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생명나무, 최대인간, 아담 카드몬, 하이어라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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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영생과 神仙

[스크랩] 생명나무, 최대인간, 아담 카드몬, 하이어라키

조로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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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14,

 

생명나무, 최대인간, 아담 카드몬, 하이어라키

 

스베덴보리가 말한 최대인간
카발라에서 말하는 아담 카드몬

 

 

(출처 아이반호프의 비전의 카발라)

 


(1) 인간의 타락으로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가 되어 소통이 되지 않는 상태에 있다. 신과 1대 1의 직접적인 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간접적인 소통이라도 있어야 인류는 살 수 있다. 간접적인 소통은 신과 인간 사이의 매개체를 통해서 하는 것을 말한다. 신과 인간 사이에 일반적으로 말하면 이원성의 천국이 있다. 이 천국은 신의 반영물로서 신의 형상과 모양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데, 신이 볼 때는 천국 전체가 한 사람으로 보인다.

 

이를 임마누엘 스베덴보리 저서에서는 최대인간(the Grand Man)이라 하고, 카발라에서는 아담 카드몬이라고 한다. 아담 카드몬의 다른 명칭은 생명나무(세피로트)다. 세피로트는 빛을 의미하는 세피라의 복수형이고, 생명나무는 10개의 세피라로 구성되어 있다.


생명나무(Tree of Life, 에쯔하임)를 구성하고 있는 10개의 세피라 각각을 열거하면 케테르(1), 호크마(2), 비나(3), 헤세드(4),  게부라(5), 티페레트(6), 네차흐(7), 호드(8), 예소드(9),  말쿠트(10)이다.(아이반호프와 황금새벽회의 출신인 다이온 포춘의 방식)

 

 

(2) 이 생명나무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발출, 방사되어서, 다른 말로 유출되어서 나온 것으로 창조보다는 확장의 개념이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최초의 빛을 케테르라고 하고, 마지막을 말쿠트라고 하는데, 말쿠트의 뜻은 왕국이다. 이 세상을 뜻하는데, 엄밀히는 교회를 의미한다.

 


(3)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신으로부터 생명의 입류가 위로부터 아래로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고, 이 입류를 모든 인류가 받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확장의 개념을 연속적인 관념이 아닌 불연속적인 관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케테르에서 말쿠트에 이르는 과정이 평면상의 같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라미드와 같이 단계적인 것으로 이루어진다. 이를 하이어라키 즉 단계, 등차, 계단이라고 하고, 다른 말로 영단(靈團)이라고도 한다.

 

(4) 이 하이어라키는 협소한 의미로는 성 광명 형제단이라고 하고, 광의적으로는 아담 카드몬 즉 생명나무라고 한다. 이것은 성 광명 형제단도 마찬가지이다. 협소한 의미로 성 광명 형제단은 초인들과 그의 제자들의 결사체(結社體)를 일컫지만 광의적으로는 최대인간 전체를 말한다.

 

 

(4.1.)  본래 인간은 신의 품속에서 신과 일체를 이루고 있었으나, 그로부터 타락해서 이 지상에 와 있는 관계로 신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생명을 받을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 신과 인간의 분리의 간격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유한은 무한을 감당할 수 없다. 그러나 신의 품(케테르,1)에서는 가능하다. 그 신의 품 즉 낙원을 상실한 관계로 지금의 상태에서는 무한을 있는 그대로 받을 수 없는 것이다.

 

(4.2.) 그래서 신이 고안해 낸 것이 간접적으로 인간과 소통하는 것이다. 무엇을 통해서, 신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중간매체 또는 단계를 통해서이다. 직접적인 소통은 신과 인간 사이에 아무것도 없으나 간접적인 소통에는 중간에 매개체가 있다. 현재 인류는 이 매개체로 인해서 존속하고 있는 것이다.

 

(4.3.) 무한과 유한을 이어주는 사다리, 계단 같은 것이 중간매체인데, 그것이 세 천국이고 세 천국의 천사들이다. 이것을 카발라에서는 10개의 세피라(빛구체)로 말하는 것이다. 케테르(1)에서 말쿠트(10)까지로 말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신과 인간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신은 케테르(1) 위에 있는데, 우리는 말쿠트(10)에 있기 때문이다.

