 박연(1627년 제주 표류 후 조선에 귀화한 네델란드인 벨테브레이)이 조선에 머물러 지내라는 임금의 뜻을 전하면서, 하멜이 본국으로 돌아가기까지 13년간의 조선생활을 담아 낸 글이 바로 하멜표류기입니다. 논외로 하멜이 조선 표류기를 쓴 이유가 밀린 월급을 청구하기 위한 증거자료로 제출하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은 흥미로웠습니다.

 

우리나라는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에서의 책임있는 역할 분담을 위해 20137월부터 '난민법'을 시행하고 있는데요. 우리 법에서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신분,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해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보호를 원하지 않는 외국인 혹은 이러한 공포로 대한민국에 입국하기 전에 거주한 국가로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 무국적자인 외국인을 의미합니다.(난민법 제2) 이들 난민은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난민법에 따라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죠.

 

 

 

<출입국·외국인사무소에서 상담 순서를 기다리는 예멘 난민신청자들 /자료=연합뉴스>

    

 

사실, 하멜 일행을 난민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하멜 일행은 엄밀히 말해 난민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들이 네덜란드에서 박해를 받지도 않았으며,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보호받기를 원치 않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조금 상상력을 발휘해서 하멜 일행이 제주도 생활을 만족해하며 국내 거주를 위해 난민신청을 한다면 어떤 절차를 밟게 될지 재미있는 가정을 해보았습니다.

 

우선 하멜은 입국일로부터 60일 이내에 난민인정 신청서를 작성하여 출입국·외국인사무소(구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직접 접수해야합니다. 신청서 이외에도 증명사진, 난민임을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 자료 그리고 여권 등의 신분증명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요. 이로써 하멜은 난민신청자가 되죠. 우리나라는 199212월 난민의정서에 가입한 국가로,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난민신청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멜은 출입국외국인사무소의 난민업무 담당자와 면담을 실시하게 됩니다. 이 면담은 신청자가 난민으로서의 자격요건[난민법]을 갖추었는지 판단하기위한 절차로서 지정된 면담일에 출석하여 시행하게 되죠. 물론 하멜은 난민신청자의 자격으로 난민협약에 따라 통역인과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하멜이 제주도로 표류되었을 때, 통역사 박연 및 제주 목사 이원진과 면담했던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보았을 때 예나 지금이나 절차상의 유사점이 있죠.

 

첫 면담이 끝난 뒤에는 난민인정 신청서, 제출자료 및 면담 내용의 사실여부를 심사하기 위해 추가 면담을 실시하게 되고, 종합적인 조사를 마친 후에는 출입국외국인사무소 소장이 조사 결과를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하는데요. 법무부 장관은 보고 내용을 토대로 난민인정 여부를 결정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인 효종이 직접 하멜을 면담 후 거취에 대한 처분을 결정하였는데요. 그만큼 외국인의 입국이 흔치 않는 일이어서가 아닐까요?

 

하멜이 난민으로 인정을 받게되면 법무부장관은 난민인정증명서를 교부하게 되는데요. 이로써 체류자격 및 국외여행이 가능한 난민여행증명서를 발급 받게 됩니다. 조선시대에 하멜은 체류자격자로서 임금으로부터 호패를 하사받았는데요. 이 호패는 지금으로 말하면 주민등록증에 해당하는 증서로서 여기에는 이름, 나이, 국적과 본분으로서의 역할이 적혀있습니다.

 

현재로 돌아와서, 하멜이 본국으로 송환되면 신변의 위협이 가해질 수 있는 상황이지만, 난민으로서 인정받지 못할 경우는 어떻게 될까요? 이때는 출신국의 인권상황을 고려해 당국의 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체류를 허가하는 인도적 절차를 통해 인권보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난민인정을 못받을 경우, 이의신청도 가능합니다

하멜이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할 경우 이의신청도 가능합니다. 난민불인정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신청접수를 하게 되면, 난민인정협의회의 재심사를 통해 다시 난민인정 여부를 결정하게 되죠. 만약 이의신청에서도 기각 통지를 받게 되면 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는데요. 이는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소송 제기를 해야 합니다. 하멜이이 소송마저 패소를 하게 되면 난민불인정자가 됩니다.