 

(4.4.) 다시 말해서 신과 인간이 소통하기 위해서 필요한 중간매체(단계)가 10개라는 것이고, 신으로부터 인간에게 생명이 도달하려면 10단계를 지나야 한다는 것이고, 반대로 인간이 신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려면 10단계를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4.5.) 기독교 또는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간단하게 3층천으로 말한 것이다. 천국 위에는 신이 있고, 그 신으로부터 생명이 3층천에 먼저 입류(유출)하고, 그 다음 2층천에 흐르고, 그 다음 1층천 그리고 중간영계에 거쳐서 마지막으로 자연계의 인류에게 임하는 것이다.

 

(4.6.) 그런데 신이 보실 때 이 천국 전체가 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것을 스베덴보리 신학에서는 최대인간(the Grand Man)으로 말 하는 것이고, 카발라에서는 아담 카드몬으로 말하는 것이다. 아담 카드몬(Adam Kadmon)을 신성인간, 대인간, 원인간 또는 우주적 인간으로 말한다. 인간이 소우주다는 말이 나온 배경이 이 아담 카드몬이 대우주이고 대인간이기 때문이며, 그것에 반영물로서 인간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4.7.) 카발라에서는 이 최대인간을 다른 용어로도 부른다. 그것이 생명나무(Tree of Life, 에쯔하임,세피로트)이다. 10개의 세피라를 도화지에 그려넣고, 그것을 선으로 이으면 뿌리는 하나이고, 줄기는 셋이며, 22개의 가지로 연결된 10개의 열매를 가진 나무로 보인다. 그런데 그것이 신의 생명의 충만한 확장과 입류를 의미하기 때문에, 즉 인간이 그로부터 입류를 받아서 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전체를 생명나무로 칭한 것이다.

 

(4.8.) 하나님의 입류가 불연속적으로 인간에게 임한다는 것은 3층천을 지나서, 10개의 세피라(sefira, sephira)를 지나서 입류한다는 것을 말한다. 3층천과 2층천은 서로 분리 되어 있다. 각 천국에 있는 천사는 위나 아래의 천국으로 이동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등차, 계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볕과 빛의 세기와 강도가 다르다. 3층천이 가장 강하고 1층천이 가장 약하다. 그런데 각 천국의 있는 천사는 자기가 속한 천국의 볕과 빛을 받을 수 있는 그릇만 가지고 있다.

 

(4.9.) 인간이 천국도 아닌 중간영계 또는 아스트랄계를 보는 것도 소수의 사람들이나 일생에서 한 두 번 있을까 말까한 사건인데, 하물며 3층천에 있는 생명이 바로 우리에게 임한다고 하면 우리가 어찌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사실 지금은 어렵지 않게 아스트랄계로 올라갈 수도 있고, 더 높은 계로도 올라갈 수도 있다)

 

(4.10.) 각 등차는 그만큼 절대적인 차이가 있다. 이렇게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지 않고 불연속적으로 각 등차는 끊어져 있다. 연속성이 아날로그식이라고 한다면 불연속성은 디지털식이라고 말 할 수 있다.

 

(4.11.) 이 등차, 단계를 다른 말로 하이어라키(hierarchy, 계급)라고 한다. 이 단어에는 조직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즉 등차로 구분된 단일체, 이것이 천국, 최대인간, 생명나무를 뜻하기 때문에 영단(靈團)으로도 말하는 것이다.

 

(4.12.) 성 광명 형제단(대백색 형제단)은 협소한 의미로는 몸을 영화시켜 승천한 초인들과 승천하지 않고 지상에 있는 초인들과 그들의 제자들의 결사체(結社體)를 의미한다.  광의적으로는 최대인간, 아담 카드몬을 말한다. 하이어라키도 좁은 의미로는 성 광명 형제단을 지칭하지만 광의적으로 하나의 유기체로 존재하는 천국 전체를 의미 한다.

 

(4.13.) 10 개의 세피로트(sefirot)는  각 천국의 특정한 영역과 속성을 의미한다. 그 속성은 신의 반영물로서 신의 속성이다. 예를 들면 호크마는 지혜, 비나는 이성, 게브라는 정의, 헤세드는 자비 등등 이런식이다. 스베덴보리는 간단하게, 3층천은 주님사랑의 왕국, 2층천은 이웃사랑의 왕국, 1층천은 주님사랑과 이웃사랑의 자연적 왕국, 물론 구체적으로 각 천국마다 속성을 분별해 놓기도 했지만, 말하고자 하는 것은 10개의 세피로트는 신의 성품의 반영물, 신의 속성의 반영물이라는 것이다.

 

 

 


(5)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빛의 전달 매체인 하이어라키가 신과 인류 사이에 없으면 우리 인류는 멸망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살아 있는 이유는 그들이 배후에 있기 때문이고, 나아가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이유도 그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말은 그들을 통해서 신이 우리와 같이 하지 않았다면을 뜻한다.

 

 

(6) 임마누엘 스베덴보리 저서에서 예수님께서 그 당시 이스라엘 땅에 강림한 이유를 인류의 멸망이 코 앞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신의 빛이 천국을 거쳐서 지상으로 도달되는데, 그 중간에 먹구름이 끼었다는 것이다. 그 먹구름이 뜻하는 것은 악한 영들, 지옥의 영들이다.

 

영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느냐면 천국과 지옥이 있고, 천국 아래 중간 영계가 있고, 그 아래에 지옥이 있다. 인류는 중간 영계 보다 조금 아래에 있거나 같은 선상에 있다. 그런데 문제는 중간영계에 악한 영들이 가득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1층천에까지 그들의 세력이 미쳤고, 2층천까지 침략을 자행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은 천국은 3층천뿐이였고, 그것마저 지옥에 의해 혼란해진다면 인류는 끝인 것이다. 왜냐하면 신으로부터 빛을 받는 통로가 모두 차단되거나 왜곡되거나 변질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 영계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신은 육신을 입었고, 그 지옥의 시험을 받은 것이고, 부활이라는 승리를 통해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님이 갖게 된 것이다.(마태28:18) 여기서 말하는 하늘과 땅은, 영계와 자연계 또는 천국과 지옥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영계의 통치권을 가지고 혼란한 상황을 질서정연하게 만들어 놓으셨다.(속량) 중간영계에서 차고 넘치던 악령들은 주님의 부활과 승천으로 인해서 모두 자기들이 있을 곳인 지옥으로 쳐 넣어졌다. 그래서 중간영계는 선과 악의 균형을 다시 회복하게 되었고, 이 변화로 인해 인간은 자유의지를 회복하여 자유로울 수 있게 되었다.

 


(7) 최소 인간에게는 선과 악으로 해서 4명의 영적 존재와 영적인 교제관계에 있다.(천계비의 5977) 마음의 구성이 의지와 이성이기 때문에, 각각 둘씩해서 총 4명이 되는 것이다. 이것의 쉬운 예는 만화 같은데서 볼 수 있는 머리 좌우에 천사와 악마가 있어서 주인공에게 속삭이는 것이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그러면 주인공은 그 사이에서 갈등을 한다. 이것이 영적 자유의지고, 모든 생명은 이것에 좌우된다. 영적생명이든 육적생명이든, 

 

 

(8) 우리가 선을 택하면 빛의 하이어라키와 연결되어 영적존재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되지만 그들과의 교류가 끊기면 영적으로 죽게 된다. (사도행전 5장)에서 보게 되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빛의 하이어라키는 물론이거니와 그 반대인 어둠의 하이어라키와의 연결도 끊어진 결과 일어난 일이다.

 

(행전 5:1-11)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소유물중 일부를 교회 공동체에 내 놓지 않았다. 이에 베드로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라고 하자 아나니아가 엎드러져 죽었고, 그 아내 삽비라도 주의 영을 시험한다라고 하자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게 되었다. 온 교회와 이 일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였다.”