 

난민신청이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보통 3년에서 5년의 기간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난민신청 후에 심사결과를 받는 데만도 평균 7개월이 걸리는 데요. 법무부에서는 예멘 난민신청자들의 심사기간의 단축을 위해 심사 담당자 증원을 통해서 그 기간을 2개월 정도로 앞당긴 사례가 있습니다.

      

 

<제주 서귀포시의 하멜기념비는 네덜란드와 한국간의 우호증진의 증표 / 자료 = 제주관광공사>

 

 

제주도 하멜난민신청 팩트체크!

 

이번에는 하멜이 난민으로서 조선시대에 겪었던 실상과 현재 겪을 수 있는 처우를 좀 더 구체적으로 비교하면서, 유사점과 다른점에 대한 팩트체크를 해보겠습니다.

 

 

1. 난민의 일자리

조선시대에 하멜은 임금의 명으로 일자리를 얻게 되었는데요. 처음에는 왕의 친위병으로 일하기도 했고, 이 후에는 변방의 훈련장에서 화살을 줍는 일이나 새끼를 꼬는 일 등을 했다고 합니다. 그 이전에 귀화한 네델란드 박연은 통역관으로 활동했다는데요. 23살의 꿈만은 하멜에게는 조금 따분하고 무료한 일자리였을지도 모르죠. 하멜이 현대로 넘어온다면 어떤 분야에 종사할 수 있을까요? 출입국관리법 제20조에 따라 농,,수산업이나 요식업 등 제주도 내에서 일손이 부족한 부분이나 국민들의 일자리가 잠식되지 않는 선에서 취업이 가능할겁니다. 또한 취업이 바로 가능한 것은 아니고, 난민신청한 날로부터 6개월이 지나야 취업을 할 수 있죠. 예나 지금이나 국가가 난민의 일탈을 통해 범죄에 노출되지 않도록 사회적응을 위한 최소한의 경제여건을 마련해 주는 정책방향은 일치했습니다.

 

2. 난민신청 여부

조선시대에는 난민의 개념도 없었고, 따라서 난민신청제도도 없었는데요. 무엇보다 권력 독점방식의 전제군주제였기 때문에, 임금이 결정하는 바에 따라 하멜의 거취가 결정되는 식이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임금인 효종은 하멜에게 "외국인을 국외로 내보내는 것은 조선의 관습이 아니다.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살아라."라고 했습니다. 난민신청자에게는 반가운 어명이었겠지만,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것은 슬플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하멜이 현재로 넘어오게 되면 난민신청권을 가지는데요. 우리나라는 난민협약 가입국으로써, 난민신청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고, 엄격한 난민심사를 통해 난민인정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3. 난민 생계비 복지 지원

하멜이 조선에 억류되어 임금으로부터 나라 밖으로 보낼 의향이 없음을 전달받고, 의사소통도 되지 않는 나라에서 평생 살아야한다고 생각하면 생계가 막막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임금은 그런 마음을 헤아렸는지 통역사 박연을 통해 "그대들의 신변을 보호해주겠고, 여생을 마칠 때까지 적당한 식량과 의복을 지원해주겠다."라는 뜻을 전했습니다. , 평생지원을 약속한 것이죠. 현재 난민지원은 조선시대와 다르게 좀 더 차등적이고 제한적인 지원을 하는데요. 난민신청자의 소득수준이나 질병 유무 등을 검토하여 지원금액을 산정한 후, 난민신청일로부터 최장 6개월까지만 생계비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두 시대의 생계비 지원금 규모를 비교해봤을 때, 조선시대에서 말하는 '적당한 식량과 의복 지원'이 현재 난민신청자의 긴급복지지원법상 생계비 [1가구 432,900]에 준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평생지원을 약속한 조선의 복지기간에 비하면 현재는 많이 제한적인 것이죠.