 

 

(9) 사람은 지옥의 생명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존속할 수 있다. (마태 13:24-30)의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서 보듯이 가라지를 바로 뽑아 버리면 좋겠지만 알곡까지 상할 염려가 있어서 끝날때까지 내 버려두었던 것처럼, 갑자기 지옥의 영을 그 사람에게서 축사해버리면 죽음에 처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 구원 역사는 점진적이다. 주인공에게 천사는 조금씩 가까이 붙이고 악령은 조금씩 떼어놓는 것이다. 떼어놓았다가 붙였다가, 가까이 했다가 멀리 했다가 하는 식으로 해서 점진적으로 천사는 곁에 있게 하고, 악령은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9.1.) (아이반호프 비전의 카발라 2-2장)  성경의 많은 구절을 보면 신이 모세에게 나타나 말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사실 어떤 인간도 신과 직접 이야기할 수 없으며 신을 볼 수도 없다. 왜냐하면 신의 면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신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실은 그의 대리자, 대천사들 중의 하나를 본 것이다. 신을 대리하는 존재가 바로 대천사들이기 때문이다.(출 3:2,4-6,14, 행7:30-32,35,38,53, 아브라함, 하갈, 기드온 등)

 

대천사들은 말하자면 변압기처럼 전압을 낮추는 작용을 한다. 신성의 에너지, 신성의 빛, 신성의 전기는 천사 하이어라키의 매개를 통해 인간에게 전달된다. 그때 그 힘은 충분히 낮추어져서 우리에게 도달한다.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인간이 직접 신과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하이어라키의 에이전시를 통해 신과 대화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과 신 사이의 어떤 매개적 존재를 부인하는 자들은 우주의 실상을 모르는 자들이다. 그들이 하이어라키의 존재를 인정하든 않든 그것은 존재한다. 그들은 현상이 자기들의 생각과 반드시 부합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워야만 한다. 신과 인간 사이에 이 천사 하이어라키가 없다면 지상에서 단 한 명의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9.2.) (임마누엘 스베덴보리의 천국과 지옥 302) "..사람과 함께 하는 영들이 없이는 사람은 단 하나의 생각도 할 수 없다. 사람의 영적 생명이 그 결합에 달려 있다. 이를 믿지 않는 것은 자기의 생명이 자기 것이며 생명의 처음 존재와 아무런 연결도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고, 이 연결이 천국들을 거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그 연결이 끊어지면 사람은 즉시 쓰러져 죽게 된다.“

 

(임마누엘 스베덴보리의 천국과 지옥 527) "... 일부는 그들이 세상에서 형성한 사랑에서 비롯된 삶을 제거해주고 천국의 삶, 천사들의 생명을 불어 넣어주기를 바랬다. 그렇게 하는 것도 허락되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의 사랑에서 비롯된 생명이 제거되자 그들은 죽은 듯이 쓰러져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9.3.) (임마누엘 스베덴보리의 순정 기독교 475) "자유의지의 기원은 사람의 마음이 주님에 의하여 보전되고 있는 영계안에 있다. 사람의 마음은 사후에도 사는 그 사람의 영이다. 그 사람의 영은 수단으로서 물질적인 몸을 입고 있지만 동시에 자연계에서 교류하듯이 영계의 영들과도 교류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이 영계의 영들과 교제하고 있음을 모른다. ...

 

사람은 외적으로는 자연계의 사람과 교제하고, 내적으로는 영계의 영들과 교통한다. 사람이 관념들을 가지며 그것들에 대하여 분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 소통의 덕분이다. 이 소통 없이는 사람이 짐승보다 나을 것이 없을 정도로 사고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니 이 소통이 끊어지면 즉시 죽어버린다.

 

...영계는 천계와 지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계는 머리 위에 지옥은 발 아래 있다. 지옥은 지구 중심부에 있지 않고 영계의 땅 아래 있다. 이 땅들은 영적 기원을 가진 것으로 자연계 즉 공간안에 있지 않고 공간의 외관/외현안에 있다.

 

천계와 지옥의 중간 영역은 큰 영역이어서 거기 사는 주민들에게는 완전한 세계인듯 보여진다. 이 중간 영역안으로 지옥으로부터의 모든 악의 입류가 있고 또 천계로부터의 모든 선이 입류 한다. 아브라함이 지옥에 있는 부자에게 말한 것은 이 큰 영역이었다.

 

'너희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이 있어서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누가16:26)

 

사람이 자유의지를 누리게 하기 위하여 사람은 이 중간 영역안에 있게 된다. 이 영역이 매우 광활해서 영들의 세계라고 불리운다. 사람마다 사후에 거기 들어가서 이 세상에서 살던 것과 같이 영들 사이에 살면서 천계 또는 지옥에 갈 준비를 하기 위하여 이 영역은 영들로 가득 차 있다."

 

 

 

 

 

 

아담 카드몬의 원래 모습은 우리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모습이다.

(출처 카발라, 찰스 폰스)

 

 

아버지 하나님의 두 가지,

만물 위에 계신 분으로서와 만물의 시작으로서

 

 

(에베소서 4:6)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천국과 지옥 9) 천사들은 그들의 지혜로 이 사실을 더 깊이 알고 있다. 그들은 선하고 참된 모든 것뿐 아니라 삶의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온다고 말한다. 그들이 이것을 확증하는 것은 어떤 것도 그보다 먼저 있는 것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원리를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하나의 처음존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 처음존재를 모든 생명의 궁극적 존재라 부른다. 같은 원리로 만물은 존속한다. 존속한다는 것은 끊임없는 생겨남이며 중간 매체들을 통해 처음존재와 끊임없이 연결되지 않는 것은 그 즉시 사라지고 완전히 소멸되고 만다. 생명의 원천은 오직 하나이며 사람의 생명은 거기서 나오는 물줄기라고 천사들은 덧붙인다. 따라서 그 물줄기가 끊임없이 원천으로부터 흐름을 공급받지 않으면 즉시 말라 없어진다는 것이다.

 

 


(1) 만물 위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아인 소프 아우르라 하고, 그로부터 나온 만물의 최초의 빛을 케테르라고 하는데, 성경에서는 각각 여호와와 그리스도로 말 한다. 만물 위에 계신분은 형상이 없고, 그 누구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분의 형상과 모양이다.(고린도후서 1:4) 세계 종교에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여호와, 알라, 브라흐만, 무극으로 말했고, 스베덴보리 저서에서는 신령존재(성부)로 말했다.

 

 

(2) 그런데 카발라에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영역을 무한 아래, 유한의 시작점인 케테르로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신지학쪽 사람들이 여호와를 부정적으로 보거나 유한한 것으로 인식을 하지만 실제로는 무한존재 즉 아인 소프 아우르이다. 무형상이고, 그 누구도 볼 수 없는 분이라고 성경에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피조계 위에 있는 존재를 성경에서는 여호와 즉 아버지 하나님으로 말하는데, 카발라에서는 피조세계의 시발점인 케테르를 아버지 하나님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3) 어느 말이 옳고 틀리냐, 그런것이 아니다. 무한 존재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분이시다. 이점에 있어서는 성경이나 카발라나 스베덴보리 신학이나 똑같다. 물론 다른 종교의 신관념도 같다.

 

(출애굽기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나는 나다) 

 

 

 

(4) 이 부분은 이해의 문제이다.

 

카발라는 어떤 인간적인 것이나 피조적인 것도 아인 소프 아우르에게는 붙일 수 없기 때문에, 그분에 대해서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그것의 최초의 반영인 케테르에 붙인 것이다. 성경이나 스베덴보리 신학의 관점은 모든 존재의 근원은 무한존재이므로 그런 분을 인간적으로 볼 때 아버지(부모)라고 부르는 것은 불경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렀다. 구약에서는 아버지라 칭하는 그 대상은 아인 소프 아우르였다. 그러나 신약에 예수가 오므로 인해서 아버지의 대상이 카발라의 케테르와 같아졌다.