 

4. 난민 브로커 존재 유무

하멜 일행을 비롯해, 귀화자인 박연은 선박 난파로 조선에 표류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보았을 때, 난민 브로커가 당시에 존재했다 치더라도, 입국을 알선할 여지가 없었을 텐데요. 하멜이 현재 브로커를 통해 국내 불법입국 및 허위 난민신청을 한다고 가정하더라도, 분명히 적발되어 엄중한 처벌을 받았을 겁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 6월까지 집중 단속을 통해 브로커 39명과 허위 난민신청자 1474명을 적발하여 엄격한 의법 조치를 했다고 하는데요. 기존에 운 좋게 허위로 난민인정을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추후 적발이 되면 난민인정을 취소할 수 있답니다.

      



<하멜이 전라도로 호송 후 생활했던 여수시의 하멜등대와 밤바다>

 

5. 출도제한 조치

조선시대 하멜 일행은 제주도에서 한양으로 압송된 이후, 전라도의 여러 고을(여수,순천, 남원)로 흩어져 격리 생활했는데요. 어명에도 불구하고, 억류생활에 지친 하멜 일행이 탈출 시도가 잦자 이들을 분산 수용한 것이죠. 당시 조선은 북벌을 추진하던 중요한 시기로, 표류된 서양인들이 조선에 정착생활을 한다는 소문이 퍼지면, 청나라를 자극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하멜 일행에 대한 거주이전의 자유가 제한되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정책인 출도제한조치가 시행되고 있는데요. 비자 없이 제주도로 표류한 경우 원칙상으로 제주도 밖을 나갈 수 없습니다. 또한 기존에 무사증제도로 입국한 경우, 육지 이동이 허용되었지만 금년 430일 이후로 무사증 입국 난민에 대해서도 출도제한을 하고 있습니다. 여과 없이 외국인이 입국하다보니 국민들이 혹시 모를 범죄에 노출될 수 있는 우려를 최소화하기 위함인데요. 나아가 국민의 보건 안전을 위해서 제주도 난민신청 시에 법무부 지정병원을 통해 전염병 등의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고 하니, 국민 안전에 대해 고민하는 국가의 역할은 역사가 흘러도 불변하는 것 같습니다.

 

6. 난민의 지문 날인 확보

하멜 일행은 제주도 표류 13년 만인 166694일 조선을 탈출해 98일 일본에 도착하게 되었고, 2년 뒤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만약 하멜이 현재로 넘어와 탈출을 시도했다면 탈출이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법무부는 20108월부터 난민 입국 시에 지문과 얼굴 정보를 수집하여 필요시 입국자들을 추적하는데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죠.

 

 

<김오수 법무부 차관이 제주이주민센터에서 예멘 난민신청자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모습>

 

 

헌법 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의 ·····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동법 제6조에는 헌법에 의하여 체결된 조약과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며,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등)이 정하는 바에 의해 그 지위가 보장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요. 저는 헌법 곳곳에 묻어나는 인간 존중에 대한 조항을 읽을 때마다 법이 아름다울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우리나라가 이처럼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도록, 1960년대 외화벌이를 위해 타국으로 향했던 한국의 파독 간호사나 광부, 미국 수수밭에서 근면히 일하던 선조들에 대한 감사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에 하멜 일행의 거취에 대한 왕실의 고민이, 365년이 지난 현재에 와서 다시금 재현되고 있는데요. 현대판 하멜표류기로도 볼 수 있는 제주도 예멘 난민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나라 인권의 국제적 위상이 실추되지 않고, 예멘 난민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해소될 수 있는 균형적이고 슬기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길 기대해봅니다.

    


 

= 10기 법무부 블로그기자 김웅철(일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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