 


(이사야 9:6)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요한 14:9)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한16:28)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5) 예수가 돌아간 곳은 아인 소프 아우르가 아니라 케테르이다. 그 영역은 아인 소프 아우르가 유한한 세계에 처음으로 자신의 얼굴을 내민 자리이다. 그래서 그 영역을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이라 칭할 수 있는 존재는 모든 존재의 원천뿐이다. 그러나 무한존재 자체는 유한자가 접촉할 수가 없다. 그래서 무한 존재의 최초의 반영물인 케테르를 두고 아버지 하나님이라 하는 것이다.

 


(5.1.) (아이반호프의 비전의 카발라 2-1장) '카발라에서는 케테르를 초월하여,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신비한 무한의 영역이 존재한다고 가르친다. 그곳은 절대자의 집으로, 바로 거기에서 아버지 하나님이 발출되어 나왔다고 한다. 즉 케테르에 거주하고 있는 아버지 하나님은 인간에게 결코 알려지지 않은 채 존재하는 절대신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카발리스트들은 그 영역을 아인(Ain) 소프(Soph) 아우르(Aur)라고 부른다. 아인은 무無, 소프는 제한, 한계, 아우르는 빛이라는 뜻이다.(무한광)

 

아인은 무이다. 그러나 카발리스트에게 있어서 그것은 그 이상이다. 이집트 비전에서 입문자가 어떤 테스트들을 통과할 때 그는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오시리스는 어둠의 신이다.' 여기서 어둠의 신이라고 한 것은, 인간은 결코 그를 알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빛이 어둠으로부터 태어났다는 형이상학의 상징적 표현이기도 하다.'

 


(5.2.) (아이반호프의 비전의 카발라 5장) '아담은 이야기 책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그는 신에 의해 창조된 최초의 존재, 아담 카드몬, 우주적 인간이다. 우주의 별, 성좌, 성운들은 그의 육체이다. 신은 피조된 우주를 초월해 존재한다. 그는 세피라 케테르 보다도 더 위에 있다. 케테르는 아담 카드몬의 머리이다. 호크마는 그의 우측 눈과 우측 얼굴이고, 비나는 좌측 눈과 좌측 얼굴이다. 헤세드는 우측 팔, 게부라는 좌측 팔, 티페레트는 심장과 태양신경총, 네차흐는 우측 다리, 호드는 좌측 다리, 예소드는 생식기관, 말쿠트는 발이다.'

 


(5.3.) (미스티컬 카발라 p68) ‘블라바츠키는 동양의 경전에 있는 표현을 인용해 제 1현현물(케테르)을 원 안에 있는 점이라고 했다. 이것은 랍비들이 쓰는 네쿠다 라슈나 즉 원초의 점이라는 용어와 일맥상통한다. 랍비들은 이 단어를 케테르에 적용했다.’

 

(5.4.) (미스티컬 카발라 p69) ‘근원적 미현현자로부터 존재를 향해 나아온 제 1 현현자(케테르)에 대한 개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액체는 투명하며 형태가 없다. 그러나 그 액체에 변화가 일어나면 딱딱하고 가시적이며 형태를 지닌 결정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런 방식으로 무한의 빛 안에서 변화가 일어나 케테르가 결정화되는 과정을 인식 할 수 있을 것이다.’

 

 


(6) 만물 위에 계시는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 곧 아버지이고, 그 바로 아래 계시는 분은 아버지의 유일한 형상이자 몸인 그리스도다. 이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라고 하는데, 카발라에서는 그 자리를 케테르라고 칭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아버지 하나님이라 부른다.

 

 

 

아인 소프 아우르(무한광, 무한존재, 무극)

 

(에베소서 4:6)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디모데전서 1:17)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무한존재의 최초의 반영물(태극, 성자)

 

(골로새서 3:11)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오 만유 안에 계시느니라

 

 

 

(요한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에베소서 1:22,23)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에베소서 5:23)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고린도 전서 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에베소서 2:20-22)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출처 : 영성(靈性, spirituality)
글쓴이 : 현요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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